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김종학 감독의 죽음 소식은 정말 놀랍고 안타까웠습니다. 엄청난 히트작을 내놓은 한국 드라마  명장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허망하게 이리 가야했는지 많은 이들도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 몬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과 한국 드라마 제작 현실에 대한 비판 글들이 쏟아지고 있네요. 아울러 그에 대한 추모와 아쉬움의 마음을 전하는 소식들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보며 자란, 아니 다 자라서 보긴 했습니다만, 이런 드라마도 있구나 하고 눈을 뜨게 해 준 김감독의 작품은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의 신기원을 개척했다고 할만합니다.

지금 다시 봐도 좋을 것 같은,  젊은 친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그의 작품들이죠.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시죠.

 

*여명의 눈동자

여명의 눈동자는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고 숱한 기록을 세웠던 작품입니다. 평균 시청률 50%라는 것도 놀라운 기록인데다 그전까지 드라마들이 담아내지 못했던 묵직하고 금기시되던 주제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왔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위안부문제, 일본군의 생체실험과 같은 자극적일 수 있는 요소 뿐 아니라  43항쟁이나 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 대립도 비교적 냉정하게 그렸습니다. 그전까지는 이념부분에서 거의 일방적 수준이었으니까요.

당시 이 작품의 몇몇 장면들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남녀주인공인 대치와 여옥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누었던 키스신은 전후 드라마를 통털어 최강의 키스신이 아니었을까 . 최대치가 뱀을 산채로 뜯어먹는 장면도 잊을 수가 없지요.

이 작품은 당시 역사교육의 좋은 소재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당시 언론들은 미국과 홍콩의 액션물에만 탐닉하는 '엑스세대'들이 일제 강점기의 비극적인 역사를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해줬다고 했습니다. 분단논리에 매몰돼 있던 시대에 제주 4, 3사건이 공중파에서 처음으로 불편부당하게 다뤄졌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죠. 당시 제주 출신이던 제 친구는 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지금까지 4, 3사건은 입밖에 내서 말 할 수도 없는 금단의 단어였다고, 자기 삼촌도 그 때 돌아가셨다면서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한이 풀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진일보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도 드라마 회당 제작비용이 대작인 경우 회당 2억~3억에 이르는데 91년 당시 회당 제작비 1억원을 넘었던터라 물량공세도 엄청났습니다. 해외로케, 어마어마한 출연진들, 오랜 제작기간 등 숱한 화제를 모았지요. 그리고 그전까지하이틴 스타였던 최재성이나 채시라는 이 작품을 통해 톱스타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세 인물  하림, 대치, 여옥을 각각 박상원, 최재성, 채시라가 연기했습니다.

드라마 음악도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여옥의 테마는 당시 웬만큼 피아노를 배우는 초등학생들도 다 칠 정도로 유명세를 자랑했습니다.

 

 

 

 

*모래시계

 

귀가시계라는 말을 만들어냈던 모래시계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광주 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와 같은 민감한 소재를 정면으로 다뤄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영화기법을 도입해 뛰어난 영상미로도 대중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당시 광주항쟁 장면을 광주 충장로에서 직접 촬영했는데 극심한 불편을 다 감수하면서 광주시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도 했습니다. 극중 혜린이 일하던 카지노 장면도 흥미로웠습니다. 폭력조직도 매우 현실적으로 많이 묘사됐습니다. 당시 폭력배로 출연했던 배우가 손현주씨입니다. 지금은 명배우이지만 그 때만 해도

아직은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풋풋(?) 했던 시절이었죠. 예전에 손현주씨에게 모래시계 장면 생각난다고 말했더니 깜놀 하셨다는..

모래시계 역시 드라마 음악이 유명했습니다. 가장 인기가있었던  곡은 구소련 노래였던 <백학>이지요.  비장한 음색으로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하고 어찌나 많이들 따라불렀는지 기억나시죠. 러시아 가수이자 시인이었던 이오시프 코브존의 중저음이 당시 서울시내 곳곳에 울려퍼졌습니다.

박상원, 최민수, 고현정. 이들 세 주인공 외에 혜린의 보디가드로 등장했던 이정재는 이 작품을 통해 스타성을 드러냈습니다. 당시엔 생짜 신인이었던데다 대사처리가 잘 안돼 제작진이 대사를 없애는 고육책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그런 전략은 오히려 신비주의로 힘을 발하며 배우 이정재의 존재감을 극대화시켜줬지요.

 

 

 

 

 

 

이같은 대작을 내놓은 그는 지독스러운 철저함과 독선적일 정도로 자기 세계가 강했던, 장인정신으로 뭉친 PD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래시계 이후 그가 내놓은 작품들도 역시 대작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작품을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모래시계 뒤에 내놨던 작품이 백야 3.98입니다.

 

*백야 3.98

이병헌, 심은하, 이정재, 진희경, 최민수. 역시 어마어마한 캐스팅입니다.  화려한 출연진에 엄청난 제작비와 해외 로케 등등 기대를 모았지만 이 작품은 이 전의 두 작품을 자꾸 떠올리게 만들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게다가 그전 작품들은 사회성과 역사의식을 상업적 재미와 섞어 맛깔나게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지만 이 작품은 현실감이나 당시 흐름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대중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심은하씨가 연기했던 아나스타샤의 아역으로 송혜교씨가 출연했습니다. 순풍산부인과 전이죠.

 

 

 

 

*태왕사신기

지금껏 만들어졌던 드라마 중 이것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이 또 있을까요. 방영 시기가 계속 연기됐고 표절논란에 시달렸으며 방영중에는 김감독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제작현장에서 잠시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방영된 뒤에는 화려한 볼거리와 독특한 소재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제작발표회 당시 모습이네요. 송지나 작가와 함께 한 김감독의 모습입니다

 

 

 

 

 

이외에도 장동건 명세빈 주연의 <고스트>,  장혁 한재석 이요원 손예진이 나왔던 <대망>이 기억납니다. 저는 이 <대망>을 무지하게 좋아하며 열심히 본방사수를 했었습니다.

오는 주말에 옛 드라마나 찾아서 다시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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