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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따라 진화한 ‘연예인, 존재의 의미’

by 신사임당 2011. 6. 27.

“그 시절(1990년대)은 연예인에게 만인의 연인이 되길 요구했죠. 게다가 서태지처럼 일거수 일투족이 대중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슈퍼스타라면 사소한 사생활까지 극도로 숨기는 신비주의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서태지는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신비주의를 도입한 신비주의의 대명사였거든요.”

대중문화 전문가들이 가수 서태지가 결혼 
사실을 감추었던 이유에 대해 내놓은 해석이다. 


연예인들의 사소한 행동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이들의 말 한마디가 트위터를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전해지는 시대. 신비주의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빛이 바랬지만, 포장된 이미지가 존재의 기반이자 인기관리의 비법인 시대도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든 포장하든, 결국 대중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대중을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 점은 연예인들의 영원한 고민이다.

◇ 신비로움 & 신비주의 마케팅

90년대 이전 TV에 등장하는 연예인은 별세계의 사람이었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배우 정보석은 “87년 출연했던 <사모곡>에서 악역을 맡았기 때문에 야외 촬영장에 나가면 동네분들이 ‘나쁜 놈’이라며 돌멩이를 들고 쫓아오기도 했다”면서 “그때는 TV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의 연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말했다.




92년 데뷔한 서태지는 신비주의 마케팅을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가수나 배우들이 차기 작품을 발표
하기 전까지 꾸준히 활동하던 풍토였지만 서태지는 잠적에 가까운 휴지기를 가지면서 대중의 애를 태웠다.
이 같은 신비주의 마케팅은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부채질했고 흥행으로 이어졌다. 스타의 가치와 상품성을 높이는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은 서태지 이후 연예계 전체에 유행처럼 퍼졌다.


90년대 한국 영화를 주름잡았던 배우 한석규 역시 인터뷰나 사생활 노출을 자제했고, 배우 배용준은 신인시절에도 오락·연예 프로그램에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은하, 전지현을 비롯해 임은경, 조성모 등이 신비주의 마케팅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대표적 사례다.
물론 신비주의가 통하려면 모습을 숨길수록 대중이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감출수록 대중이 안달하느냐, 감추다가 잊혀지느냐 둘 중 하나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배용준, 서태지의 신비주의가 아직까지 먹히는 것은 엄청난 대중적 인기라는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인간적인 면모 공개로 매력

연예계의 신비주의가 퇴색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다. 그전까지 대중매체에서 다룬 연예인 관련 콘텐츠는 연예인들이 공급하는 소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정보가 시시콜콜하게 공개되고 생산되는 인터넷의 발달로 신비주의는 발붙이기 어려워졌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예전에는 신문, 방송, 잡지 등 일방향 매체를 통해서만 스타를 만났기 때문에 신비주의가 가능했지만 매체환경이 달라지면서 신비감은 사라지는 대신 대중은 친밀감을 주는 스타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여신 이미지로 군림하던 고현정씨가 토크쇼에 나와 ‘노래방에서 벽을 탄다’는 식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예쁜 연예인들이 엽기사진 등을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수 이효리는 아이돌그룹 핑클에서 요정 같은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고 섹시한 이미지의 카리스마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톱스타로서의 위치를 굳힌 것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망가지는 모습으로 친근감을 보여준 뒤다.


인터넷과 더불어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 리얼버라이어티 등의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현재는 가급적 노출을 많이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촬영장이나 방송국 대기실을 찾으면 스마트폰, 랩톱 등으로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이름
을 검색해보는 연예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근래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는 HOT, 젝스키스 등 90년대 원조 아이돌 가수들은 시대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들이 프로그램에서 풀어놓는 주요 화제는 과거 전성기 때의 숨겨진 이야기와 재미있는 일화들. 당시에는 화장실
에도 가지 않는 것 같은 이미지였던 이들은 진솔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쌓는 데 주력하고 있다.

◇ 실시간 중계와 사생활 팔기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는 지난해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미술관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이 제 사진을 찍으시더라고요. 계속 있다가 관람객들에게 불편을 줄 것 같아서 부랴부랴 나왔는데 바로 전화가 왔어요. 제가 미술관에 있는 모습이 인터넷에 떴다고. 좀 놀랐죠.”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발달하면서 대중연예인들의 모습은 물론 말 한마디까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트위터가 일반화되면서,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생각의 단편까지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곤욕을 치른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연예인을 사칭한 트위터까지 나돌고 있다.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알 권리’로 둔갑해 신상털기 등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반면 연예인들의 사생활 팔기도 이 같은 분위기를 부추긴다.
존재의 기반이 대중인 연예인들에게 무관심은 치명타다. 이 때문에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실력이나 능력으로 스타성을 유지할 수 없는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팔아서라도 대중의 관심을 사기 위해 애쓴다”고 지적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은 “앞으로는 해외의 대중스타들처럼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까지 24시간 공개되는 것이 보편화될지 모른다”면서 “외국의 경우 대중스타들의 일상과 사적 정보를 상품으로 여기고 이를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지만 국내에서 연예인을 공인으로 취급하며 ‘국민의 알 권리’라는 핑계를 내세워 사생활 캐기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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