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서울시교육감 선거 결과에 결정타가 됐던 후보자 자녀들의 태도를 보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일전에 가졌던 모임에서 한 기업 임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만약 우리 애라면 뭐라고 할까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어요. 혼잣말하듯 ‘뭐래?’ 이러곤 고개도 안 돌리고 방으로 들어갑디다. 어찌나 멋쩍던지. 나중에 나더러 ‘아저씬 누구세요’ 할 판이더라니까.”

맞은편에 앉은 40대 중반의 사업가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우리 집사람도 한방 먹었잖아요. 아들 녀석이 뭐라는 줄 아세요? 엄마의 정보력과 감시력이면 교육감보단 국정원이나 CIA에 가면 더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나. 그러고 보면 애들 판단이 제일 정확해요. 으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다 문득 내 딸은 뭐라 할지 궁금해졌다. 며칠 뒤 딸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들고 들어가 친한 척하며 슬쩍 물었다. 피식 웃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정색하는 딸. “아예 처음부터 말리지. 그 말실수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엄마는 방송이 아니라 신문사에서 일하는 게 천만다행이야. 외잃고 소양간 고친다, 번둥천개, 피즈치자, 닮은 살걀, 안성탕스 한박면…, 끝도 없지. 어디 공개석상에서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포털사이트에 도배질하려고? 난 무슨 죄야? 누구 딸이라고 신상 털리고. 피곤해.” 재미삼아 건넨 말에 본전은커녕 내 수준만 적나라하게 확인하고 말았다.

자녀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신은 어떤 사람일지, 실제로 주위 부모들 상당수가 이를 궁금해했다. “우리 애 믿는다” “자신 있다”며 큰소리치는 허세형, “꼰대라고 욕하겠지” “난 불량 부모라…” 하는 체념형, “지가 부모 되면 알겠지” 하는 희망형 등 다양했다. 농담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하소연이 돼 산을 쌓고 강을 이뤘다. 피 토하며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고, 모진 말로 가슴을 후벼 판다고,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흘러가고 쌓여가다 맞닿는 곳은 “다 저 잘되라고, 저를 위해 그러는 건데” 하는 안타까움, 억울함 비슷한 감정이다. 그 밑자락에는 뼛골까지 짜내 가르치고 뒷바라지하는 걸 몰라주는 야속함, 그렇게 뒷바라지해도 아이가 무자비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 불안감이 있다.

피켓 든 학부모들


한 달 전쯤 버스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 엄마 좀 이상해. 요번 중간고사 수학이 20점 떨어졌는데도 수고했대. 그러곤 신발도 사줬어” “나도 나도. 평소와 너무 다르니까 좀 무서운 거 있지”. 세월호 사고 후 수많은 엄마들은 그랬다. 교복 입고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애틋하고 그저 살아 있어 주는 것 자체로 고맙다고. 일류대 졸업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님도, 범생이로 키우려 애쓸 필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 간섭에 게으른 ‘불량 맘’이 각광받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또 잊어간다. 많은 엄마들은 지난 연휴 내내 낮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나는 딸아이에게 천불이 났고, 성적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아들 녀석의 가방을 뒤지며 부아가 치밀었다. 다 저희 잘되라고 그러는 걸 이렇게 몰라줄 수 있느냐고!!!

언제까지 이 평행선을 이어가야 하나. 언제까지 부모와 학부모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야 하나. 공부 잘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행복한가. 우린 왜 세상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나. 비싼 과외 못 시켜준 건 안타깝고, 이런 세상을 물려주는 건 안타깝지 않나.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서도 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성적에 울고 웃어야 하나. 화풀이하고 푸념만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이젠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없다. 부모들이 마음을 합해 바꿔야 한다. 말은 쉽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누구부터, 어떻게?

체념하거나 냉소할 필요 없다. 그래도 우린 최근 확인하지 않았나. 저마다 품속에 변화를 향해 꿈틀대는 열정이 있음을. 그리고 그 뜻을 모으면 뭔가 의미 있는 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제 시작이다.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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