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약간 해쓱해보였다. 한달째 이어지던 감기가 겨우 떨어졌기 때문일까. 목소리까지 살짝 잠겨 있었다.
“약을 먹으면 목이 쉬고 말라 버리기 때문에 노래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답답해도 버티면서 기다려야 해요.”
디바 박정현(34). 그가 말하는 모습은 노래할 때와 비슷했다. 다채로운 표정에선 꿈꾸는 소녀 같은 희망이 내비쳤고, 말할 때마다 따르는 특유의 손동작에선 강단과 열정이 느껴졌다.
데뷔 이후 쉼없이 활동하던 그가 대중들의 곁을 훌쩍 떠났던 시간은 1년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이 시간을 당차고 알뜰하게 꽉꽉 채웠다. 지난 2003년 중단했던 학업(미국 컬럼비아대 영문과)을 우등으로 마쳤고, 데뷔 초기이던 10여년 전 내놨던 3장의 음반을 재해석한 스페셜 음반까지 내놨다.
“지난해 뉴욕으로 돌아가면서 갈등 많이 했어요. 막상 공부는 마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자신도 없고 기억력도 나빠지고…. 어린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게 두려웠죠.
그래서 지난 1년 동안은 죽어라 책만 파고 몰입했어요. 가끔씩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공연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는데 그땐 주말 동안 휙 날아가서 공연하고 금세 돌아와 도서관에 앉았죠. 그런 생활을 본 몇몇 친구들은 저를 한나 몬타나(낮에는 평범한 학생, 밤에는 인기가수로 활동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시트콤 주인공)라고 불렀다니까요.”
태어나서 스무살까지 자란 LA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낯선 이국 땅이던 서울. 이곳에서 지낸 지 십수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에서의 지난 1년은 오히려 낯설고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삶이었다.
언어는 편했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온돌방이 생각났고, 친구들과 걷던 서울의 밤거리도 그리워졌다. 지난 18일 발표한 베스트 앨범 <커버 미>도 한국을 떠나 있던 1년여의 시간이 바탕이 됐다.
“베스트 앨범이라면 굉장히 오랜 연륜을 가진 선배들만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3집의 노래들을 다시 불러보면서 이제사 내 노래가 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당시엔 아무 것도 모르고, 이곳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던 어린 여자애가 부른 노래였던 것 같아요.”
음반에는 ‘You mean everything to me’ ‘PS I Love you’ ‘나의 하루’ ‘夢中人’ 등 초창기 그의 히트곡이 담겨 있다. 주로 공연장이나 라이브 방송 무대에 맞게 편곡했던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버전을 골라 묶었다. 이 때문인지 익숙한 제목과 노랫말이지만 전주에서 전해지는 느낌부터 완전히 새로운 곡이다.
그는 “공연장에서는 충분히 즐겼지만 그 감동과 느낌을 남겨서 되새기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며 “곡마다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나의 하루’는 2003년 1월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부른 라이브 버전을 그대로 실었다. 그는 이 곡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이 날의 퍼포먼스와 현장분위기는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할 만큼 만족도가 높은 곡이다.
지금까지 낸 정규음반 7장 중 그는 5집부터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시도를 하고 있으며 창법과 음색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각인돼 있는 그의 모습은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의 ‘R&B 요정’이다.
그의 등장으로 국내 가요계에 R&B가 대중적으로 뿌리내렸고, 그의 등장 이후 많은 여성 보컬들이 도전장을 냈지만 그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요정이라니, 제 나이가 몇인데요. 서른 중반이 돼서 그런지 아픈데도 많고 피로도 빨리 느끼고 그래요(웃음). 이젠 부모님이 지지해 주시고 많이 좋아하시는데 한편으론 걱정도 많이 하세요. 막내도 결혼했는데 혼기 지난 큰딸이 결혼 안하고 있으니까요. 때가 되면 다 하겠죠. 사실 저의 이런 태평함을 걱정하시는지도 몰라요.”
보너스 사진.....
“약을 먹으면 목이 쉬고 말라 버리기 때문에 노래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답답해도 버티면서 기다려야 해요.”
디바 박정현(34). 그가 말하는 모습은 노래할 때와 비슷했다. 다채로운 표정에선 꿈꾸는 소녀 같은 희망이 내비쳤고, 말할 때마다 따르는 특유의 손동작에선 강단과 열정이 느껴졌다.
데뷔 이후 쉼없이 활동하던 그가 대중들의 곁을 훌쩍 떠났던 시간은 1년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이 시간을 당차고 알뜰하게 꽉꽉 채웠다. 지난 2003년 중단했던 학업(미국 컬럼비아대 영문과)을 우등으로 마쳤고, 데뷔 초기이던 10여년 전 내놨던 3장의 음반을 재해석한 스페셜 음반까지 내놨다.
“지난해 뉴욕으로 돌아가면서 갈등 많이 했어요. 막상 공부는 마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자신도 없고 기억력도 나빠지고…. 어린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게 두려웠죠.
그래서 지난 1년 동안은 죽어라 책만 파고 몰입했어요. 가끔씩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공연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는데 그땐 주말 동안 휙 날아가서 공연하고 금세 돌아와 도서관에 앉았죠. 그런 생활을 본 몇몇 친구들은 저를 한나 몬타나(낮에는 평범한 학생, 밤에는 인기가수로 활동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시트콤 주인공)라고 불렀다니까요.”
태어나서 스무살까지 자란 LA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낯선 이국 땅이던 서울. 이곳에서 지낸 지 십수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에서의 지난 1년은 오히려 낯설고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삶이었다.
언어는 편했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온돌방이 생각났고, 친구들과 걷던 서울의 밤거리도 그리워졌다. 지난 18일 발표한 베스트 앨범 <커버 미>도 한국을 떠나 있던 1년여의 시간이 바탕이 됐다.
“베스트 앨범이라면 굉장히 오랜 연륜을 가진 선배들만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3집의 노래들을 다시 불러보면서 이제사 내 노래가 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당시엔 아무 것도 모르고, 이곳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던 어린 여자애가 부른 노래였던 것 같아요.”
음반에는 ‘You mean everything to me’ ‘PS I Love you’ ‘나의 하루’ ‘夢中人’ 등 초창기 그의 히트곡이 담겨 있다. 주로 공연장이나 라이브 방송 무대에 맞게 편곡했던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버전을 골라 묶었다. 이 때문인지 익숙한 제목과 노랫말이지만 전주에서 전해지는 느낌부터 완전히 새로운 곡이다.
그는 “공연장에서는 충분히 즐겼지만 그 감동과 느낌을 남겨서 되새기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며 “곡마다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나의 하루’는 2003년 1월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부른 라이브 버전을 그대로 실었다. 그는 이 곡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이 날의 퍼포먼스와 현장분위기는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할 만큼 만족도가 높은 곡이다.
지금까지 낸 정규음반 7장 중 그는 5집부터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시도를 하고 있으며 창법과 음색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각인돼 있는 그의 모습은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의 ‘R&B 요정’이다.
그의 등장으로 국내 가요계에 R&B가 대중적으로 뿌리내렸고, 그의 등장 이후 많은 여성 보컬들이 도전장을 냈지만 그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요정이라니, 제 나이가 몇인데요. 서른 중반이 돼서 그런지 아픈데도 많고 피로도 빨리 느끼고 그래요(웃음). 이젠 부모님이 지지해 주시고 많이 좋아하시는데 한편으론 걱정도 많이 하세요. 막내도 결혼했는데 혼기 지난 큰딸이 결혼 안하고 있으니까요. 때가 되면 다 하겠죠. 사실 저의 이런 태평함을 걱정하시는지도 몰라요.”
보너스 사진.....
2001년 모습
2005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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