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출처 : 경향신문

각 기업들이 새해를 맞아 새출발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들 기업 앞에는 올해에도 고유가, 환율, ‘중국 변수’ 등 여러 악재들이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선봉장을 자임하는 기업들은 전세계적인 무한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경영 비전과 전략으로 도전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경향신문은 10회에 걸친 ‘한국경제 현장을 찾아서’라는 시리즈를 통해 업종별로 주요 기업들의 ‘출사표’를 소개한다.



울산 남동쪽 58㎞의 짙푸른 바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헬기가 아래로 다가가자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섬이 눈에 와락 들어왔다.



2004년 생겨난 이 섬의 이름은 ‘동해-1’ 가스전 해상 플랫폼. 겉으로 봐서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자원보국’ 대한민국의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다. 자원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깨고 우리나라 석유 자주권을 향해 첫발을 뗀 역사의 성지(聖地)다.



우리나라는 이제 명실상부한 산유국이다.



2004년 7월 ‘동해-1’ 가스전에서 가스와 석유가 쏟아지면서 우리나라도 어엿한 세계 95번째 산유국 반열에 오른 것. 수십년간 우리나라를 따라다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수식어도 이제는 옛말이다.



해저생산시설에서는 바다속 3,000m에서 천연가스와 컨덴세이트(초경질유)를 뽑아 올린다. 여기서 나온 가스와 컨덴세이트는 해상 플랫폼 1층에 있는 분리·수분 제거시설을 거친 뒤 파이프 라인을 타고 울산 석유공사 가스전 터미널과 에쓰오일 정제공장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는 하루 5천만입방피트(LNG 환산시 1,000t). 전체 매장량은 울산·경남지역 34만가구가 15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돈으로 환산하면 16억달러어치. 별도의 정제과정 없이 바로 차에 넣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고품질 초경질유인 컨덴세이트도 하루 1,200배럴씩 생산된다. 1백90만배럴 규모의 매장량을 돈으로 치면 약 1억1천만달러어치다. 비록 중동의 오일달러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를 산유국 대열에 올려놓은 소중한 자산이다.



지난달 27일 찾은 이곳은 거센 바닷바람이 몰아쳐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다. 칼날 같은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이자 발밑에서 휘몰아치는 시퍼런 파도 때문에 오금이 저려왔다. 플랫폼이 17.5m 높이의 파고와 초속 51m의 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난간을 잡은 손아귀엔 힘이 점점 들어갔다.



하지만 직원들의 손놀림은 능수능란하다. 보기에도 아찔한 철제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가스 누출 여부를 체크하는 모습이 듬직해 보인다. 고압의 가스관이 플랫폼 전체를 두르고 있는 만큼 가스관의 안전상태를 체크하는 것은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업무.



웅웅거리는 기계음으로 가득한 1층 분리시설 한쪽에서 컨덴세이트 샘플 채취가 한창이다. 이 일을 맡은 유광열 계장은 “1주일에 한번씩 샘플을 뽑아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온이 내려갈 때는 설비가 얼어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말 그대로 ‘불구덩이’ 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치의 빈틈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해-1 가스전 해상 플랫폼에 근무하는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이 컨덴세이트 샘플을 채취하고 가스 누출 여부를 점검하는 등 가스 생산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이곳에 근무하는 석유공사 직원은 30명. 2개조로 나뉘어 2주를 근무하고 육상에서 2주를 쉬는 방식이다. 이들의 주방·세탁업무를 봐주는 용역회사 직원들과 외국인 기술자를 합하면 상주 인원은 20여명 남짓이다.



해상 플랫폼 근무는 24시간 비상근무체제. 지난해 9월 태풍 ‘나비’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당시를 제외하고는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이곳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는 철저한 자급자족 시스템. 해저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로 발전기를 돌려 TV를 보고 밥도 짓기 때문에 에너지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



플랫폼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다. 비록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포함돼 있지만 일본 국적의 참치잡이 어선이 신경을 거스른다. 또 울산항을 드나드는 선박이 플랫폼에 접근하지 않도록 순시선이 끊임없이 플랫폼 주변을 돌고 있다. 밤에는 최대한 불을 밝히고, 때에 따라서는 경고 방송도 한다.



해상 플랫폼 식구들은 요즘 잔뜩 들떠 있다. 이곳 해상 플랫폼에 곧 새식구가 들어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동해-1’ 가스전에서 5㎞ 떨어진 고래-8구조에서 4백억 입방피트(80만t) 규모의 가스층이 추가로 발견된 것.



고래광구도 동해-1 가스전으로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개발된다. 석유공사는 이르면 2007년 말쯤 상업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가스전은 추가설비 없이 파이프라인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경제성은 더 좋은 편이다.



우리나라가 꿈꾸는 자원 자주개발의 꿈도 무르익고 있다. 인근 해역에 대한 추가 탐사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플랫폼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해상에서는 석유공사의 용역을 맡은 싱가포르 국적의 시추선 ‘트랜스 오션 레전드’ 호가 작업에 한창이다.



해상 플랫폼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이재형 과장은 “그래도 저렇게 시추선이 다니는 모습을 보니 이웃 같아서 좋다”면서 웃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연말연시를 보낸 게 벌써 2년째라는 이과장. 비좁고 답답한 플랫폼 생활에다 24시간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도 그는 ‘내일’의 희망을 품고 있다.



그는 직원들 모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람과 긍지를 호흡하며 지낸다고 자랑했다. 세계 어디서든 ‘산유국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그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울산 동해-1가스전|박경은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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