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의 맛, 제대로 보여드립니다
- 통영 | 글 박경은·사진 정지윤 기자 king@kyunghyang.com
마산이나 거제에 대믄 안되지. 토영(통영)은 갱상도(경상도)가 아이라. 여기는 안 나는 고기도 엄꼬, 뭘 해 무도 맛있다. 찌(쪄) 묵고 회로 묵고 꾸(구워)도 묵고 탕도 끓이고….” 경남 통영시 중앙동 활어시장에서 만난 이문자씨(60)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신바람과 흥분이 살짝 묻어났다. 제철을 만난 굴과 물메기, 방어, 감성돔, 광어 등이 펄떡거리는 좌판. 즉석에서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굴껍질을 깐 뒤 탱탱하고 실한 굴을 꺼내 입안에 넣어준다. 시원하게 터져나오는 바다향에 몸이 떨리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재료가 이리 싱싱한데 맛집이 어데 있노. 물 팔팔 끓여 고기 퉁퉁 썰어 옇(넣)고 간 잘 맞추믄 다 맛있지.”
수려한 경관만큼이나 멋과 맛으로 이름 높은 통영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온 “사또보다 높은 수군통제사가 있었던 곳”이라는 말은 그 자부심의 표현이자 근거다. 조선시대 충청·경상·전라도 수군을 통제하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 통영이다. 한양 조정에서 파견된 2품 이하 관리와 식솔들, 8도 각지에서 모인 장인과 병력이 만든 도시. 이 때문에 경상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궁중요리를 비롯해 8도 요리가 어우러졌고 동해나 서해에 비해 풍성한 해산물은 맛의 고장 통영을 만들었다. 찬바람이 불면서 굴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물메기가 제맛을 내는 겨울 통영을 맛보고 왔다.
▲ 생굴만큼 ‘굴떡국’도 흔한 곳
물메기·졸복탕이 속 달래주고
잘 구워낸 볼락은 입맛을 돋운다
빼때기죽·꿀빵도 ‘필수 코스’

굴
1. 굴 : 전국에서 생산되는 굴의 70%가 통영에서 난다. 굴 하면 통영이다. 깨끗한 바다에서 자라는 굴은 11월부터 본격 출하되면서 12월말부터 2월초까지 절정을 맞는다. 굴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철에 생굴을 먹는 것이다. 살짝 끓여 초고추장에 찍어먹거나 쪄 먹기도 한다. 굴무침, 굴젓갈도 통영 사람들이 굴을 먹는 방법이다. 떡국을 끓일 때 소고기 대신 굴을 사용하는 굴떡국도 흔하다. 싱싱한 굴은 중앙 활어시장이나 서호시장 등 재래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다. 크기에 따라 가격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1㎏에 1만~1만2000원 선이다. 웬만한 식당에서도 반찬으로 생굴이나 굴무침을 맛볼 수 있다. 굴국밥, 굴전 등을 메뉴에 넣은 곳도 있으나 굴 전문 요리점은 손에 꼽힌다. 현지인들에게 굴요리는 집에서 해먹는 것이지 돈 주고 사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외지인들이 주로 찾는 전문 요리점에서는 생굴부터 굴가스, 굴전, 굴밥, 굴구이, 굴무침, 굴국 등 다양한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향토집, 대풍관, 영빈관, 통굴가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코스요리는 1인분에 2만~2만5000원선이다. <통영은 맛있다> 저자인 시인 강제윤씨가 최고의 굴요리로 꼽은 통영식 굴젓은 중앙시장이나 서호시장 등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 살 수 있다.

물메기탕
2. 물메기 : 통영 사람들의 속을 달래주는 최고의 해장국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통영의 봄이 도다리 쑥국과 함께한다면 겨울의 시작은 물메기탕이 알린다. 시장 좌판도 물메기가 차지하고, 시내 곳곳의 웬만한 식당에선 물메기탕을 끓여 낸다. 무와 대파, 홍고추 정도를 넣어 끓인 맑고 시원한 국물이 속을 어루만지듯 풀어준다. 고기의 살은 대구 등 다른 생선에 비해 매우 연하고 부들부들하다. 숟가락으로 편편하게 살을 떠서 입안에 넣으면 스르르 녹듯 목을 타고 넘어간다. 처음엔 그 질감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몇 번 떠 넣다 보면 어느새 국물까지 다 비워진다. 물메기탕은 손맛이 따로 필요없다. 싱싱한 재료만으로 충분하다. 값은 1인분에 1만원이다. 항남동 원조밀물식당은 반찬이 푸짐하기로 유명하다.

졸복국
3.졸복 : 복국은 귀하고 비싸지만 통영에선 대중적인 음식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졸복 덕분이다. 물메기와 함께 해장국으로 사랑받는 복국은 물메기탕과 비교할 때 국물 맛의 농도가 훨씬 진하다. 흔하다고 하지만 워낙 많이 먹으면서 요즘은 물량이 달린다. 그래서 참복과 졸복을 섞어 끓여주기도 한다. 아침 해장 음식이다보니 새벽 경매가 열리는 서호시장 주변에 만성복국, 풍만식당, 송이복국, 부일식당 등 복국집이 몰려 있다. 40년도 더 된 복집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은 호동식당과 분소식당. 호동식당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의 무대가 됐던 곳이다. 중앙시장 쪽엔 동광식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복국집들은 반찬으로 제철 생선회와 젓갈 등을 내놓는다. 만성복국도 반찬이 다양하고 맛있기로 이름나 있다.

볼락구이
4. 볼락 : 통영씨티투어 박정욱 사장은 “통영 사람들이 지독히 사랑하고 좋아하는 고기가 볼락”이라고 말했다. 전라도 목포에 홍어가 있다면 통영은 볼락인 셈이다. 사시사철 잡히지만 겨울에 살이 좀 더 차지고 맛이 깊다는 것이 현지 사람들 이야기다. 회나 구이, 매운탕으로 많이 먹고 각 가정에서는 젓갈을 담그거나 김장 때 속으로 넣기도 한다. 예전엔 흔하고 싼 생선이었지만 요즘은 물량이 귀해지면서 값이 많이 올랐다. “뽈락(볼락) 마이(많이) 하는 데가 한산도식당하고 동광식당 이런 데가 있는데 횟집이나 식당에 가도 다 해줍니다. 맛은 다 비슷비슷하지. 재료가 싱싱하이께네. 회나 꾸이 이런 거 물라면(먹으려면) 너무 비싸짓어.” 아침식사 직후 서호시장 낚시점에서 만난 50대 세 명은 볼락 이야기에 벌써 입맛부터 다셨다. 볼락 매운탕은 단맛이 살짝 감돌아 감칠맛을 낸다. 값은 1만~1만2000원. 손바닥만한 크기의 볼락은 구이로 먹을 만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볼락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볼락구이 한 접시(5~6마리)는 3만원 정도다.

빼때기죽
5. 간단한 요깃거리 : 동트기 전 열리는 서호시장은 시락국(시래기국)으로 아침을 맞는다. 새벽 경매를 마친 상인들이나 뱃사람들의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시락국은 무청이나 배추 말린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인다. 장어를 푹 고아 끓이는 원조시락국의 국물맛은 진하고, 흰생선을 끓여 국물을 내는 가마솥시락국의 국물은 맑고 시원하다.
충무할매김밥집은 통영문화마당 앞에 바다를 향해 죽 늘어서 있다. 오징어와 무를 무쳐 김밥과 함께 먹는 것은 똑같지만 집집마다 양념맛은 조금씩 다르다. 딱히 원조라 할 만한 곳은 없지만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은 ‘뚱보할매김밥’이다. 지금은 작고한 어두이씨가 국풍81 행사장에서 팔면서 전국적으로 충무김밥이 알려지게 됐다. 고구마를 말려 팥, 조와 함께 끓인 빼때기죽, 꿀빵 등도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자주 맛보는 간식이다. 문화마당 앞이나 중앙시장 근처에 꿀빵을 파는 집이 몰려 있다. 팥소를 넣고 밀가루를 입혀 튀겨낸 뒤 물엿을 입힌 것으로 팥소 외에 고구마, 단호박을 넣은 것도 있다. 꿀빵의 원조인 ‘오미사 꿀빵’ 본점은 오전 8시에 문을 열어 점심 전에 닫는다.

꿀빵
통영시내 식당의 반찬 인심은 푸짐한 편이다. 물메기나 복국을 끓이는 웬만한 식당에선 제철 생선회와 생선구이, 회무침, 젓갈 등이 기본찬으로 나온다. 겨울철에는 학꽁치회와 생굴, 굴무침, 멸치회무침, 멸치젓갈, 갈치젓갈 등을 흔히 먹을 수 있다. 모자반 등 해초무침, 미더덕 사촌이라는 ‘오만둥이’도 독특하고 맛있다. 전어밤젓도 빼놓을 수 없다. 전어애(전어의 창자)로 만든 젓갈이다. 쫄깃하면서도 알싸한 뒷맛이 매력적이다. 물메기탕이든 복국이든 집집마다 맛이 비슷하다면 반찬으로 뭘 내놓는지 물어보는 것도 식당을 고르는 방법이다. 다른 젓갈과 달리 전어애를 반찬으로 내놓는 식당이 많지는 않다.
물메기나 복국이 익숙지 않다면 현지에서 맛보는 갈치조림, 가자미찜도 맛있다. 까치식당의 갈치조림, 원조충무식당의 가자미찜은 통영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흔히 푸짐한 해물반찬을 기대하고 찾는 통영다찌는 식당이 아니라 술집이다. 술값을 비싸게 받는 대신 제철 해산물을 푸짐하게 차려내 애주가들이 멋과 풍류를 즐기는 공간에 가깝다. 아이들을 동반해 가족들이 함께 가서 저녁을 먹는 곳은 아니다. 풍성한 해물안주가 나온다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다보니 통영의 다찌 중 상당수는 1인분에 일정액을 정해 해산물 요리를 내놓는 형태로 변했다.
▲ 통영 맛집 연락처 (지역번호 055) = 가마솥시락국 646-5973 까치식당 644-4707 대풍관 644-4446 동광식당 644-1112 뚱보할매김밥집 645-2619 만성복국 645-2140 부일식당 645-0842 분소식당 644-0495 송이복국 641-2712 영빈관 646-8028 오미사꿀빵 646-3230 원조밀물식당 643-2777 원조시락국 646-5973 원조충무식당 642-9434 통굴가 645-2088 풍만복국 641-6037 향토집 645-4808 호동식당 645-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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