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성시경(33)만큼이나 여성팬들에게 ‘최적화’된 가수는 흔치 않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노랫말 하며, 깊은 밤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이야기는 연인이 속삭이는 밀어 같다. 오죽하면 그의 콘서트장을 찾는 많은 여성팬들은 “내 안의 소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라고 말할까. 이 때문인지 남성 대중에게 성시경은 ‘공공의 적’이다.

그가 군복무를 마치고 3년 만에 내놓은 7집 음반 <처음>은 어쩌면 이 같은 그의 이미지를 조금은 바꿔 놓을지도 모르겠다. 성시경표의 부드러운 발라드를 예상했던 첫 트랙 ‘처음’은 다소 의외다. 1990년대의 추억과 정서를 이끌어내는 이 곡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어루만져줄 만한 곡이다. ‘노래가 되어’ ‘태양계’ ‘아니면서’ 역시 1990년대 청춘을 보낸 이들의 감성을 강하게 자극할 만한 곡들. 물론 타이틀곡인 ‘난 좋아’ 등 전형적인 성시경표 발라드라고 꼽을 만한 곡들도 있지만, 그의 이번 음반에는 옛 정서를 갈망하는 그의 심정이 강하게 나타난다.
 

■ “아날로그 세대의 마지막”

그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도 스마트폰이 아닌 평범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그가 정규음반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디지털싱글과 미니앨범이 대세를 차지한 요즘 정규음반을 내는 것은 사치스러운 취미생활로 취급받기도 한다지만 그는 “나까지 안 내면 세대의 흐름이 끊길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가요계를 위해서라거나, 어떤 사명감 때문은 아니다. “정말 죽을 만큼 좋은, 위대한 ‘곡쟁이’들의 음악인데, 이런 것들을 전해주고 싶은 거죠.”

‘처음’과 ‘태양계’는 음악감독이자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로 유명한 강승원의 곡. 그가 20년 전에 만들어 놓았던 곡으로 알려지면서 음반 발매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형님이 저에게 어울릴 만한 곡이 있대서 집으로 놀러 갔어요. 기타를 연주하면서 이곡 저곡을 들려주시는데 마치 유재하가 살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이라는 노래를 듣는데 울었어요. 그래서 부탁했죠. ‘2PM 주실 거 아니라면 절 주세요’ 하고.”

강승원 외에도 작곡가 윤상과 작사가 박창학이 음반에 참여했으며 자신이 직접 쓴 곡도 5곡이나 된다.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아코디언 등 따뜻한 감성을 전하는 악기들로만 반주를 실어냈다. 11년 전 데뷔하던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제목도 ‘처음’이라고 붙였다.

“이런 이야기 하면 ‘그만 징징대라’고 핀잔을 받기도 하는데, 참 이해하기 힘들긴 해요. 일본의 안전지대는 아직도 전국 공연을 나서면 표가 매진되고 미국에서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이 콘서트 수익 1위라잖아요. 그런데 우리만 왜 이런 걸까요. 물론 ‘나가수’ 덕에 기타도 많이 팔리고 공연이 매진되는 건 다행이지만, 그만큼 기형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잖아요.”

■ “제가 뭘 잘못했냐고요”

군대 2년을 보내며 가장 걱정했던 것은 감성이 닫히는 것. 그가 없는 2년간 가요계는 빠르게 변해갔다. 지난 5월 제대 후 모든 행보가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감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이유에게 ‘빨대 꽂아’ 함께 디지털싱글도 내보고, 콘서트도 했는데, 걱정했던 것만큼은 아니라 다행이었죠.”

군복무, 그것도 현역으로 마치고 오면 100만 안티팬도 우군으로 돌아선다지만 그는 좀 예외다. 데뷔 초기부터 ‘버터왕자’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남성 대중으로부터 여전히 ‘느끼하다’ ‘재수없다’ ‘뭘 해도 얄밉다’는 질시에 시달린다. 키 크고 목소리 좋고 감미로운 노래 잘하고 호감형 외모와 유머감각, 유창한 말솜씨, 객관적인 ‘스펙’까지 갖춘 그가 군대까지 현역으로 다녀왔으니 남성들의 열등감을 폭발시킬 만도 하다.

“속상하죠. 여성들이 좋아해주시는 거야 감사할 일이지만, 그 때문에 이유없이 욕 먹는 건 싫거든요. 아마도 그런 거 아닐까요? 원빈이나 정우성 보고 환호하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저를 좋아한다고 하니 ‘아니, 쟤가 왜 좋아?’ 하는 심정인 것 같아요. 괴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즐기기도 해요.” 굳이 따지자면 유별나게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고민의 원인이긴 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한다. 이번 음반 작업 때도 몇몇 곡의 닭살스러운 가사가 살짝 걱정스러웠지만 “너 원래 남자팬 없잖아” 하는 주위의 냉정한 답변에 마음을 비웠다.

그는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만족할 만한 성과도 얻었다. 그 좋아하던 술과 안주를 줄이며 반포 집에서 여의도까지 뛰어다녔다. 평소 방송 끝나면 1만 칼로리를 먹어대는 대식가였던 탓에 음식량 줄이기가 무척 힘들었다. 심지어 뭔가를 먹는 꿈을 꾸다 괴로워하며 깬 적도 있다. 그래도 6주째 이어지는 다이어트 덕에 5㎏ 정도 빠졌고, 이 같은 노력은 날렵해진 턱선으로 보답받았다. ‘공공의 적’ 성시경이 탁월한 체력에 샤프한 ‘라인’까지 갖춘 셈이다. 이래저래 남자들은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