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이재용 부회장께. 


<몬산토>라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까? 세계 최대의 종자기업이자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연구·개발하는 다국적기업 몬산토의 두 얼굴을 고발한 책이지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세계적인 생명공학기업 몬산토가 독성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이나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 등을 생산해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되는 발판을 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몬산토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어나간 노동자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수없이 많음을, 몬산토가 주도하는 GMO의 위험성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도 말입니다. 이 책은 또,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몬산토를 비호하는 세력이 얼마나 공고한지도 전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 읽었던 이 책이 갑자기 생각난 건 최근 봤던 영화 한편 때문입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이야기 말입니다. 현재까지 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 중 병을 얻어 사망에 이른 사람들은 50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노동자들이 병을 얻어 지금도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법정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약자들의 분투를 보며 영화 내내 슬픔과 분노가 치밉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끝나고서지요. 이 이야기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 묘사된 것처럼 주인공을 미행하고 억압하는 장면 등이 극적 재미를 위해 더해졌을 수 있겠지만 피해자들을 대하는 회사의 입장은 영화나 현실이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제작, 개봉, 상영을 둘러싼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지요.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람들 마음에선 호기심과 또 다른 의구심도 자라났습니다. 다음달이면 같은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될 예정이라는데 이 작품 역시 어떤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까요. 


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사진 OAL(출처 :경향DB)


저는 궁금합니다. 연간 40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는, 세계적인 초일류기업 삼성의 모습이 왜 이런지 말입니다. 1987년 이건희 회장께서 취임하신 지 올해로 27년이 되어갑니다. 당시 회장께선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전자사업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삼성은 신화적인 성공을 이루었고 회장께선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과정에는 이 회장의 안목과 결단력, 추진력이 있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 눈물도 더해졌습니다.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삼성 구성원들이 그렇게 쌓아 올린 찬란한 금자탑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삼성이 땀 냄새와 눈물로 얼룩진 성공 신화 대신 무오류, 완전무결 신화에 매달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상 가능한 어떤 문제도, 그것이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것이라도 무오류 신화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여기에 무노조 경영까지 더해 삼성이 쌓아가려는 신화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부회장께선 2008년 삼성이 겪었던 위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위기가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삼성을 이끌어갈 부회장께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실 건지, 어떤 신화를 꿈꾸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영화 말미에 증인으로 나왔던 직원의 대사처럼 저 역시 삼성이 잘되길 바랍니다. 중앙아시아의 이름 모를 벌판에서, 동유럽의 작은 도시 공항에서 불쑥 만났던 삼성 광고판이 전해준 울컥한 감동을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삼성이 진정한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길, 그리고 부회장께서 새로운 미래 신화를 이끄는 주인공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박경은 |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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