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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 이제 나는 배우 염정아다

by 신사임당 2011. 4. 20.
스타도 아니고, 스타가 아닌 것도 아닌 채 연기인생 10년이 흘렀다. 영화 ‘장화, 홍련’ 통해 연기파 배우로 발돋움,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1년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다시 대중의 환호와 찬사를 받고 있다.

연기인생 20년. 배우 염정아(39·사진)에겐 두 차례의 중요한 변곡점이 있다. 한번은 2003년 영화 <장화, 홍련>에서 새엄마를 연기했을 때이고, 또 한번은 2011년 드라마 <로열패밀리>로 대중과 만난 지금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타이틀로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그의 연기인생 초기 10여년은 특별한 그 무엇이 없는 무미건조한 시간이었고, 스타로도 대접받지 못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스타도 아니고 스타가 아닌 것도 아닌 채 한 번도 팬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시간이었다.



<장화, 홍련>을 통해 배우로 재발견된 뒤, <범죄의 재구성> <여선생 여제자> <오래된 정원> 등을 거치며 그는 연기파 배우로 7년간 충무로에 자신의 입지를 쌓았다. 그리고 2011년. <로열패밀리>의 김인숙을 연기하는 염정아에게 대중들은 비로소 환호와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 1991년 = 염정아는 미스코리아 선으로 연예계에 들어섰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미스코리아는 스타 연기자가 되는 관문으로 여겨졌다. 작은 얼굴에 큰 이목구비, 암고양이와 닮은 눈매, 가늘고 마른 그의 몸매가 풍겨내는 묘한 매력은 당시만 해도 주류를 이루고 있던 국내 여배우들에게서는 찾기 힘들었다. 팜므파탈에 어울리는, 당시로서는 ‘위험한’ 이미지. 심은하, 최진실 등이 여주인공의 주류를 이루던 90년대의 드라마 트렌드는 착한 이미지의 여주인공만이 스타가 되는 시대였다. 더성형외과 옥재진 원장은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의 연예인들이 대세이던 90년대에 데뷔한 염정아씨의 얼굴은 2000년대 이후에 득세한 입체적 미인상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청춘스타들의 산실이던 인기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연기의 첫발을 뗀 뒤 그는 <모델> <크리스탈> 등 트렌디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악녀의 이미지가 부각되는 배역을 잇따라 맡았다. 절치부심하며 <테러리스트> <텔미썸딩>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배우 염정아를 부각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 2003년 = <장화, 홍련>은 ‘배우 염정아’를 주목하게 만든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은 그를 어떻게 알아봤을까. “그전에도 염정아를 보면서 연기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성도 있는데 단지 터닝포인트를 못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 <장화, 홍련>을 기획하면서 우연히 정아씨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게 됐는데 주위의 아주 미세한 소리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봤다. 소리뿐 아니라 냄새, 맛 이런 것에도 아주 민감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때 <장화, 홍련> 시나리오를 막 쓴 상태였고, 계모 은주를 저런 캐릭터로 만들면 재밌겠단 생각을 했다. 파리한 외모의, 불안정하고 히스테리컬한 캐릭터가 그로 인해 완성됐다.”

<장화, 홍련>을 통해 숨겨진 광기를 발산한 그는 이후 <범죄의 재구성> <여선생여제자>에 이르기까지 물오른 연기력과 다채로운 캐릭터를 뽐내며 ‘미녀 연예인’에서 ‘배우’로 탈바꿈했다. 원톱을 맡았던 <여선생여제자>에서는 숨겨진 코믹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요부 같은 그의 이미지 어디에 이런 털털함이 숨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장화, 홍련>에서 극중 남편 역인 김갑수씨와 염정아를 주인공으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면 진짜 ‘골때리는’ 영화가 나올 것 같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진 아주 예민하고 선병질적인 연기자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선 아주 산만하고, 아무렇게나 말하고, ‘캬악’ 소리 잘 지르고, 아무 데나 잘 부딪치는 천방지축 선머슴이더라.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꼭 코믹 캐릭터에 도전해 보라고 했고, 그 예견은 맞아떨어졌다.”(김지운)

◇ 2011년 = “<로열패밀리>에서 카리스마와 관록의 대배우인 김영애씨에게 밀리지 않고 팽팽하게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대단한 연기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염정아가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것은 이제 잊혀졌어요. 배우 염정아일 뿐이죠.”(영화평론가 심영섭)

높낮이와 결이 각기 다른 이율배반적인 감정선을 오르내리는 캐릭터 김인숙. 그 안에 배우 염정아는 없다. 복합다면적인 캐릭터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고난도의 연기가 물흐르듯 펼쳐지고, 대중들은 화면을 꽉 채운 김인숙에게만 숨죽여 집중한다. 대중들이 염정아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그의 외모에는 백치와 팜므파탈을 오가는 반전이미지가 숨겨져 있고, 김인숙이라는 캐릭터 역시 극중 상대와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고 뒤집어 엎는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배우와 캐릭터가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배우 염정아의 연기인생은 어찌보면 김인숙의 그것과 닮은 면이 있다. 고통속에 숨죽이며 다져온 18년간의 세월이 ‘괴물’과도 같은 묘한 캐릭터 김인숙을 만들었다면, 절망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자신을 내던져 온 십수년의 세월은 배우 염정아를 만들었다. MBC 드라마국 한희 책임프로듀서는 “미스코리아처럼 화려하게 데뷔하는 연기자들 대부분은 CF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그 순간부터 연기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만 염정아는 연기로 승부를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면서 “중간중간 포기할 만한 상황들도 많았지만 꾸준히 온 몸을 던져 한계에 도전하고 노력해 온 대기만성형 배우”라고 말했다. 정덕현은 “화려하게 데뷔한 청춘스타가 나이 들어가며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롤모델”이라고 평가한다.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서 있는 그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하나 있다. 평범한 캐릭터로 연기의 풍성함을 늘려보는 것이다.

“아주 독특하거나 강렬한 캐릭터가 아닌, 중간소리를 내는 캐릭터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배역을 맡아 구현해보는 것이 도전과제라고 봅니다.”(김지운) “평범한 엄마역할? 그냥 흔히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보면 좋겠어요. <내조의 여왕>에 나오는 천지애 같은 역할도 좋고.”(심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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