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똥통신

계모가 무섭다 고정관념이 무섭다

by 신사임당 2014. 4. 12.

고정관념처럼 무서운게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전국을 들끓게 하는 사건을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계모’. 

어린아이들 동화책, 그림책에도 나와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혀 뿌리내리는 

계모라는 관념 말입니다. 


이번 칠곡 사건을 보면서 계모라는 단어를 내세워 자극적, 선정적으로 몰아가고, 

계모가 악의 근원인양 분위기를 조성하는 언론의 타성에 대해 뜻있는 많은 분들이 쓴 질책을 하고 계십니다. 


계모니까 이랬고, 계부라 저랬고.... 범죄와 그 행위에 초점이 맞춰지는게 아니라 

계모라는 그 관계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온갖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궁금증이 들다가도 ‘계모’라는 한마디에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게임이 끝나버리게 되는거죠.  

친엄마가 그랬으면 뭐라고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이끌었을까요. 

수없이 많은 친부모에 의한 학대와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하긴 그게 동서양 어느 한곳만의 고정관념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적으로 뿌리내려온 편견이긴 합니다. 

콩쥐팥쥐, 심청전 뿐 아니라 신데렐라, 백설공주도 마찬가지니까요.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없어진 요즘은 새엄마, 새아빠의 개념이 자연스러워질만한데도 

오히려 범죄의 근원이자 악의축으로 낙인찍혀가는 모습이네요. 


예전에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기억나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결혼하면서 전처 소생의 아이들에게 잘하지 못할까봐 본인이 아예 불임수술을 하고 결혼을 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고 키우면서 초기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격려와 칭찬의 말을 들었지만 

몇년 후 아이들이 대학입시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주위, 즉 이웃과 친척들이겠죠. 겉으로만 잘하는 척 했다는 것입니다. 

남 말이라고 쑥덕거리고 재미삼아 했던 그 말은 그녀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갔고 

행여나 아이들에게 상처줄까 결혼 뒤 늘상 노심초사했던 그를 자살로 몰아버렸습니다. 

다행히 미수로 끝나 목숨은 건졌지만 남은 그의 인생이 어떠했을지 가슴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계모 중에 나쁜 사람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친엄마 중에 나쁜 사람은 없나요. 제가 보기에 저게 친엄마 맞나 싶을만한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그럴 땐 지새끼 지가 알아서.. 로 치부하고 넘어가는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요 캐릭터 귀엽네요. 전북 완주군에서 만든 콩쥐엄마 캐릭터


 

어쨌든 이처럼 뿌리깊이 내려진 계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언론의 보도 태도도 바로잡혀야겠지만 

무심코 사다주고 읽히는 동화책들도 이 기회에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논문에 친부모와 계부모의 이미지에 대해 어린이들의 의식조사를 했던 결과를 본 기억이 나는데 

계부모에 대한 나쁜 인식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어릴 때부터 생겨나는 것은 어린이들의 고전인 동화들에 묘사된 계부모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결같이 나쁜 계모에게 설움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여주인공, 

그리고 이를 극복해 왕자님의 도움을 받아 성공하는 공식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히 주인공에게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면서 계부모는 악의 화신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혼과 재혼이 너무나 흔해진 요즘 얼마나 가슴 쳐야할,  이유없는 비난을 사야할 계모들이 많아졌을까요. 


예전에 흔히 여성을 비하하는 농담으로 많이 했던 것 중 ‘재취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 적령기를 지난 여성들이 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하려하면 “넌 이제 재취자리 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그게 아이 딸린 홀아비 집에 계모로 들어간다는 말 아닙니까. 

요즘은 자기 일하며 결혼적령기를 놓친 여성들 사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혼 상대자의 조건을 구하면서 “내가 애 안낳아도 되면 더 좋고”라는 농반 진반의 이야기죠. 

쿨하고 당당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냉정히 말하면 ‘나 계모 되겠다’는 겁니다. 

나름의 존중받을만한 선택인데도 웬지 ‘계모’라는 단어에서 뭔가 꼬이는 느낌이 드는건 비단 저뿐일까요. 

그만큼 우리 깊은 곳에서 이 가치중립적인 단어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행태가 계속되는 한 비극은 더 많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십수년전 나왔던 책 중 <시커먼 구름도 속살은 희다>는 책이 있습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묶여 있던 인물들을 뒤집고 비틀어 봤던 책인데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콩쥐를 가련한 척 하는 지독한 복수의 화신, 심청이를 아버지 가슴에 못질한 불효녀, 

춘향이는 번개팅의 명수인 불량소녀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인물들이 이랬을 수도 있는 의외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철저하게 편견을 깨고 우리의 고정 관념들을 비웃습니다.


몇년전 나왔던 작가 김영의 수필집 <쥐코밥상>이 언론을 통해 소개됐던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절판됐는지 어떤 이유인지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기사에 소개됐던 수필 내용 역시 고정관념에 대한 교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동화 백설공주가 나쁜 점, 즉 나쁜 영향을 미치는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편견을 준다며 이야기합니다. 

*여자들은 자기보다 이쁜 여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계모는 항상 전처 소생을 죽이려 한다

*이쁜 여자는 이쁜 것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꼭 백설이어야 이쁘다 

*난장이는 남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섬찟하리만치 우리의 편견들을 지적하지 않나요. 

실제 백설공주 이면에 숨겨진 장애인 편견, 인종차별, 성차별이 부지불식간에 내 사고를 장악하고 맙니다. 


고정관념처럼 무서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