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비 내리던 지난 주말 밤이다. 평소 다니던 길인데도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려오며 식은땀이 흘렀다. 순간적으로 어지럼증까지 더해져 대로 옆 이면도로에 차를 세우고 한참 심호흡을 했다. 경전철 공사로 길 위에 깔려 있던 철판이 음영 때문에 구덩이처럼 보였던 데다 철판에 닿는 타이어의 둔탁한 소리가 더해지며 몸이 차와 함께 꺼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겨우 아파트에 도착해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내릴 층에 멈추면서 불길한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1층 게시판에 붙어 있는 안내문 내용이 맞다면 안전점검을 한 지 고작 이틀 지났을 뿐이다. 현관문 옆에 붙어 있는 도시가스 사용량 스티커를 보니 가스 배관 점검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불안했다. 이튿날 출근길 지하철 플랫폼에선 왠지 고약한 탄내가 나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충격 탓이려니 했지만 이 정도면 병이겠다 싶었다. 답답한 마음을 친구들에게 털어놨더니 다들 자신의 사례로 침을 튀긴다. 영화관 가서 비상구를 확인하느라 내용이 눈에 안 들어왔다는 둥, 한남대교 위를 서행하던 버스 안에서 ‘제발 다리만 무사히 건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둥, 대학생과 고등학생 언니 오빠에 이어 이젠 중학생이 죽을 차례라고 아이가 두려워한다는 둥.

“만약 그런 일이 나나 내 가족에게 생긴다면 구출될 수 있을까?” 막연한 불안감 속에 깔려 있던 실체적 공포를 확인하는 순간 아무도 말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하늘이 무너질까 어떻게 나다니느냐는 핀잔을 들을 만한 넋두리가 ‘이 나라에선 하늘이 무너져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감대로 바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든, 실수로 빚어진 인재든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슬픔이고 비극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슬픔과 비극을 넘어서 경악과 분노로 치닫는 이유는 사고가 오랫동안 꾸준히 준비돼 왔다는 점, 기함할 만한 정부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엔 돈 앞에 내팽개쳐진 생명의 존엄성이 있다. 세월호 사고가 수습되는 지난 시간에도 울산 현대중공업에선 하청노동자 4명이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1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안산 사진공동취재단 =정동헌 기자(출처 ;경향DB)


갑자기 머릿속을 찌르듯 헤집고 떠오르는 건 원자력발전소였다. 지난해 산업부에 근무하면서 수없이 데스크를 보고 출고했던 기사가 원전에 대한 불안과 위험성에 대한 경고였다. 원전의 핵심부품에 불량품이 납품되고 이를 감시해야 할 감독기관이 비리에 앞장서고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인데도 정부는 안전에 문제없다며 수명을 연장하고….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늘린 정부는 세월호 상태도 양호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만일 고리, 한빛, 월성원전 어느 한 군데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지만 상상, 아니 예상해야 한다. 관련 회사를 압수수색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야단법석이지만 누구나 안다. 잠시 떠들썩할 뿐 다시 제2의 세월호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키우고 있다는 것을.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참사의 원죄로 지목받고 있는데도 정부가 여전히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지난 2주간 참 많이 울었다. 떠난 이들을 보내고 남아 있는 서로를 붙잡아 일으키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살아 숨 쉬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지만 ‘어른들이 미안하다’는 식의 대책 없는 하소연으로 마무리돼선 안된다. 이젠 분노할 때다. 켜켜이 쌓인 슬픔 위로 차가운 분노를 새겨 넣어야 한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의 일갈처럼 격분이 아니라 냉정하게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약자에 대한 멸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에 맞서는 평화적 봉기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망각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나와 당신 차례다.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