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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편곡전쟁 ... 원작에 가깝거나 파격적이거나

by 신사임당 2011. 5. 25.


가수 정엽이 ‘짝사랑’을 부르자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백지영의 ‘무시로’가 흘러나올 땐 관객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트로트 명곡들이 컨템퍼러리 재즈로, 정통 발라드로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MBC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의 가창력과 퍼포먼스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지만, 그 이면엔 치열한 ‘편곡 전쟁’이 숨어 있다. 익히 알려진 곡이 편곡이라는 마술을 통해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편곡의 위력과 역할을 톡톡히 실감하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들 사이에 “이 프로그램 최대 수혜자는 편곡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피말리는 편곡전쟁 = 정엽이 불렀던 ‘짝사랑’부터 지난 22일 방송분에서 임재범이 들려줬던 ‘여러분’까지, 관객들을 울리고 감탄하게 만들었던 곡은 편곡자들의 손을 통해 나왔다. 방송 화면은 무대 안팎을 오가는 가수들을 잡으며, 이들의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들 못지않게 매번 피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은 편곡자다.

편곡은 가수들에게 가장 맞는 옷을 찾아 입히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김범수의 노래 편곡을 도맡았던 편곡자 돈스파이크는 “범수씨가 불렀던 ‘늪’은 4~5일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고민했던 노래”라며 “내가 왜 이 경쟁에 동참했는지 후회할 때도 여러 차례”라고 심리적 중압감을 털어놨다.

임재범의 ‘빈잔’과 ‘여러분’을 편곡했던 하광훈은 “임재범씨가 편곡을 의뢰할 때 했던 말이 ‘알아서 해 줘,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잖아’였다”면서 “그에게 맞는 스타일이 뭔지, 그와의 일화, 함께했던 다양한 경험을 다 떠올려야 했다”고 말했다.

편곡자들이 털어놓는 고충은 스튜디오 편곡작업과 달리 미묘한 차이가 너무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1주일 이내에 작업해야 하기에 시간적 여유도 부족하다. 돈스파이크는 “콘서트보다 오히려 이 한 곡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더 즐기고 좋은 선물이 되겠지만 만드는 사람들은 미쳐간다”고 말했다.

◇ 원곡에 가깝거나 파격적이거나 = 편곡은 원곡에 최대한 가깝게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느낌을 갖도록 파격적인 시도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파격적이든 원곡에 가깝든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소화해 감동을 준다면 잘된 편곡이라는 것이다.

‘나가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MBC라디오 남태정 PD는 “임재범의 ‘빈잔’, 정엽의 ‘짝사랑’ 등은 파격적 편곡으로 꼽히고, 이소라의 ‘사랑이야’는 원곡에 가까운 소박한 편곡으로 꼽을 수 있다”면서 “가수에게 꼭 맞게 재단됐다는 점에서 이들 사례는 모두 성공적인 편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요 근래 현장에서 원곡에 가까운 노래에 대해 “성의없다”는 진단을 내리는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은 다소 아쉽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앞서 탈락했던 김건모는 “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르기에 앞서, 내로라하는 편곡자들이 레게나 보사노바로 바꾸자고 했지만 나는 원곡을 훼손하지 않는 쪽으로 편곡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돈스파이크는 “ ‘나가수’에서 사용되는 편곡은 여느 때의 방식과 다르다는 걸 모든 참가자들이 알고 있다”면서 “디테일한 부분보다는 현장감을 중시하고, 관객들이 기다리는 ‘폭발점’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편곡기법과는 다른, ‘나가수’ 스타일 편곡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가요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중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화려한 기교와 ‘폭발점’이 사용된 편곡이지만, 이 같은 스타일이 반복되면 질리기 쉽다”면서 “라이브 공연이다보니 이 같은 화려함이 빛을 발하고 있긴 한데, 앞으로는 더 폭넓은 다양성이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새로운 창조 편곡 = 편곡이란 두 가지 의미로 풀이된다. 협의로는 작곡가가 작곡한 멜로디라인에 악기를 편성하고 코드, 비트 등을 정해 음악적 구성을 완성하는 일이다. 넓은 의미로는 원곡을 다른 곡으로 리메이크할 때 활용되는 음악적 기법이다. 작곡은 멜로디만 흥얼거릴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편곡은 음악적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곡 중에서는 리메이크를 통해 원곡 이상의 명곡으로 평가받는 곡들이 많다. 김건모의 ‘그대 내게 다시’는 변진섭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고, 임재범의 ‘너를 위해’도 에스더의 ‘송애’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만들었다.

음악평론가 강태규는 “대중에게 ‘편곡’이 화두로 던져졌다는 것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방법을 맛보게 됐다는 것”이라면서 “ ‘내가 알고 있던 노래가 저렇게도 바뀔 수 있구나’ 하는 점을 확인하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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