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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토크

박병엽 신화는 어떻게 될까

by 신사임당 2013. 9. 26.

불과 며칠전에 박병엽 부회장은 그래도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여기서 썼는데 최근 전해진 소식을 보니 많이 당혹스럽긴 합니다.
 박 부회장이 채권단에 사의를 표했고 팬택 역시 전직원들이 6개월의 무급휴직을 하게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팬택을 창업한 박 부회장은  앞서 언급했듯 수많은 곡절과 위기를 돌파하며 회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시장에 밀어닥친 대내외 여건은 팬택을 어려움에 빠뜨렸고 박 부회장은 결국 사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대표직을 내놓는다는 사의를 사내 게시판에 짧게 남기고 퇴임식도 뭐도 없이 훌쩍 떠났습니다.
 박 부회장은 이전에도 몇차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팬택앤큐리텔 합병 당시에도 자신의 자리를 걸고 이를 성사시켰고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도 대표직을 내려놓고 4000억원 규모의 사재까지 내놓으며 배수진을 친 끝에 성공적으로 워크아웃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경영방식은 죽는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는 마음으로 매번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오뚜기니, 승부사니 하는 별명이 그에게 따라붙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간의 궤적을 살펴보면 아마 이번 사퇴도 그가 또 다시 승부수를 던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돌파구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사실 20여년간 그가 일궈왔던 팬택은 박병엽이라는 브랜드와 떼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가 쌓아왔던 인적 네트워크도 무시할 수 없죠. 그런데 어쨌든 대외적 여건은 어렵고 실적은 따라주지 않고 결국 책임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의 사퇴는 앞장서서 희생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죠.

 올들어 세계 휴대폰 업계는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습니다.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했고 노키아도 MS에 팔렸습니다. 블랙베리 역시 매각됐지요. 한때 휴대폰의 대명사가 노키아, 블랙베리 아니었나요. 기업이나 사람이나, 심지어 국가도 이 세상 모든 것의 흥망성쇠를 보면 덧없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긴합니다. 쨌든 휴대폰 시장은 십년, 아니 오년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격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기업간 합종연횡이 이어지면서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도 주목됩니다. 사실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한 뒤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성과는 없습니다. 노키아와 MS 연합군이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두 컨소시엄이 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10년전 지금의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현재의 삼성, 애플, LG와 같은 구도 역시 10년, 20년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빠르게 치받고 올라오는 중국업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 수십년전 일본 업체들이 삼성을 보는 심정을 좀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그동안의 기사로 박병엽 부회장이 어떻게 팬택을 일궈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국경제 2000년 1월 19일자

 

김포의 허름한 공장에서 출발한 그는 뚝심과 아이디어로 승부해 10년만에 팬택을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대표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박 부회장의 뚝심은 해외에서도 알아줄 정도이다. 지난해말 삼성전자 등 대기업도 해내지 못한 ”휴대폰 연간 6억달러어치 수출“은 그의 물러설줄 모르는 집요함 덕분이었다. 박 부회장은 당시 파트너인 미국 모토로라와의 협상에서 1달러라도 더 받아내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결국 모토로라는 박 부회장의 끈기에 백기를 들었다.
주변에서는 박 부회장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LG정보통신에서 단말기 개발을 주도하던 박정대 전무(현 팬택 사장)를 영입하는 과정에서의 일화는 박 부회장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얼굴도 모르던 박 전무를 찾아가 대뜸 ”팬택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싶은 데 당신같은 능력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고 했다.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박 전무도 이 자리에서 ”뭔가에 홀린 듯“ 박 부회장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지난해 2월 팬택의 전문경영인으로 옮긴 박정대 사장은 박 부회장을 ”열정과 자신감에 가득차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경영자“라고 말한다.
박병엽 부회장의 꿈은 팬택을 세계 휴대폰업계 톱5로 육성시키는 것이다. 세계 5,6대 메이커,국내에서 1,2위 업체에 들지 못하면 더이상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조만간 생산시스템을 연간 1천만대 규모로 갖출 계획이고 연구인력도 대기업과경쟁해 결코 뒤지지 않다고 자신한다.
업계에서는 박 부회장의 성공신화를 불황에 흔들리는 IT(정보기술)벤처들의 귀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 부회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동양기전의 조병호 회장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자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벤처초심이 박 부회장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2001년 5월 13일

휴대전화 전문회사인 팬택의 박병엽 부회장이 한국생산관리학회(회장 김형욱)가 수여하는 제1회 ‘한국생산경영인대상’을 수상했다. 박 부회장은 팬택의 경영관리와 미국 모토롤라가 요구하는 품질수준을 앞서가는 품질관리 체계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편 박 부회장은 지난해말 한국과학기자클럽으로부터 제2회 ‘올해의 정보통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매일경제  2001년 11월14일

중견 단말기 업체인 팬택이 하이닉스반도체의 단말기 자회사인 현대큐리텔(www.curitel.com)을 인수했다.
팬택은 13일 현대큐리텔 매각입찰에 KTB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구성, 일본 도시바, 이스라엘 바이텔레콤과 경합끝에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팬택은 KTB네트워크가 이번 입찰참여를 위해 조성한 구조조정 펀드에 출자하는 형태로 이번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현대큐리텔 인수후 경영권은 팬택이 행사하게 된다.
팬택은 이번 컨소시엄에 박병엽 부회장의 개인지분 형태로 참여했으며 인수후에는 별도법인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팬택의 현대큐리텔 인수로 팬택의 연간 휴대폰 생산규모는 1000만대를 넘어 국내 휴대폰 시장은 삼성 LG 팬택 등이 경쟁하는 3파전 양상을 띄게 됐다.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LG전자는 내수와 수출을 합해 모두 420만대의 휴대폰을 공급했으며 현대큐리텔과 팬택은 각각 256만대와 150만대씩을 공급했다.

 

매일경제 2002년 2월22일

 

 휴대폰 제조업체인 팬택의 박병엽 부회장(40)은 말단사원 시절부터 “통이 크다”는 말을 듣곤 했다.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크게 도모한다는 뜻에서였다.하지만 그런 그도 작년 말 휴대큐리텔 인수 직전에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인수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그가 고민했던 것은 큐리텔을 인수해 일등기업으로 바꿔놓으려면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모든 것을 걸자”였다.이런 판단에 따라 그는 회사 돈 대신 “개인 돈”을 털어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박 부회장은 서울 서초동 현대큐리텔 대표이사 집무실을 찾은 기자에게 “내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그렇게 했다”고 얘기했다.그는 “뭐가 아쉬워 그런 모험을 택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경영이란 대충 해가지곤 안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또 “처음부터 다시 뛰고 싶었고 기어이 일등을 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박 부회장의 결심은 현대큐리텔 임직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작용했다.박 부회장은 큐리텔을 인수해 공동대표로 취임한 후 임직원들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술자리에서 임직원들의 상한 자존심을 달랬고 “합심해서 일등기업을 만들자”며 건배도 했다.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큐리텔과 박 부회장과 팬택은 금새 한 식구가 됐다.그는 “큐리텔 업무를 파악하고 조직을 장악하는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팬택 오너인 박 부회장의 큐리텔 인수는 사실상 큐리텔과 팬택의 결합을 의미한다.큐리텔은 든든한 “동료”를 얻어 힘이 솟았던지 새 주인을 맞자마자 초대형 상담을 성사시켰다.지난달 미국 오디오박스로부터 휴대폰 5백만대를 수주했던 것.이는 단일 물량으로 세계 최대 규모이며 금액으로 약 1조원에 달한다.박 부회장은 “오디오박스측이 3백만대만 사가겠다고 하길래 ”최소한 5백만대를 사가라“고 졸라 오케이를 받아냈다”고 설명했다.큐리텔 임직원들은 5백만대 수주를 계기로 자존심과 자신감을 되찾았다.팬택 근로자들도 이름 없는 중견 메이커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을 좌우하는 메이저로 도약하게 됐다며 반기고 있다.큐리텔과 팬택은 지금 일등기업 도약을 위한 장기 플랜을 짜고 있다.박 부회장은 “덩치만 큰 기업이 아니라 기술중심회사,기술일등회사를 만드는 것이 기본방향”이라고 설명했다.또 “두 회사를 합병하지 않고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박 부회장이 단단히 각오하고 승부를 걸었던 것은 비단 큐리텔 인수건만이 아니다.11년전인 지난 91년에는 벤처기업 팬택을 설립해 삼성전자와 금성사에 정면으로 맞섰고 98년에는 세계 2위의 휴대폰 메이커인 미국 모토로라를 설득해 팬택에 투자하게 했다.특히 팬택을 설립할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불가능”에 도전했다.그는 당시 맥슨전자 국내영업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사원이었다.그러나 보장된 장래를 마다하고 자신의 10평 연립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 팬택을 설립했다.이때부터 무선호출기(일명 삐삐)를 만들어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에 맞서 싸웠다.다행히 팬택이 만든 무선호출기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기술로 승부를 걸어 가장 작고 성능이 좋은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박 부회장은 무선호출기 인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 주력품목을 휴대폰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팬택의 휴대폰은 무선호출기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갔다.그러자 모토로라가 “구미가 당길 만한 거액”을 제시하며 팬택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그러나 박 부회장은 제의를 거절했다.그 대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팬택에 투자하라”고 설득했다.결국 모토로라는 팬택에 투자했고 팬택은 모토로라 유통망을 활용,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게 됐다.박 부회장은 “그때 팬택을 모토로라한테 팔았더라면 꽤 큰 돈을 손에 넣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기업을 경영하고 싶었고 애써 키운 기업을 외국기업한테 넘기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했다.박 부회장은 남다른 친화력을 갖고 있고 경영에서는 유난히 인재를 중시한다.주위에선 그를 “누구든지 자기를 좋아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한다.대화가 시작되면 걸쭉한  재담으로 좌중을 휘업잡고 죽이 맞으면 스스럼없이 “형님”“동생”이라 부른다.또 인재를 만나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마다하지 않는다.LG전자 출신 박정대 사장(큐리텔.팬택 계열 대표),삼성전자 출신 이성규 사장(팬택 대표)등을 이런 식으로 영입했다.박 부회장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믿고 일을 맡긴다.그는 큐리텔 송문섭 사장을 “깜짝 놀랄 만한 실력을 갖춘 스탠포드 박사”라고 평했고 팬택 이성규 사장에 대해서는 “발군의 실력자”,“기술에 관한한 당대 최고”란 표현을 썼다.자신에 대해서는 “아둔하고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다만 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줄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이들이 실력을 발휘하게 하는 재주를 조금 갖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박 부회장은 인터뷰를 끝내고 기자가 취재수첩을 덮자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고 하더니 “다시 태어난다면 기업 경영 안하고 경쟁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2002년 10월30일

 

팬택이 ‘몸집 불리기’로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팬택은 이번달에 관계사인 팬택&큐리텔(대표 송문섭 http://www.curitel.co.kr)을 통해 중견업체로는 처음으로 독자브랜드로 내수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사옥부지 매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규모 연구개발(R&D) 인력 모집과 중국 사무소 개설 등 팬택의 확장경영이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팬택의 확장경영은 지난해 11월 팬택&큐리텔의 전신인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팬택은 현대큐리텔 인수로 단숨에 삼성전자·LG전자에 이어 단말기 3강으로 면모를 새롭게 했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현대큐리텔 인수 후 “10여년간 이동통신단말기 한 분야에 매진해 오면서 축적한 경영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팬택과 현대큐리텔을 세계적인 이동전화단말기 회사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부회장은 팬택&큐리텔을 인수하자마자 숙원사업인 독자브랜드 모델 개발에 착수, 지난달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내수시장에 ‘큐리텔’이라는 브랜드로 발을 들여놨다. 내년까지 시장점유율을 15∼20%까지 끌어올려 3강으로의 확실한 입지를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송문섭 팬택&큐리텔 사장은 “수익구조가 취약한 OEM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이동전화단말기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브랜드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팬택은 이에 앞서 내수 모델 및 3세대 단말기 개발을 위해 700여명의 R&D 인력을 모집하고 나서 경쟁업체들을 긴장케 만들었다. 박정대 팬택&큐리텔 총괄사장은 “팬택·팬택&큐리텔은 내년 매출 3조원, 순이익 1700억원을 경영목표로 삼고 있다”며 “최소 1000여명의 R&D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팬택·팬택&큐리텔은 현재 800여명의 R&D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팬택은 사옥 건립도 추진중이다. 정통부가 추진중인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단지내에 입주하기 위해 지난 8월 사옥부지 분양 신청을 냈다. 국내 대표적 중견 이동전화단말기업체인 세원텔레콤과 텔슨전자가 자본확충을 위해 사옥매각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신동진 팬택 상무는 “팬택과 팬택&큐리텔의 브랜드를 통합하고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사옥 신축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팬택·팬택&큐리텔은 현재 여의도·서초동·김포·이천 등 4곳에서 2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팬택은 또 중국에서 독자브랜드 추진과 함께 최근에는 사무소까지 여는 등 대중국 마케팅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올해말에는 유럽시장을 겨냥한 GSM 단말기를 내놓고 내년에는 유럽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관련 업계는 팬택의 급속한 확장세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견업체들은 자신들과 점점 격차를 벌리고 있는 팬택을 부러움 반, 아쉬움 반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메이저사들은 자신들을 어디까지 추격해올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병엽 부회장

 

 

한국경제 2002년 11월5일

 

팬택과 팬택&큐리텔(대표 박병엽)은 2002년 하반기 대졸이상 신입.경력사원 채용 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2백50여명 모집에 무려 3만7천여명이 지원해 창사이래 최고의 경쟁률인 1백52대 1을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
또 지망자 가운데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가 3천8백여명,해외유학파 6백20여명,공인회계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가 3백여명에 달했다.
부문별로는 연구개발 분야 61%,상경계열 20%,인문사회계열 8%였다.
팬택 박정대 총괄사장은 "신문광고 등을 하지 않고 인터넷 채용 사이트만을 통해 접수를 받았는데도 이같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며 "휴대폰 업계가 호황인데다 취업난이 겹쳐 지망자가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팬택과 팬택&큐리텔은 우수한 인재가 대거 지원함에 따라 연구개발 분야 등에서 당초 예정 채용 규모보다 다소 많은 채용을 적극 검토중이다.
팬택과 팬택&큐리텔은 12월초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

 

전자신문 2003년 5월16일

 

팬택과 팬택&큐리텔의 팬택계열(대표 박병엽)은 1분기에 257만대의 휴대폰을 공급해 421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14일 밝혔다.

팬택계열은 이에 따라 총 9800만대로 추산되는 1분기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2.6%의 점유율을 기록, 세계 톱10 진입이 확실시 된다.

팬택계열은 SK글로벌 사태에 따른 국내 경제의 침체와 중국 시장의 경쟁심화 등 국내 휴대폰업계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작년 동기대비 매출과 공급량이 각각 78.7%, 74.2% 증가해 메이저 휴대폰업체로의 면모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업체별로는 팬택&큐리텔이 매출 2469억원, 판매수량 131만대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과 판매대수가 각각 98%, 71% 늘어난 것이다. 영업이익은 166억원(이익률 6.1%)으로 50% 가량 늘어났다.

팬택은 매출 1567억원, 판매수량 125만대에 영업이익 5.9%(92억원)로 작년 동기대비 매출 53%, 판매수량 77%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중국 휴대폰 시장의 공급과잉 등 여파로 전년동기 11.1%보다 5%포인트 가량 낮아졌다.

팬택계열의 노순석 상무는 “팬택&큐리텔은 중국 시장의 어려움 속에도 미국으로 수출이 늘어난 데다 GSM단말기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실적이 개선됐다”며 “팬택은 중국시장에서 차이나유니콤의 보조금 미지급에 따른 판매저조와 함께 중국 휴대폰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재고누적 및 가격경쟁 심화로 이익률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한편 팬택계열은 2000억원 규모의 안정적인 경영자금을 확보해 재무구조를 꾀하는 동시에 이익구조가 크게 개선된 팬택&큐리텔을 이번달에 거래소시장에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청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3년 9월16일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앤큐리텔의 오너인 박병엽(朴炳燁.42) 부회장이 약 3천2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국내 벤처업계 최고의 재산가로 등극했다.
오는 17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팬택앤큐리텔은 지난 3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주식공모에서 청약 경쟁률 187.69 대 1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주식시장 진입을 알렸다.
이 회사의 주식은 17일 상장을 거쳐 18일부터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된다.
박 부회장은 이 회사의 주식 5천100만주(지분 25.38%)와 계열사인 ㈜팬택의 주식 480만주(19.7%)를 보유하고 있어 그의 재산규모는 두 회사 주식만으로 시가 약 3천200억원에 달한다.
지난 4월 대주주 지분 정보제공업체 에퀴터블이 발표한 국내 벤처부호 순위 1위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의 재산규모는 1천679억원이었다.
따라서 지난 4월 벤처 자산가 순위 10위였던 박 부회장은 이 사장을 제치고 번체업계 정상에 올랐으며 국내 100대 재산가에도 처음으로 진입하면서 단숨에 15위권에 오른 것으로 에퀴터블은 평가했다.
이로써 그는 불과 40대 초반의 나이에 성공적 벤처신화를 넘어서 연간 매출 3조원에 달하는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을 거느리는 재벌의 반열에 올라 젊은 사업가들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박 부회장이 젊은 나이로 단기간에 일약 거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확고한 경영원칙과 탁월한 경영감각 때문이라는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박 부회장은 지난 2001년 생존의 위기에 처한 팬택앤큐리텔을 인수할 당시 팬택내부에서 조차 "팬택의 재무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반대론이 제기되자 "팬택앤큐리텔 인수와 경영정상화에 따르는 부담을 팬택과 팬택 투자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며 개인신용 1천억원을 동원해 인수를 강행했다고 회사 관계자들은 전했다.
당시 팬택앤큐리텔이 일본, 이스라엘 등 외국의 회사에 넘어가려던 상황에서 "국내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이 해외로 유출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박 부회장의 일관된 신념이었다는 것.
그는 팬택앤큐리텔을 팬택계열에 편입한 뒤 지난해 1월 미국 최대의 이동통신 공급회사인 오디오박스와 단일계약으로는 최대규모인 휴대전화 500만대(약 1조원) 수출을 성사시켰으며 이어 내수시장에도 진출, 팬택과 함께 시장점유율 3위의 업체로 키워놓았다.
팬택앤큐리텔의 인수과정에 박 부회장의 탁월한 경영감각이 작용했다면 이후 경 영 정상화와 상장 성공에는 `사람과 기술'을 중시하는 박 부회장의 경영철학이 결정 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팬택계열에는 총괄대표 박정대 사장과 송문섭 팬택앤큐리텔 사장, 이성규 팬택 사장 등 전문 경영인이 포진하고 있고 여기에 팬택 재경본부장인 조용삼 전무, 팬택앤큐리텔 재경본부장인 이승보 전무, 팬택 중앙연구소장 이영하 전무, 팬택계열 홍보실장 장상인 전무 등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운집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박 부회장이 삼고초려끝에 대기업에서 스카우트한 스타급 인재들이다.
사람과 기술에 대한 박 부회장의 투자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이같은 사람과 기술 제일주의가 팬택앤큐리텔과 팬택을 오늘날 우량기업으로 키워냈고 그를 국내벤처 최고의 부호에 등극시킨 밑거름이 됐다고 이 관계자들은 평가했다.

 

전자신문 2004년 6월 4이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사진>이 한국의 대기업들과 맞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독일의 한 언론이 평가했다.

 독일의 유력 경제지인 한델스브라트는 26일자에서 박 부회장의 성공 스토리를 크게 다루면서 그를 한국의 모범적 기업가로 평가했다. 신문은 박 부회장의 성공 요인으로 끊임없는 연구개발(R&D) 투자, 수출지역 다변화, 완벽주의 경영, 인재등용, 미래비전 등을 꼽았다.

 특히 20대 후반 장인, 장모의 자금에 소액대출금을 보태 무선호출기 회사를 설립하고, 대기업들과 맞서 휴대폰업계에 진출, 세계 10대 휴대폰업체의 주인이 됐다며 그를 높이 소개했다.

 팬택계열은 회사 창립 10여년 만에 전체 직원 3500명에 15억유로 매출을 달성,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박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들이 너무 콧대만 세우다 침몰했다”며 “팬택은 이제 겨우 13년된 기업이고 아직 많은 결함과 부족한 점들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팬택계열은 노키아와 삼성과 같은 브랜드 파워나 유통망 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R&D의 끊임없는 투자와 최첨단 휴대폰 개발을 통해 팬택 브랜드의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박 부회장을 “인간적이면서도 부지런한 경영인으로 앞으로 새로운 비전을 향해 정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뉴스 2004년 7월27일

 

변변찮은 학벌과 직장생활, 소외와 무관심 속에서의 창업과정, 그저 그렇고 그런 장삼이사(張三李四)류의 한 젊은 벤처창업자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 드라마틱하고 치열했을 삶의 역정은 정말 우리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 모험심 하나로 백만장자의 꿈을 이룬 젊은기업가, 신데렐라 같은 성공스토리는 오히려 진부하고 식상할 뿐이다.
올해 42세의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은 30세에 창업해서 개인호출기(삐삐)에 이은 휴대폰사업으로 불과 10여년만에 대기업군을 거느린 무선통신업계의 기린아다. 아직도 성이 차지 않는 듯 대기업사냥 등으로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다. ‘아메바적 성장’을 거듭하는 그의 사업행보, 그 끝은 어디인가.
재산을 물려받은 재벌 2세도 아닌 그가 주류 커뮤니티가 확고히 뿌리내린 지금 이 시기에 맨주먹 하나로 정주영 같은 창업재벌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가 명멸(明滅)을 거듭해온 수많은 스타들과 달리 제조업 백만장자로 성공했다는 점이다. ‘닷컴 백반장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고, 성공비결은 무엇인지 묻지 말라. 그것은 천민(賤民)적 주제일뿐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요즘같이 움츠리고, 지리멸렬할 때 거침없이 보여주는 그의 사업적 모험주의가 주눅들고 찌든 기업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귀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경영권이 2∼3세로 세습되는 과도기에 있고, 기업가들의 열정과 패기도 식은지 오래다. 경제는 활력을 잃고 우울증에 걸려 있다. 과거의 왕성한 창업정신과 자신감, 기업가정신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기업인들에게 묻고 싶다. 요즘 기업인들이 혼란한 정국과 정책 탓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가 언제는 투자여건이 좋은 적이 있었나. 지금의 경제적 풍요는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없는 나라에서 이병철, 정주영 같은 개척정신, 정문술 같은 벤처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이 간난신고 끝에 얻어낸 산물이 아니었던가. 비록 결과는 실패로 끝났지만 김우중, 신선호 같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그나마 1만달러의 국부를 쌓고, 무명의 창업자들이 백만장자의 꿈을 키워오지 않았던가.
없는 자가 가진 자를 탓하고, 기업인들이 정부와 정책을 탓하고, 자영업자들이 불황을 탓하고 원망해서야 밝은 미래가 열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박부회장이 아름답고 정의롭고 선한 것은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온 그 거친 야성의 도전정신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헝그리정신 때문이었고, 우리는 무엇보다 이를 난세의 귀감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사업 초기에 지지 않기 위해, 죽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일했다는 그였다. 남다른 헝그리정신과 무한개척정신이 오늘의 그를 정상으로 끌어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난을 뚫고 혜성같이 등장한 스타들을 보라.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보자”며 9년 전 단칸방에서 회사를 차린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사장, 시골교회의 창고를 빌려 인터넷서점을 시작해 신유통질서를 일으킨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이조스, 10평 남짓한 창고에서 세계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을 일군 마이크로소프트나 휴랫팩커드의 창업정신과 모험주의는 바로 지금 이 불황기에 우리가 금과옥조로 새겨야 할 교훈인 것이다.
지금 박부회장은 실직자, 말단 샐러리맨, 자영업자 등 가진 것 없고 비전을 잃어버린 이 세상의 비주류들에게는 ‘희망의 등불’이다. 더구나 그는 오늘날 꺼져가는 기업가정신의 불꽃을 되살리는 상징으로 감히 치부될 수 있기에 더욱 값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패기와 열정이다. 기업인들은 기업마인드로, 젊은이들은 벤처의 개척정신으로 다시 뭉칠 때 성장, 분배, 불황, 실업 등 우리의 고질병도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박부회장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이 실의에 빠져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기업가정신을 잃어버린 기업인들에게 지축(地軸)을 박차고 다시 일어나는 자극제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경제 2004년 12월12일

 

"내년 경제여건이 너무 어렵습니다.임금을 동결합시다."(노조위원장)
"무슨 소립니까.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지만 올해 흑자를 냈습니다.예년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겠습니다."(사장)
지난 10일 김포에 있는 팬택의 휴대폰 생산공장.
팬택 노조는 이날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쳐 "임금동결 결의대회"를 가졌다.
대회 직전에야 소식을 전해들은 이성규 사장은 즉각 김포로 달려와 박덕규 노조위원장을 만류했다.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만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임금동결은 안됩니다. 경영진으로서 여러분에게 부끄럽습니다."
이 사장은 "직원들 덕분에 회사가 올해 흑자로 전환하고 내년엔 더 많은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임금을 동결할 이유가 없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팬택 노조의 임금동결 결의는 임금협상을 앞두고 대의원들이 동종업계를 방문조사한 후 내린 결론이다. 주로 한국노총 산하 금속연맹 업체들을 방문했는데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했던 것.
박 위원장은 "회사가 어려워 무급휴직을 실시하거나 인원을 감축하는 기업이 의외로 많았다"며 "내수침체 환율하락 등 악재가 겹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팬택 노조원 중 상당수는 지난날 현대전자 하이닉스 현대큐리텔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어 회사의 경영악화로 인한 고통을 몸소 체험한 상태다.
박 위원장은 "하이닉스에서 5년동안 임금이 동결됐고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회사가 잘못되면 직원들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결국 박위원장은 내년 임금동결을 제안했고 대의원들은 순순히 동의했다.
신재덕 노조사무국장은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임금을 동결함으로써 회사가 조금이라도 더 강한 경쟁력을 갖도록 하자는데 노조원들이 동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의 임금동결 결정을 예상하지 못했던 회사측은 깜짝 놀랐다.
팬택 경영진은 이날 저녁 박병엽 주회장 주재로 긴급경영위원회의를 열었다.
토론 끝에 임금을 예년 수준으로 인상하고 격려금까지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박 부회장은 회의를 끝내면서 "노조가 회사의 장래를 생각해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 결정을 내린 데 대해 고마움을 표한다"면서 "경영진은 내년 경영계획을 철저히 점검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도록 힘써달라"고 지시했다.

 

 

한국경제 2005년 5월3일

 

팬택앤큐리텔이 3일 SK텔레콤의 휴대폰 자회사인 SK텔레텍을 전격 인수키로 한 것은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 세계 휴대폰 시장‘빅5’를 향해 던진 또 하나의 승부수로 풀이된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 업체인 SK텔레콤으로선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번 인수는 두 회사간‘윈-윈’모델로 분석된다.
팬택앤큐리텔과 팬택을 거느리고 있는 팬택계열은 SK텔레텍을 인수함으로써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LG전자와 2위를 다투는 차원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메이저 ’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왜 인수했나
지난해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려다 실패한 팬택계열로서도 '스카이'브랜드로 고급 이미지를 갖고 있는 SK텔레텍을 인수할 만한 메리트가 충분했다. 그동안 내수시장에서 2위인 LG전자와 시장점유율 격차 1∼4% 안팎으로 뒤져 있던 터에 '스카이' 인수는 2위 고지를 굳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팬택계열 고위 관계자는 "SK텔레텍을 인수하더라도 '스카이'브랜드를 계속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팬택앤큐리텔'과 '스카이' 등 듀얼 브랜드 전략으로 국내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SK텔레텍이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인 핀란드 노키아에 제조자설계생산(ODM) 방식으로 대량의 휴대폰을 공급키로 한 점도 인수 매력으로 꼽힌다.
SK텔레콤과 팬택앤큐리텔이 미국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을 비롯 해외시장 개척과 확대를 공동으로 추진키로 한 점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의 규제 탈피
SK텔레콤으로선 최대 이동통신 업체가 휴대폰 제조 자회사를 키워 수직계열화하려 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동안 KTF와 LG텔레콤은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팬택계열 등 휴대폰 제조업체도 SK텔레콤의 수직계열화에 대해 강력 반발하는 입장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1년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합병을 인가할 때 SK텔레콤이 자회사인 SK텔레텍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휴대폰 물량을 2005년 말까지 연간 1백20만대로 제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분이 3분의1 수준으로 줄어 2대주주가 됐지만 시장 안팎의 규제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팬택앤큐리텔과 비즈니스 측면에서 시너지(상승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시장 '빅5' 향한 발판
팬택계열은 SK텔레텍을 인수함으로써 '그룹'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팬택계열 올해 매출목표인 4조2천억원에 SK텔레텍의 지난해 매출 5천5백25억원 을 더하면 5조원에 근접한다.
팬택계열은 SK텔레텍 인수를 계기로 세계'빅5' 휴대폰 업체로 도약하기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팬택계열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은 2001년 12월 적자에 허덕이던 현대전자 휴대폰 사업부문'현대큐리텔'을 인수,1년만에 흑자기업으로 만들었다. 박 부회장은 지난해 9월 대우종합기계 인수에 실패한 뒤 "세계 휴대폰 업계는 앞으로 3년안에 대대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빅5' 정도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신문 2006년 7월25일

 

3·4분기에는 웃을 수 있을까. 잘 나가던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올해 들어 주눅이 들었다. 설마했는데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영업적자 및 이익률 저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 더 이상의 추락은 없어야 한다는 게 CEO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나름대로 국면돌파용 카드를 쥐고 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국내 빅3 가운데 삼성전자 이기태 사장은 그마나 선방했다.1분기 영업이익률(1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분기에는 이에 근접한 9.5%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노키아, 모토롤라를 극복했다는 징후가 보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분기와 2분기 연속 적자를 낸 LG전자 박문화 사장은 ‘가능성’과 ‘기회’를 역설하며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1분기 300억원 적자에서 2분기에는 10분의 1(30억원)로 줄인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 사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독한 실행력’을 강조했다. 성과 극대화를 위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업무에 도전할 것과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큰그림을 놓치지 말고 핵심에 집중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박 사장은 “3·4분기는 희망적”이라며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31일 2분기 영업성적 발표를 앞둔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도 올 상반기는 시련의 시기다.1분기에는 흑자를 기록했지만 2분기엔 우려했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박 부회장이 창사 15주년 기념사에서 강조했듯이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팬택계열의 기업운명을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휴대전화 업계 침체의 1차 원인은 노키아와 모토롤라 등의 저가폰 공세 탓이다. 여기에 환율문제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도 현 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헤어나기 어려운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들 CEO들에게 긴급회동을 제안했다. 장관과 휴대전화업계만의 회동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밝혔다.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방증이다.
27일 회동에서 노 장관과 이들 CEO들은 머리를 맞댄다. 국면 탈출을 위해 뭔가 수를 내야겠지만 이렇다 할 묘안은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노 장관은 국내시장 수요기반 확충 방안을 끄집어낼 예정이다.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와이브로(무선인터넷),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서비스 활성화가 포인트다. 대통령, 총리, 장관이 해외에 나갈 때 정치외교적으로 강하게 프로모션하겠다는 내용이 전달될 수도 있다고 정통부 관계자는 전했다.
위기 탈출과 관련, 삼성전자 이 사장과 LG전자 박 사장은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할 생각이다. 규모의 경제를 넘어선 노키아와 모토롤라의 저가폰 전략을 따라갈 경우 ‘죽는다.’고 보고 있다. 팬택계열 박 부회장은 다국적, 다사업자용 모델을 개발해 기존의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시장확산을 노린다는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헤럴드경제  206년 10월23일

 

15년간 기업을 하면서 죽을 정도로 어려웠던 적이 2~3번 있었습니다. 실패할 경우 구차하게 살아남느니 깨끗하게 사라진다는 각오로 다시 한번 팬택계열의 재도약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팬택계열의 박병엽(44) 부회장. 그는 연초부터 이같은 사즉생(死卽生)의 비장한 말을 해왔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지금 그는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박 부회장은 올 들어 그 좋아하던 골프도 끊었다. 휴일에도 매일 출근하다 시피했다. "죽을 각오를 하면 살길이 열린다"는 각오로 위기극복을 위한 혁신과 체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안타깝게도 그의 생사를 건 투지 만큼, 팬택계열의 위기 돌파는 아직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23일부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 퇴직서를 받으며 뼈를 깍는듯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자체 워크아웃까지 외친 박 부회장…= "팬택계열은 요즘 워크아웃입니다. 외부에 의해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워크아웃 기업이라는 생각으로 내실을 다지자는 것입니다."
지난 1/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박 부회장은 자체 워크아웃까지 선언하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한편으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성장해 온 것이 팬택의 역사입니다. 위기도 글로벌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기회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며 특유의 당찬 자심감도 보였다.
그 때만해도 팬택계열은 1/4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 새로운 도약에 대한 시장안팎의 기대감에 넘쳐 있었다. 그것도 잠시. 지난해에 이어 2/4분기 다시 적자로 전환, 팬택계열의 위기론이 시장안팎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1991년 자본금 4000만원의 호출기 생산업체 팬택을 설립, 매출 4조원대의 팬택계열을 일궈낸 박 부회장. 그의 장밋빛 성장가도에도 서서히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하다. 글로벌 메이저들 업체들과의 과도한 정면 승부가 화근이 됐다. 해외 시장에서 자가 브랜드 사업을 하기 위해 2000억원 이상의 비용까지 투입했지만 별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내수도 판매부진으로 인해 2/4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시장은 3/4분기에도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 연초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 했던 박 회장의 야심찬 도전이 난관에 부딪혔다.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박 부회장은 SK텔레텍 인수 당시 "인위적인 인력감원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의 약속은 채 1년을 못갔다. SK텔레텍 인수 당시 팬택계열의 총 직원수는 4500명에 육박했다. 현재는 총 3500명, 올 상반기 이미 500명 가량의 인원을 감원했다. 15년간 팬택을 경영하며 인위적인 인력감원에는 항상 `노(N0)`를 외쳤던 박 부회장이지만 그 절박함은 결국 그가 자존심처럼 지켜온 무감원 경영원칙까기 허물어뜨렸다. 박 부회장은 대규모 인력감원의 초강수 칼날을 또 꺼내 들었다. 조직도 통폐합했고, 간부급의 임금도 삭감했다. 생존을 위한 사실상의 마지막 모든 수단을 동원한 모습이다.

▶생사를 건 전쟁 중, 과연 돌파구는 있나= "지금은 전쟁중입니다. 앞으로 1~2년간은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입니다." 박 부회장의 말처럼 팬택계열의 위기는 일단 올해가 큰 고비가 될 전망이다. 올해 구조조정을 통해 한 고비를 넘기고, 유티스타컴과의 대규모 수출계약건과 투자유치가 계획대로 원활히 진행된다면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서울경제 2006년 12월12일

 

팬택계열의 좌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고 역동적인 기업의 좌절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창업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은 11일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공식 요청한 후 임직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다시 재기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팬택이 벤처기업의 살아 있는 전설이고 박 부회장 자신도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되는 탓에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억울한 심정이 너무 클 것 같다.

박 부회장은 호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87년 무선호출기 생산업체인 맥슨전자에 입사했다. 기업을 상대로 한 무선호출기 판매영업에서 박 부회장은 남다른 역량을 과시했다. 3,000명의 직원 가운데 회장 다음으로 접대비를 많이 쓸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91년 창업을 결심했다. 전세금을 빼 자본금 4,000만원, 직원 6명으로 무선호출기 생산업체인 팬택을 설립한 것.

박 회장은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사업마다 1%의 가능성만 있으면 공격경영을 표방하며 돌진했다. 그 결과 팬택계열은 80년대 이후 창업한 제조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조(兆) 단위 매출을 기록한 업체로 떠올랐다. 또한 창업 15년 만에 팬택계열을 매출 3조원, 세계 7위의 휴대폰 생산업체로 키워냈다.

팬택의 이 같은 초고속 성장에는 박 부회장 특유의 친화력, 동물적인 판단력,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숨어 있다. 그는 돈도 없고 학벌도 없었지만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형’이나 ‘동생’으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무선호출기 시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97년 휴대폰 제조업체로 탈바꿈, 5년 만에 매출 1조원을 올리는 기업을 키워낸 것은 그의 동물적인 사업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부회장의 성공신화는 지난해 5월 ‘스카이’ 휴대폰으로 널리 알려진 SK텔레텍을 전격 인수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이 같은 빅딜에 힘입어 팬택은 국내시장에서 LG전자를 제치고 휴대폰 2위 업체로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순항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했다. 해외 시장에서 자가 브랜드로 사업하기 위해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투입하고 미국ㆍ일본시장 공략에도 나섰지만 세계시장이 노키아 등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이라 자체 브랜드 전략은 쉽사리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금 박 부회장은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박 부회장 특유의 친화력과 사업감각, 그리고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의 재기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특히 박 부회장은 협상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어 워크아웃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현재 코앞에 닥친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캐시 카우` 확보가 급선무다. 그래서 새 슬로건을 런칭한 스카이(SKY)의 성공 여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15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성공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박 부회장. 그의 다짐이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지 아니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 주목된다.

 

매일경제 2008년 3월29일

 

요즘 부쩍 는 게 하나 있어요. 담배요."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요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선 담배부터 물고 시작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 모금 담배연기가 위안이 되곤 해요."
2006년 하반기 충격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팬택.
그동안 이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박 부회장과 임직원들은 입을 악물었다. 29일은 팬택 창립 17주년 되는 날이다. 다음달이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1주년이다.
17주년을 맞아 박 부회장이 28일 기자들을 만났다. 2006년 5월 기자간담회 이후 꼭 1년10개월 만이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드디어 어른이 돼 가는 느낌이에요. 내가 올해로 4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데, 이제서야 성년이 된 느낌이죠. 회사를 보는 눈도 그렇고 예전보다 많이 진지해졌어요."
그동안 팬택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잘나가던 회사가 갑작스럽게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기업개선작업에 돌입하는가 하면 개선작업에 착수한 뒤 곧바로 영업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등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지난해 2분기 2000억원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는데, 3분기부터 곧바로 흑자전환해 올해까지 3분기 연속 흑자를 냈습니다.

통상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 1년이나 1년 반 정도는 지나야 흑자를 내는데 우린 좀 엉뚱한 기록을 세우고 있어요. 채권단이 우리를 신임해 주고 임직원들이 불철주야 일해서 얻은 결과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런 성과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게 박 부회장 생각이다. 그는 "중장기적 목표는 워크아웃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고 그러기위해 올해는 영업뿐 아니라 경상실적까지 흑자전환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2008년을 턴어라운드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언제쯤이면 팬택이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박 부회장은 매우 조심스럽게 "2010년까지는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2011년 3월26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 시작되자 그는 죽고자 했다. 한때 '벤처신화'로 추앙받던 회사는 일순간 무너져내렸다. 무리한 해외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자금이 막혔고 빚독촉은 더해졌다. 채권단은 압박했다. 파산 직전에 이르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리고 홀로 한강다리를 찾았다.
잘나갈 때 4500억원에 달하던 오너 지분은 휴지조각이 됐다. 빈털터리 오너였다. 하지만 가슴한편에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아쉬움…. 마음을 다잡았다. 그냥 죽기도 시쳇말로 '쪽팔렸다'. 죽을 각오로 다시 도전하자며 입술을 깨물었다.
 박병엽. 남은 건 이름석자뿐이었다. 직원 40%를 내보냈다. 경영권을 넘기고 백의종군했다. 애지중지하던 사옥도 헐값에 처분했다. 죽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물론 쉽지않았다. 생존은 곧 전쟁이었다. 남은 직원들은 묵묵히 최고경영자(CEO)를 따랐다. 고마운 헌신이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주말도 휴일도 없었다. 월요일 회의는 아침 6시30분에 시작됐다. '월화수목금금금' 징그러울 정도로 일했다. 사무실은 그저 '창살없는 감옥'이었다.
 그러자 서서히 기적이 일어났다. 외면하던 고객들이 조금씩 돌아왔다. 내수점유율도 10%, 15%, 조금씩 회복됐다. 그 역시 발이 부르트도록 고객을 만났고 1박3일, 무박3일의 살인적인 출장을 소화했다. 채권단도 빚을 투자금으로 전환해줬다. 워크아웃 중이던 기업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진심이 통한 것이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박병엽의 팬택이 부활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시베리아의 삭풍처럼 치열한 '휴대폰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단련된 팬택은 다이아몬드와 같았다.
 25일 오전 팬택 김포공장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박병엽 부회장은 올해 매출 3조원, 판매량 1500만대의 야심찬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로서 도약도 선언했다. 팬택은 지난해 국내외 시장에서 1107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했다. 매출은 2조775억원, 영업이익 840억원을 기록했다. 2007년 3분기에 시작된 워크아웃 이래 14분기 연속 흑자달성이다. 매출은 2009년 1조1805억원보다 2배 가까이, 판매량도 15%나 늘었다. 특히 스마트폰 판매량이 100만대에 달하며 질 면에서도 개선이 이뤄졌다.
 사실 지난해초 '아이폰 쇼크'는 워크아웃 기업 팬택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한숨을 돌리만 하니 악재가 터졌다며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박병엽 부회장은 오히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고맙다"며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았다. 이내 조직을 추스르고 '시리우스' '이자르' '베가' '미라크' 등 히트작을 내놨다. 4분기에는 영업이익률이 6%대까지 회복했다. 삼성전자에 이어 스마트폰 2위 자리까지 올랐다. 팬택에 밀린 LG전자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삼성, LG 등 국내 경쟁사는 물론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등 해외기업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은 개발인력과 자금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출시한 회사가 팬택이다. 경쟁사들이 주저주저할 때 한발 앞서 제품을 개발하며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다. 해외고객들도 이를 인정했다. 최대 고객사인 미국 AT&T는 내로라하는 글로벌 제조사들을 제치고 기술과 품질 등에서 팬택을 1위 협력사로 선정하고 물량을 확대하기로 했다.
 박 부회장과 팬택에 있어 올해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창립 20주년이자 2007년 시작한 워크아웃을 마무리하는 해다. 올해 매출 3조원, 1500만대 판매, 2015년에는 매출 10조원 고부가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는 비전도 발표했다.
 역시 스마트폰이 승부처다. 올해 국내에서만 신모델 10종 이상 출시하고 전체 1200만대 시장에서 300만대 이상을 판매해 25% 이상을 점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앞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더 강해진 애플은 국내 통신사들마저 굴복시키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삼성, LG도 독기를 품고 맞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 같은 팬택의 힘을 믿는다. 박병엽 부회장은 "단말기산업의 경쟁이 격화될수록 기본과 초심으로 돌아가 지난 4년간 고난 속에 이뤄놓은 토대를 더욱 굳건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졸업'을 꿈꿀만도 하지만 '승부사' 박병엽의 시선은 이미 저 멀리를 향하고 있다

 

 

서울신문 2011년 3월29일

 

모두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도, 주주도, 협력사도 팬택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4000억원의 사재를 내놓고 8000억원에 달하는 회사 부채에 보증을 선 창업자 박병엽 부회장은 ‘부활의 꿈’을 믿었다.
2006년 모토롤라의 레이저폰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을 휩쓸었다. 한국 휴대전화 산업이 위기감을 표출할 정도로 거대한 ‘쓰나미’였다. 1991년 창업 후 10년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하던 팬택도 휘청거렸다. 재고는 쌓이고 재무제표는 악화됐다. 2007년 4월 유동성 위기에 빠진 팬택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만 4년….
스마트 기기 제조사인 팬택이 29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최고경영자(CEO)인 박 부회장 등 임직원만 참석한 가운데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2007년 3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1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샴페인은 올 연말 워크아웃 졸업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박 부회장은 28일 “91년에 창업해 20년을 생존하고 매출 3조원을 기록한 유일무이한 팬택을 2015년 매출 10조원 달성과 50년 이상 영속할 강한 기업으로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는 아직 긴장감이 묻어난다.
박 부회장은 평소 ‘내가 시작한 회사’라는 말을 자주 쓴다. 4년 전 위기 때도 그는 “창업자로서 회사만 살릴 수 있다면 빈손으로 나가겠다.”고 읍소했다. 2006년 11월 워크아웃을 신청한 후 지방의 소액채권자까지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발로 뛴 설명회만 30여 차례. 채권단은 박 부회장을 믿기 시작했고 이듬해 4월 워크아웃이 성사됐다.
당시 미국 퀄컴에 줘야 할 미지급 로열티 규모는 7600만 달러. 회사 금고는 바닥났다. 박 부회장은 폴 제이컵스 퀄컴 회장에게 “로열티를 출자로 전환해달라.”고 제안했다.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팬택은 퀄컴을 2대 주주로 끌어안으며 생존 기반을 닦았다.
팬택에는 특이한 시상식이 두개 있다. 하나는 펭귄상, 또 다른 하나는 마사이상. 펭귄상은 천적의 공격 위협에도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첫번째 펭귄’을 의미한다. 마사이상은 ‘마사이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는 마사이족의 집요한 승부 근성에 유래한 상이다. 박 부회장은 팬택의 1호 펭귄이다. 팬택 관계자는 “팬택의 기업 문화를 설명할 때 도전·혁신·소통을 빼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고 설명한다.
창립 20년을 맞은 팬택은 누적 매출액 21조 5000억원, 누적 수출액 104억 달러(11조 5011억원), 연구·개발(R&D) 투자비 2조원으로 국내외 특허 3300여건, 지적재산권 1만 3700여건을 가진 기술제조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1분기 동안 스마트폰 60만대를 파는 등 누적판매량 160만대로 국내 스마트폰 2위 제조사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LG전자, 모토롤라, HTC 등 경쟁사를 제치고 미국 대표 통신사인 AT&T의 1위 거래업체로 연속 3회 선정됐다.
박 부회장은 “최고경영자인 저부터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도전하고 더 치열하게 뛰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1년 12월 7일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산증인인 팬택 박병엽 부회장(49)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삐삐(무선호출기) 신화’의 주역인 박 부회장은 휴대전화, 스마트폰으로 종목을 바꿔가며 맨손으로 팬택을 세계 7위 휴대전화 업체로 키웠다. 무리한 해외 사업 확장으로 회사가 2007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자 “월급을 받지 않겠다”면서 야전침대에서 생활하며 경영 정상화에 매달렸다.

경영 잘못의 책임을 지고 회사를 정상화시킨 뒤 홀가분하게 옷을 벗은 사례는 흔치 않다. 팬택의 창업자이자 오너인 박 부회장은 수조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팬택을 ‘맨손’으로 떠났다.

박 부회장은 6일 서울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12월31일을 끝으로 팬택 경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회사가 정상화돼 떠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제 쉬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워크아웃 기간인) 지난 5년간 휴일 없이 일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많이 피로하고 체력적으로 감당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박 부회장의 임기는 2014년 3월25일까지다.

박 부회장은 내년 3월부터 자격이 생기는 1000억원대의 스톡옵션(1억6400만주)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채권단을 비롯한 외부의 압력은 없었다고 했다. 팬택 창업자인 박 부회장은 회사 지분이 전혀 없다. 2007년 4월 팬택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4000억원에 이르는 지분을 회사 회생자금으로 내놨다.

박 부회장은 스물아홉 살이던 1991년 10평짜리 집 전세금 4000만원을 빼 팬택을 차렸다. 직원 6명이 전부인 무선호출기 회사였다. 무선호출기 사업이 대박을 터뜨렸지만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자 1997년 과감하게 휴대전화로 갈아탔다. 이동통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2005년 매출이 3조원을 넘기며 세계 7위 휴대전화 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6년 무리한 사업 확장 탓에 자금난에 빠지며 2007년 4월 워크아웃 신세를 지게 됐다. 4000명에 달하던 직원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는 8000억원에 이르는 회사 부채에 직접 보증을 섰다. 그는 “당시 죽으려고 한강다리에 섰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팬택은 독해졌다. 박 부회장이 “백의종군하겠다”고 하자 전 임직원은 휴일 없이 오전 5시에 집을 나서 기술 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사양길에 접어든 휴대전화 대신 스마트폰 개발에 올인했다. 이 같은 노력은 실적으로 나타났다. 팬택은 워크아웃 직후인 2007년 3·4분기부터 18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1107만대의 단말기를 팔아 2조775억원의 매출을 올려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도 제쳤다. 요즘 유행하는 4세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세계 5위로 올라섰다.

박 부회장은 “아직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작은 자회사는 당분간 챙기고 싶다”고 마지막 열정을 표시했다. 그는 “워크아웃 당시 책임을 함께해주리라 믿었던 금융사가 발을 빼는 행태를 보인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며 “팬택이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고, 우리 제품을 국내외 소비자들이 찾는 모습이 가장 즐거웠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채권단이 대주주로서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팬택 같은 기업이 기업구조개선 작업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기업활동을 하기 좋은 나라”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박 부회장이 연말로 예정된 워크아웃 졸업이 성사되도록 마지막에 모든 걸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2011년 12월 7일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물을 마시고 있는 박병엽 부회장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