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의 황정민·유해진, <황해>의 김윤석, <의형제>의 송강호, <이끼>의 정재영·박해일·강신일. 이들이 없다면 현재의 한국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탄탄하고 흡인력 있는 연기로 한국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의 공통점은 오랜시간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갈고 닦았다는 점이다. 조각 같은 외모 대신 내로라하는 연기력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히면서 이들은 현재 한국영화를 이끌고 있는 축이자 수원(水源)이 됐다.
◇ 문성근에서 송새벽까지 = 지명도 높은 배우를 대거 배출한 대학로 극단으로는 연우무대와 이곳에서 갈라져 나온 차이무, 그리고 목화, 학전, 골목길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30년 이상의 연혁을 자랑하는 연우무대는 웬만한 배우들은 모두 이곳을 거쳐갔을 정도다.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안석환·김뢰하 등의 중견배우, 지난해 화려하게 영화계에 부상한 송새벽 등은 연우무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이다. 연우무대에서 활동하던 주축들이 90년대 중반 새롭게 만든 극단 차이무는 문성근·송강호·유오성 등이 대표적이다.
수적으로 가장 많은 배우를 배출한 곳은 극단 목화다. 연출가 오태석이 이끄는 목화는 혹독한 연기수련으로 높아진 ‘악명’만큼이나 출신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신뢰감이 높은 곳이다. 유해진·김윤석·손병호·정은표·성지루·박희순 등 주연부터 조연급에 이르기까지 영화계 전방 포진하고 있다. 학전 출신으로는 설경구와 황정민, 골목길은 박해일이 대표적이다. 신하균·정재영도 장진 감독과 함께 연극무대에서 시작했다. 연희단 거리패 출신의 오달수, 한양레퍼토리의 이문식, 아리랑의 박철민도 빼놓을 수 없다.
◇ 충무로 대세 = 연극배우가 영화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부터다. 2000년대 들어서 대학로는 충무로에 배우를 공급하는 대세로 정착하게 됐다. 안정된 연기력과 긴 호흡을 가졌다는 강점은 이들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된 요인이다. TV 탤런트 출신이 영화계에 자리를 잡은 사례가 손에 꼽힐 정도라는 점은 그 방증이다.
시기적으로는 90년대 중반 <초록물고기> <넘버3> <박하사탕> 등 독창적인 한국영화가 선보이기 시작하면서다. 장진 감독은 “당시만 해도 연극계에서 영화에 대해 갖던 선입견은 컸다. 그런데 설경구·송강호·유오성 등은 이 같은 터부와 편견을 깼다. 특히 <초록물고기>에 이어 <넘버3>에 출연했던 박광정, 송강호의 활약은 분수령이 됐다고 할 만큼 두드러졌다. 한번 주목을 받은 뒤에 다음 작품에서도 연달아 너무 잘해주면서 대중적으로도 인정받게 됐으니까. 후에 박해일 등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연극하다가 영화로 가는 게 아니라 연극판 스타가 영화의 러브콜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분위기, 연극계와 영화계의 트렌드 변화도 바탕이 됐다. 배우 문성근은 “80년대 초부터 연극계에 리얼리즘 연기패턴이 확산됐고 90년대 들어 사실주의적 영화가 많이 나오면서 그런 연기가 가능한 사람을 연극계에서 찾게 된 것”이라면서 “당시 극단에서 창작극을 선보이면서 현실적인 연기를 주도하던 연우무대를 거쳐간 배우들의 영화진출이 활발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연극으로 연기 훈련을 한다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설경구·송강호·유오성 등이 보여줬기 때문에 감독들도 믿고 연극배우들을 섭외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영화감독들이 대학로를 중심으로 배우들을 발굴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예전에 대학로에 주로 머물렀던 박찬욱 감독의 사무실을 현재는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 사용하고 있다. 연극으로 시작한 장진 감독은 최근에도 <로미오 지구착륙기>를 무대에 올리는 등 연극과 영화 양쪽을 오가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김지운·임상수·허진호 감독도 대학로 출신 배우들과 돈독한 인연을 자랑한다.
◇ 여배우는 한계 = 그렇지만 이 같은 흐름은 여배우들로 넘어가면 좀 달라진다. 대학로 출신이라고 일컬을 만한 배우는 오지혜·고수희·김여진 정도에 불과하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문성근의 설명은 이렇다. “현실적으로 여배우는 미모가 없으면 안된다. 대중문화 소비자의 폭력성, 즉 내적폭력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대중들은 여배우가 예쁘지 않으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마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배우를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시대가 변하면서 아주 예쁘지는 않아도 연기를 잘하면 인정받는 풍토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선배 입장에서는 기쁘다.”
공연시장이 커지는 반면 연극계가 위축되면서 언제까지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공연이 산업화되면서 대학로는 극단시스템이 퇴색해가고 있는데다 연예기획사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계의 한 관계자는 “연극을 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춥고 배고팠던 것은 마찬가지지만 최근엔 상대적 소외감이 더 심해지면서 예전처럼 극단에 들어가 도제식으로 연기를 배우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면서 “이 때문에 앞으로도 대학로가 배우를 공급할 산실로 작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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