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여성투톱 선악구도.
 한국 드라마에서 몹시 진부한, 익숙한 구도입니다. 뻔한 스토리, 구조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드라마에선 한동안 인기를 얻어왔던 스토리 구조였습니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해도 다름아닐 정도로 말입니다. 예전엔 미니시리즈 등 황금시간대에 이같은 드라마가 많이 나왔습니다. 십수년전 방송됐던 숙희(고소영, 심은하가 출연했습니다), 손예진과 김규리가 나란히 나왔던 선희 진희, 또 방송국의 암투를 그렸던 <이브의 모든 것>(여긴 김소연, 채림씨가 장동건을 사이에 두고 불꽃튀는 경쟁을 벌였습니다), 전형적인 선악의 대결을 보여줬던 <진실>(최지우 박선영), 또 김민정과 이요원이 연기대결을 벌였던 <패션 70>도 있습니다. <천국의 계단>의 최지우와 김태희, <미스터Q>의 송윤아와 김희선도 생각나네요. 그런데 여기서 패션70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악역이 악역을 위한 악역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충분한 동기나 설득력보다는 극적 긴장감과 갈등을 재미의 주된 요소로 놓았기 때문에 악역이 특히나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만났던 김소연씨는 <이브의 모든 것> 이후 들어오는 역은 점점 이해안되고 심한 악역 뿐이었기 때문에 몹시 큰 심적인 고통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악을 위한 악, 설득력 없는 악역이었다는 이야기죠.



 사극 역시 이같은 구도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니만큼 한쪽을 악의 극한으로, 한쪽을 선의 극한으로 놓고 대비하면서 눈길을 자극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희대의 악녀, 요부로만 기억되어 온 장희빈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지난해 방송됐던 <동이>에 앞서 만났던 이병훈 감독은 이같은 역사의 기록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장희빈을 비즈니스적인 마인드와 정치적 감각을 지닌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 그리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새로운 모습의 장희빈을 기대했었으나 아쉽게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최근 몇년사이에는 이같은 선악구도가 희미해졌습니다. 대신 주말드라마나 일일극, 아침드라마에서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죠. 제목부터 <성녀와 악녀> <장화 홍련> 뭐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요 근래 선보였던 드라마 중에서 딱히 악녀라고 기억되는 사람이 기억나지 않네요. 굳이 꼽자면 <선덕여왕>의 미실 정도이어야 하는데 근래 드라마에서 악역이라고 굳이 분류되는 사람은 악역이라기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충분히 공감할만한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경우가 많습니다.
 선한 쪽도 천편일률적으로 선하게 그려지는 것이 시청자들을 질리게 만들고 싫증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주인공도 착하디 착한 성격보다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감있고 빈틈있는 매력의 캐릭터가 많이 나왔습니다. 지난해 착하기만 한 동이를 보면서 살짝 질리면서 맥빠졌던 기억 없으신지...

선희 진희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완전 풋풋하죠...



 다음달부터 KBS에서 방송되는 가시나무새라는 드라마가 이같은 대결구도를 이어갑니다. 한혜진, 김민정 두 배우를 투톱으로 합니다. 단선적인 선악구도로 제작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새롭게 선악구도를 전면에 내세워 풀어갈 것인지는 궁금합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긴 합니다. 한혜진, 김민정. 두 배우 하면 누가 선, 악역을 맡을지 대략 짐작되지 않으신지... 그래서 다소 김이 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혜진이 강렬한 악역으로, 또랑한 눈매의 김민정이 선한 역할로 나왔다면 그 캐스팅만으로도 색다른 느낌을 줬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