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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통신

4년전 만났던 박원순 변호사 안희정 지사

by 신사임당 2014. 6. 6.




아줌마들을 위한 대표적인 수다공간인 82cook에 들어가봤더니 

역시 많은 주제가 이번 지방선거 결과입니다. 

선거에 대한 소회와 평가, 의미 등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 놓았습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향후 대선 무대에서 뛸 

대세로 주목받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 가장 앞자리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고 

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분이 안희정 충남도지사시네요. 

심지어 한 여초 카페에는 

안희정 지사 사진 심쿵, ㅎㄷㄷ

이런 식의 제목들까지 달려 

연예인급 팬덤이 구축되는 모습이 보이기도... 

심쿵이라함은 심장이 쿵 내려앉을 정도로 설레는,,, 뭐 그런말? 

ㅎㄷㄷ는 후덜덜하다는 거죠. 

여튼 

박시장님이나 안지사님. 

이 두분은 4년전 제가 김제동씨와 함께 

'김제동의 똑똑똑'이라는 인터뷰 코너를 진행하면서 

만나뵙고 인터뷰를 했던 분입니다. 



요 사진은 김대중 대통령 4주기때 함께한 것입니다. 



어쨌든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겠습니다. 


안지사님을 인터뷰했던 것은 2010년 지방선거 얼마 뒤였습니다. 

2010년 8월말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래 기사는 2010년 9월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김제동의 똑똑똑 (15)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리/박경은기자 


‘좌희정, 우광재.’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대중들은 두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하여 이들은 노 전 대통령과 더불어 부침을 겪다가 나란히 충남과 강원의 수장에 당선됐다. 안희정과 이광재, 언론에서는 ‘노(盧)의 남자들 부활’이라고 칭했다. ‘부활’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의 만남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을 보내드리던 그날이 떠올랐다. 서울시청앞 노란 물결 속에서 울면서 노제를 진행했던 짧고도 길었던 순간, 나는 그곳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직접 체험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좌희정은 조직에 강하고, 우광재는 기획에 능했다”고 평했다. 나에게 안희정 지사는 투사적인 강인함과 단단함, 날카로움으로 각인돼 있다. ‘야생마’가 이른바 ‘꼰대’가 됐다니 쉽게 상상이 안갔다.




김제동 “저보고 좌파래요. 태극기만 봐도 눈물이 나려는…. 이건 극우민족주의자 아닌가요?”안희정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기질과 성향이에요. 태음인, 소음인처럼 어느 시대나 있었던 기질과 성향이죠. 어떤 분은 뉴욕 맨해튼에서 지나가는 사람 얼굴만 봐도 민주당, 공화당 중 어딜 지지하는지 100% 알 수 있대요.”김제동 “그럼 전 보수적인 얼굴이죠?”안희정 “아시잖아요. 자유분방하게 생겼다는 거….”

- 왠지 공무원 티가 물씬 나십니다. 눈빛도 부드러워지신 것 같네요.

“선거하면서 많이 웃으라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했는데 주변에서 표정이 좋다고 그러더군요. 웃으려면 마음이 즐거워야잖아요. 근데 얼굴 근육을 ‘웃는 근육’으로 만들면 마음상태도 자연히 즐거워진대요. <감정심리학>이라는 책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시니 당혹스럽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 거예요?

“초짜 도지사가 돼 놔서 정신없어요. 현안 파악하고 충남도 내 시·군 다니면서 도민들 만나고…. 무엇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죠.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하다보니 오늘도 5번이나 했네요. 나라를 사랑하겠다고 자주 맹세하면 일종의 자기최면 효과도 있어요.”

- 젊은 시절 내내 ‘투사’였다가 지금은 ‘제도권’으로 오셨는데 소회가 궁금해요.

“제가 투사시절엔 반국가투쟁이 아니라 특권과 반칙에 대해 싸웠죠. 헌법을 무시하고 총칼로 권력을 잡은 뒤 특권을 누리는 것에 반대한 겁니다. 전 도민들 만나서도 그래요. ‘제가 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권세도 없다. 모두 여러분들이 결정하는 거다.’ 모든 일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자의 역할, 그것이 도정의 근본 원칙입니다.”

- 최근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 않았느냐는 논란이 있었던 것도 그런 입장과 연관이 되는 건가요?

“전 기본적으로 그 사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고, 막대한 예산을 그렇게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일단 4대강 사업은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질 개선이나 홍수 예방과는 상관없어요. 그러려면 오염원을 없애고 지천을 정비하는 데 예산이 집중돼야 하는데 현장은 그렇지 않고, 그 부분에 대한 예산도 없어요. 핵심은 토목전략에 기반한 지역개발 사업이죠. 강의 폭을 넓히고 친수공간을 만들어 그 주변지역을 개발하고, 퍼낸 흙으로 저지대 땅을 높여 가치를 올리자는 것. 즉 친수공간 확보를 통한 부동산 개발전략, 부자 만들기 전략이라는 겁니다. 정부가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엉뚱한 말을 빙빙 돌려 갖다붙이지 말고요. 인정하고 나서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이 이뤄져야 미래를 위한 생산성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업의 본질에 대해 도민들이 토론하고 입장을 정해보자고 특위를 구성한 겁니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은 ‘특권’을 행사해온 정치권에 환멸을 갖고 있다. 멀쩡하던 사람이 왜 ‘완장’만 차면 변할까. 그렇다면 안 지사는 그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지, 또 부여받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가 궁금해졌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특수한 권력과 지위가 많이 허물어졌죠. 특권을 없애자는 1단계 민주화의 싸움은 끝났어요. 이젠 2단계 민주화 운동이 필요해요.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전 단계의 민주주의였다면, 양자가 한 몸이 돼 한 곳을 바라보고 가는 민주주의가 이뤄져야죠.”

- 없어졌다는 특권이 요즘 되살아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오랜만에 권력을 잡은 예전 분들이 세상 변한 걸 모르고 옛 방식대로 해보려고 하면서 불거진 현상이라고 봐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죠. 이 말들이 지난 우리 역사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였어요. 대중들의 이런 믿음과 의식이 독재를 성립시켰고, 말도 안 되는 많은 일들을 만들어냈어요. 가령 관급공사 입찰에서 떨어진 분은 ‘내가 빽을 덜 써서 그래. 더 쎈 걸 찾았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합니다. 전 이런 생각과 믿음이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모든 과정이 다 공개되고 투명해져야 합니다. 지난 정권에서 대통령 ‘빽’으로도 안 되는 게 많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그걸 보여주니까 낡은 정치문화에 있던 사람들이 아마추어네 하면서 업신여기며 만만히 봤죠. 지금 다시 옛날 방식으로 집권하지만 이제 국민들이 다 알아요. 어떤 대통령이 좋았는지…. 법과 규칙은 국민이 정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 그게 촛불집회죠. 600년 전 <경국대전> 서문에도 나와 있듯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어요.”

▲ “4대강 사업 핵심은 주변 부동산 개발로
부자 만들기 전략… 정부 좀 솔직해져야”
▲ “참여정부 시절 투사 같은 이미지로 각인됐던 그가 왠지 공무원 티가 물씬 난다. 눈빛도 부드러워진 것 같고…” - 김제동
안 지사의 출마와 당선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무관치 않다.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까지 만들고도 그는 감옥에 갔고,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 조심스레 평생 모셔온 그분의 죽음에 대해 묻자 잠시 대답이 겉돈다. 아직도 감정정리가 힘든 듯 슬픈 표정을 내비친다.

“아니,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진정으로 애정을 갖고 좋아했던 분이죠. 고1때 혁명하겠다고 자퇴한, 그런 놈을 노 대통령이 건져준 거죠. 1990년대 초는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혁명의 시대가 끝나면서, 내가 옳다고 믿었던 혁명의 역사가 쇠락하고…. 아무것도 아닌 현실로 돌아가버린 상태에서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을 거예요. 여담이지만 그 당시 혁명적 이념을 갖고 결혼했던 많은 부부가 이혼했어요. 혁명의 시대에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는데, 그 시대가 끝나고 나니 어느새 남편이 한심한 백수가 돼 있었던 거죠.”

- 자신의 이야기인가요?

“다행히 저는 교편생활을 하던 집사람이 결혼 후 14년 동안 저를 열심히 거둬주고 은혜를 베풀어줬어요(웃음).”

- 말이 14년이지, 옥바라지도 여러 차례 하셨잖아요. 군대 뒷바라지도 힘들어 고무신 거꾸로 신는 여성들이 많은데….

“그래서 제가 집사람이 큰소리치면 아직도 맞서질 못해요.”

-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부인께서도 안 지사님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건져주신 거네요.

“그렇죠. 전 집사람의 ‘심리적 상태’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아요.”

- 우하하. 심리적 상태요? ‘난 집사람 눈치 엄청 본다’는 말이잖아요. 제가 살다살다 그런 표현 쓰시는 분은 처음 봐요. 완전 웃긴데요. 

“여하튼 전 집사람뿐 아니라 타인의 심리적 상태에도 민감해요. 대체로 충청도 사람들이 그래요. 그게 충청도 역사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황산벌(논산)이 제 고향인데,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죽음이 있었던 곳이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겪으면서 그 지역 사람들은 자신을 ‘커밍아웃’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일인 시대를 살아왔어요. 그런 역사의 누적이 심리적인 특성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 둔하고, 또 그것을 드러내는 데도 익숙치 않아요.”

- 맞아요. 저도 ‘토크콘서트’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지역별 기질의 특성이 다른 것이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경상도 사람들은 감정표현이 즉각적이고, 충청도는 ‘냅둬유, 개나 주게’ 한다잖아요.

“충청도 스타일의 전형이죠. 언뜻 웃긴 것처럼 들리는데 속뜻은 진짜 무서운 거예요.”

▲ “우리 충청도 사람들은 고구려·신라·백제 겪어
자신을 드러내는 ‘커밍아웃’ 익숙지 않아”
▲ “나도 ‘토크 콘서트’하며 많이 느낀다. 
경상도 사람들은 즉각적, 충청도는 “냅둬유, 개나 주게”한다. 
감정표현도 제각각이다.” - 김제동

- 아이들한텐 어떤 아빠세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요.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아이들이랑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고 지금은 고2, 중2가 됐어요. 아이들 보면서 우리 시대랑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 우리라뇨? 전 지사님보다 10살이나 어려요. ‘X세대’라고요.

“어휴, 젊어 좋겠수. 여하튼 제 시대엔 타인과의 관계, 남들이 정한 틀에 나를 짜맞춰야 했어요. 사회에서 촉망받는 사람, 모범생이 된다는 건 나를 버리고 주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였죠. 모든 교육과 사회화 과정은 ‘야생마를 거세시키는 작업’이었다고 할까요? 그런 과정을 겪었던 우리가 이제 어른이 된 거죠. 예전에 우릴 칭찬해주시던 어른은 없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공백은 뭘로 메워야 할지…. 요즘 많은 고민을 해요.”

- 지금은 아이들이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믿지만 그 시절엔 정반대였죠. 타인이 규정한 틀에 나를 맞추며 살다가 이제 와서 나 자신을 채우려고 하니 힘든 거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제동씨랑 나랑 같은 세대 맞는데 뭘 굳이 ‘X세대’ 운운하며 부정하려 해요?”

듣고 보니 감정표현에 서툰 건 안 지사와 내가 비슷하다. 예전에 정신과적인 분석을 받아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내가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거의 초능력 수준이란다. 그래서 스스로 굉장히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아는 자유분방한 아이들을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요즘 특히 더 그렇다. 

-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어요. 고1때 혁명을 하겠다고 자퇴를 하셨다는데 그 나이에 그게 가능한 건가요? 

“한 번은 퇴학당하고, 또 한 번은 자퇴했어요. 제가 초등학교때 계몽사에서 나온 <한국사이야기> 12권짜리를 읽으면서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더라고요. 폭정에 시달리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일어나서 정권을 잡으면 똑같이 변해버리는 것. 혼란스러웠죠.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좀 조숙했던 것 같아요. 정의니 약자에 대한 의무니 이런 생각들 말이에요.”

- 정의가 뭘까요?

“강한 사람을 바르게 하기 위해, 약한 사람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필요한 거죠.”

- 그럼,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거죠?

“겨울이죠. 그렇지만 겨울이야말로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에요. 어릴 때 어머니가 밀가루를 치대서 칼국수를 만드는데 그만하고 끓이면 좋겠다싶은데도 자꾸 비벼 치대기를 반복해요. 그럴수록 칼국수의 면발이 쫄깃해져요. 전 그 칼국수의 면발이 역사가 전진하는 방법 같아요. 지금은 치대고 있지만 이 자체로 전진이죠. 태양만이 역사를 전진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뭘 물어도 정리돼서 진지하게 돌아오는 답변. 안 지사와의 인터뷰는 대학 교양강의 여러개를 한꺼번에 들은 느낌이었다. 심리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강의하듯 풀어냈고, 일반사람들이 평소에 쓰지 않는 문어체 표현도 많았다. 어려운 단어와 표현을 풀어내려니 머리가 아팠다. 나만 머리 아플 수 있나. 오늘 저녁 ‘편한 동생들’ 불러서 ‘한국사회 진보의 미래’에 대해 토론해 봐야겠다.
이상.... 안지사와의 인터뷰였고요
다음은 박시장님이 희망제작소 대표 시절이던 박변호사 시절 인터뷰 기사 투척합니다. 
2010년 5월 17일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김제동의 똑똑똑(7)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
 정리/박경은기자 
ㆍ“역사의 바른 편에 서 있는, 지금 제 자리가 좋아요”

박원순 변호사의 다이어리는 흰바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했다. 일과는 오전 7시30분부터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스케줄 많고 바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지만 이런 일정표는 처음이다. 가슴 포켓엔 볼펜이 한가득이고, 주머니란 주머니마다 서류뭉치와 메모쪽지로 채워진 복장은 바쁜 일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처럼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박 변호사껜 죄송하지만 그분이 더 바빴으면 좋겠다. 바쁘면 바쁠수록 세상이 희망적으로 변할 일들이 더 많을테니까. 종로구 평창동 희망제작소 내 두 평 남짓한 작업공간은 ‘희망의 헤드쿼터’였다. 








김제동은 “개천에서 용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송사리로 남아 개천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박원순 변호사는 “혼자 용빼는 재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맞장구쳤다. 두 사람은 “세상에 뭘 하든 비판자가 생긴다”며 “비판을 받지 않으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없다”고 했다. | 김창길 기자

- 미국에서는 어제 돌아오셨다면서요. 그런데 조찬모임까지 하시다니.

“저는 여독을 못 느껴요. 하도 많이 다니니까. 몸이 전자동으로 싹 바뀌죠. 요즘 전화기도 자동 로밍되는 것처럼 몸도 그래요. 하버드 갔더니 얼마 전에 제동씨도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 지난달엔 영국에도 다녀오셨죠? 너무 바쁘게 지내시는데 하나도 안 피곤해 보이세요. 

“밤 9시가 넘어야 제 시간을 좀 가질 수 있는데 이때 e메일 확인하고 블로그나 자료정리도 좀 하고 그래요. 영국 갔다온 것도 빨리 정리해야 하는데…, 사회적기업 보려고 갔어요. 요즘 미국뿐 아니라 영국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공공의 목적을 비즈니스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내요. 정부 사업인 공공서비스를 민간단체가 생산하도록 한 거죠. 예를 들자면 홈리스를 정부가 다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수리기술을 가르쳐 자전거포를 열고 자활하도록 돕는 거죠. 시민단체는 지역과 주민에 훨씬 가까이 있으니 공공 서비스를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지역민들의 바람도 충족시켜주기 쉬워요.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정부가 모든 것을 다 직접하고 간섭하려고 하잖아요. 벙커에서 비상회의하면 세상이 바뀌는 줄 알고…. 거꾸로 가는 셈이죠.”

- 그럼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이어야 하죠. 국민이, 시민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격려해 줘야죠.”

▲ “대학때 감옥 안갔으면 검찰총장 됐을지 모르지만
이런 정부하에서 잘나가면 이상한 거죠”
▲ 왜 다들 용꿈만 꿀까? 송사리로 남아서
개천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 김제동

박 변호사께서 갑자기 명함을 건네신다. 명함엔 ‘소셜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소셜 디자인? 생활과 사회와 사람을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설명이다. 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문화를 읽어내고 거기에 맞춰 무언가를 바꿔 상황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 이참에 나도 ‘스마일 디자이너’ ‘해피바이러스 디자이너’라고 새겨볼까. 

-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을 민간이 해주는 것은 정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요. 그런 분을 지원해주고 독려해주면 좋을텐데 오히려 고소를 하네요. 

“예수님은 고소 당한 뒤 처형까지 당하셨잖아요. 난 차라리 감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이렇게 복잡한 일정들 신경 안써도 되고 규칙적으로 책 읽고 글 쓰면서 살 수 있는데. 오히려 감옥 보냈으면 했는데 돈도 없는 나한테 2억원이나 청구했잖아요.”

- 그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기분 안좋죠. 일반인도 아니고 국정원인데. 우리 희망제작소는 특별히 정부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늘 창조적인 것을 위해 노력하는 곳인데 말예요. 그러다보니 갑자기 기업후원도 끊기고 어려워졌죠. 그런데 오히려 잘됐어요. 자발적으로 회원이 늘어 5000명에 이르거든요.”

- 국가가 개인을 고소하는 일이 흔합니까.

“거의 없는 일이라고들 하죠. 정부는 비판받기 위해 존재하는 건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하는 상황이 웃기는 일이죠. 그런데 제동씨 혹시 감옥 가본 적 있어요?”

- 아뇨. 저 가기 싫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견학해 본 적은 있습니다. 촌에서 남의 오토바이 한번 타봤는데 오토바이 훔쳤다고 걸려서 경찰서에 갔죠. 그때 저에게 교도소 구경을 시켜주시더라고요. 한번만 더 잘못하면 이런데 와야 한다면서 학생이니까 봐준다고 하셨어요.

“나는 대학 1학년때 복역해봤어요. 학교에서 잘리고 5년 지나니까 복학하라는 통지가 왔더라고요. 나랑 김준규 검찰총장이랑 고교 동창인데 내가 그때 감옥 안가고 공부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검찰총장 됐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스폰서 검찰 됐을까?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제자리와 바꾸기 싫어요. 역사의 바른 편에 서 있다는 그 느낌이 훨씬 행복해요. 가난하고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이런 정부 하에서 너무 잘나가면 그것도 이상한 거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나의 가장 큰 가치와 행복은 웃음이다. 사람들이 웃을 때 가장 행복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더니 박 변호사께서는 “당장의 방송 공간은 좀 잃었을지 몰라도 국민의 마음은 훨씬 얻었다”면서 “단순히 사람을 웃기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웃기는 사람이 됐다”고 과찬을 해주신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는 무거움이 남아 있다.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사는 일들이 곡해되고 색깔이 덧씌워지는 세상이 됐을까. 참 답답하다. 

- 변호사님의 정치적인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난 지금까지 그런 색깔 없이 살았어요. 좋은 일을 하고 살자는 게 내 의지인데 외부에서 나를 정치적인 존재로 자꾸 만드네요. 본의아니게 정치권이나 공직 물망에도 오르내린 적이 있잖아요. 한편으론 오해를 좀 받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아무 비난과 비판을 안받으려면 아무것도 안하면 되거든요. 뭘 하든 비판자는 생겨요. 저도 처음엔 왜 날 비판하고 미워하나 생각하면서 그들이 울컥 미워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저런 사람들도 있어야 나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 편해졌죠.”

- 파울로 코엘료가 트위터에 올려놓은 비슷한 메시지를 본 적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너를 사랑한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반드시 너에게 경고를 주고 깨우는 원수 한 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정치가 하도 국민들을 신물나게 하니까 지레 나쁜 것으로 규정지어진 측면도 없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예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누구나 광의의 정치색은 갖고 있는 건데 말이죠.”

▲ “커피당은 유권자 운동 이웃끼리 커피 마시며
후보·정책 정보 나누자는 것… 선관위서 표창받을 일이죠”
▲ 저마다 좋아하는 일하며 행복감 느끼는데
왜 색깔이 덧씌워지는 세상이 됐을까 - 김제동

지난 3월에는 ‘2010 유권자희망연대’가 제안한 커피당이 창당됐다. 진짜 정당은 아니고 소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유권자 운동이다.

- 이번 커피당도 그런 유권자 활동으로 보면 되겠네요.

“지방선거는 유권자 절반도 투표하지 않거든요. 국민의 무관심 때문에 정치가 망하고 있어요. 우리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의 20%가 형사피의자로 입건돼 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한 일입니다. 커피당은 당수도, 당조직도, 강령도 없어요. 그저 동네 이웃들끼리 모여 커피 마시면서 후보자와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눠보자는 운동이에요. 오히려 선관위에서 지원받고 표창받아야 한다고 봐요.”

- 자신의 한 표를 포기하지 말고 투표로 말하자는 거네요.

“표 행사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당일에 표를 찍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선거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나누는 과정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표를 찍으러 올 리도 없거니와 정당한 표도 행사하지 못해요. 그런데 우리 선관위는 그런 걸 막고 있어 안타까워요. 트위터를 규제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선관위를 보면 국민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시민들의 건강한 판단을 믿어야죠.”

방 입구엔 재미있는 패러디 사진이 붙어 있다. 영화 <300>을 패러디한 박 변호사의 사진이다. 나도 조만간 패러디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근육이 좋은 사람이 워낙 각광받는 세상이다 보니 근육 없고 몸 안좋은 남자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다. 늘어진 뱃살이 죄인가.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 살아계실 때 한 자원봉사자가 그랬어요. 저더러 김 추기경하고 함께 벗어서 달력 만들면 좋겠다고. 영화 <풀 몬티>처럼.”

- 야, 그거 만들었으면 완전 대박이었겠는데요. 자금 걱정 하실 필요 없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저랑 같이 한번 벗으실래요?

얼마 전 ‘요즘은 더이상 개천에서 용나기 어렵다’는 글을 봤다. 한참동안 ‘왜 용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실은 나도 “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경북 영천 촌동네 개구쟁이에서 TV에 나오는 사람이 됐으니 왜 아니겠나. 그런데 왜 다들 용꿈만 꿀까. 송사리로 남아서 함께 어깨동무하고 개천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모든 송사리가 용을 꿈꾸면 그 개천은 뭐가 되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것이 송사리가 되어 개천을 지키는 것 아닌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해본다. 

“그래도 난 우리사회가 희망이 많다고 믿어요. 2000년에 아름다운재단 시작할 때만 해도 나눔이란 말은 별로 없었어요. 기부문화를 들꽃처럼 온 세상에 피어나게 하자는 게 목표였는데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 얼마나 많이 퍼졌나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너무 완벽한 사회보다는 할 일 많은 세상에 태어난 게 감사하지요.”

- 할 일 많으신 건 좋지만 집에서는 뭐라고 안하시나요.

“젊을 때부터 이렇게 살았으니까 일찍 집에 가게 되면 뭔 일이 있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해요. 돈도 안 갖다주지, 늦게 가지, 1년의 3분의 1은 외국에 있지, 심지어 사무실에서 자는 날도 많아요. 2005년 스탠퍼드 대학에 있었는데, 혼자 갔기 때문에 무척 외로웠죠. 그때 김광석, 양희은씨 CD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는데 그 노래들이 제 마음을 콕콕 찌르더군요. 제가 감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란 걸 그때 느꼈어요.”


- 피천득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방에 가봤는데 잉그리드 버그먼 사진이 걸려 있더라고요. 소년 같은 감성을 가지고 계시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다음에 올 때는 변호사님도 좋아하는 여배우 사진 한장쯤 걸어두는 여유를 즐겨보시죠.

생뚱맞은 내 말에 그러마하고 대답하시는 그분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절망도 있지만 희망의 단서도 많다”는 그분은 계속해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겠단다. 그렇다. 하늘을 덮는 큰 나무도 모두 작은 씨앗 하나에서 시작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두분 모두 이 때의 마음 잃지 말고 되새기며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귀하게 여기며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주인공들로 성장해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