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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통신

그때 그 사람들/ 문대성

by 신사임당 2012. 4. 19.

요즘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는 이름들 중 하나입니다.

문대성.

수년전, 태권도 금메달 리스트이고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해서

수많은 소녀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그 소녀들 틈에 끼어 덩달아 므흣한 기분으로 그를 바라봤던 대중의 한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정치적인 부분, 도덕적인 부분 등 앞으로 그가 밝혀야 할 입장과 태도, 그리고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해야하는지는

많은 국민들이 뜨겁게,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는만큼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보며 문득 떠오르는 것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그에게 쏟아졌던 찬사들입니다.

이후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매스컴에 오르내렸고

하는 일마다, 선택마다 찬란한 의미가 부여됐으며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님이 되고 IOC위원이 되고

스타로, 영웅으로 대중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렸습니다.

그 영광은 여당 텃밭에서 여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고

확정될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순간이 영광의 절정이었을까요.

어쨌든 그랬던 그가

어떤 과정을 겪으며 이 지경에 오게 됐는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생깁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기자들이 지금까지, 또 이순간에도

특정인을 인터뷰하고

숱한 의미를 부여하고

기사를 통해 찬사를 보내고

전해지는 보도자료만으로 기계적으로 기사를 써대기도 합니다.

물론 그 당시는 그것이 최선일 수 있고

그런 순간들도 역사이지만

영광스러웠던 깊이만큼

미래 어느 순간에

빛바래진 부끄러움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의 엄습....

 

슬프네요....

 

 

경향신문]|2004-08-30|S3면 |45판 |스포츠 |1662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한국 태권도의 자존심이자 믿음직한 '맏형' 문대성(28.에스원). 그의 통쾌한 발끝에서 또하나의 금메달이 터졌다.
불같은 투혼을 던졌지만 끝내 눈물을 삼켜야 했던 여자핸드볼의 아쉬움도 통쾌하게 날려버렸다.
남자 태권도 80㎏이상급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패기 넘치는 그리스의 강호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25).
그리스 팬들의 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게 나섰지만 동급 최강 문대성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처음 예감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앞서 열린 백전노장 파스칼 젠틸(31.프랑스)과의 준결승에서 2회 공격을 시도하다가 왼쪽 발목이 삐끗하는 바람에 잠시 경기가 중단됐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문대성은 달랐다. 처음부터 침착함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갔다.
1라운드 시작하자마자 큰 키(2m)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상대를 예리한 앞발차기로 받아치며 먼저 1점을 선취했다. 이어 터진 안면 강타로 2점을 보탠 문대성은 니콜라이디스가 오른발을 들며 밀고 들어오는 순간 몸을 돌리며 왼발로 상대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 경기는 그것으로 끝. 1회 2분10초만에 통쾌한 KO승이었다.
시원한 승리로 한국선수단에 9번째 금메달을 선사하는 순간 경기장은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그동안 비아냥처럼 쏟아냈던 '종주국 봐주기'라는 야유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문대성은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패자를 찾아가 끌어안으며 위로를 잊지 않았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 이어 올림픽까지. 비운의 태권스타 문대성이 마침내 '트리플크라운'의 위업을 이뤘다.
앞서 첫 판과 8강전에서 99년 세계선수권 3위 아딜칸 사긴디코프(카자흐스탄)와 후안 가르시아를 꺾은 문대성은 사실상 결승이나 다름없는 파스칼 젠틸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고 금메달을 예약했다. 아테네/조홍민 기자
dury129@kyunghyang.com

■문대성 누구인가 - 중량급 '절대강자'
문대성(28.에스원)은 이번 올림픽에서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 '태권 드림팀'의 기대주다.
1m90, 92㎏의 체격에도 경량급 선수 못지않은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기술을 앞세워 각종 국내.외 대회를 휩쓴 중량급 태권도의 절대강자.
왼발 몸통돌려차기, 왼발 뒤차기 등 '왼발의 달인'이지만 이미 국제무대에서 노출된 왼발 대신 과감한 오른발차기를 비장의 무기로 '장착'해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쓰러뜨렸다.
인천구월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도복을 입은 문대성은 그에게서 재능을 발견한 사범의 권유로 태권도와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1996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9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면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문대성 역시 여자 57㎏급의 장지원처럼 아픈 과거가 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2000년 시드니대회 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한 문대성은 출전권을 납한 1위 김제경의 양보로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3위 김경훈과의 갑작스런 재대결 결정이 내려졌고 여기에서 진 문대성은 시드니에서 김경훈이 금메달을 따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실의를 딛고 일어선 문대성은 지난해 12월 프랑스에서 세계 강호를 잇따라 제압하고 아테네행 티켓을 따온 데 이어 올림픽 금메달마저 목에 걸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아테네/조홍민

 

[경향신문]|2004-09-01|06면 |45판 |사회 |713자

 

"문대성 선수의 멋있는 모습에 반했어요. 꼭 문선수가 직접 가르치는 반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요."2004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80㎏ 이상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문대성 선수가 운영하는 경기 시흥 '문대성태권스쿨'은 요즘 문전성시다. 특히 문선수의 훤칠한 외모와 출중한 태권도 솜씨에 반한 20대 초반 여성들이 줄을 잇고 있다.

문선수의 친동생이자 체육관 사범인 대철씨(26)는 31일 "올림픽 이전에는 젊은 여성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자 가입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문선수가 애인이 있는지' 또는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등의 질문을 집중적으로 하는 여성들이 상당수"라고 밝혔다.

문선수에게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강원 춘천에서 올라왔다는 양모씨(22.여)는 "뛰어난 외모의 문선수가 결승전에서 보여준 뒤돌려 후려차기는 평생 잊지못할 것"이라면서 "경기 후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달하는 세련된 매너와 기도하는 그의 모습 등도 내가 찾던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 외에도 '우리 아이도 문선수처럼 멋있게 키우고 싶다'는 학부모들이나 '사위 삼고 싶다'는 중년 주부들도 도장을 찾고 있다는 전언이다.

동생 대철씨는 "형이 대표선수가 된 후 체육관 홍보를 했을 때에는 문의전화가 별로 없었는데 금메달 수상 이후로 상담이 폭주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금메달 효과에 대해 놀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2004-09-21|35면 |05판 |스포츠 |기획,연재 |1213자

 

“뭔가 이상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곳에서 찾고 불러주셔서 기쁘고 행복합니다.”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지 약 3주 만인 16일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태권도 남자 80㎏이상급 금메달리스트 문대성(28·삼성 에스원)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아직도 휴대전화는 매일 300~400번 이상 울리고 우편물함은 팬이 보내준 40~50통의 편지와 각종 영양제·비타민제로 넘쳐난다고 한다. 전국의 태권도장도 그 덕분에 새 원생이 몰리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문대성에게 ‘깜짝 영웅’이 된 사람의 거만함을 찾을 수 없다. 태권도로 닦은 겸손과 절제가 그를 반듯하게 세우고 있는 듯했다. 올림픽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든 깊숙이 허리 숙여 깍듯하게 인사하고, ‘~습니다’로 끝나는 단호하고 진지한 말투로 사람을 대한다. 그는 ‘4년 전 올림픽 대표에서 탈락한 과거와 이번 올림픽 연습파트너들의 가려진 아픔을 알기에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너무 바쁜 탓에 지인들에게 ‘섭섭하다’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그에게서는 요즘 좀체 맡기 힘든 묵직한 ‘남자의 향기’가 뿜어나온다.

문대성은 태권도 규칙 개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그는 “태권도가 격투기 식으로 박진감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매트 크기를 줄이고 권투처럼 링을 만들어 대결을 피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공격에는 가산점을 줘야 안일한 ‘안전’ 위주 플레이가 없어집니다. 발목, 무릎 등의 보호장구도 더 늘려 선수들이 부상걱정 없이 과감한 동작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고요.”
인터뷰 말미에 문대성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국제무대에 약한 한국 체육계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이다. 그러나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할 만큼 이 꿈은 아직 막연하다.

지난 4년여 아테네 금메달에 모든 걸 걸고 달려온 그는 이미 이룬 목표 근처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듯했다. 문대성은 “유도의 (이)원희나 탁구 (유)승민이와 달리 나이가 있어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지 많이 고민된다”고 말했다. 오른발 돌려차기처럼 미래도 통쾌하게 열어 젖혔으면 좋으련만 역시 그에게도 앞날은 만만찮다.

“금메달을 땄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제 길을 열 겁니다.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경향신문]|2004-12-09|27면 |45판 |스포츠 |인터뷰 |1875자

 

"화려할 때 물러날 생각이었습니다."아테네올림픽에서 통쾌한 발차기 한방으로 금메달을 안긴 태권전사 문대성(28.삼성에스원.사진). 8일 그가 도복을 벗는다는 소식에 전화를 걸었다. "이제 후배들도 있잖아요…. 중량급으로 만 스물여덟이면 은퇴할 시기가 지난 거나 다름없어요." 목소리는 밝았지만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왔다.

인천 구월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87년 첫 공식경기에 나선 이후 지난 여름 아테네올림픽 결승전까지 17년 동안 정든 매트를 떠난다는 생각에 못내 아쉬웠을 법도 하다. 하지만 문대성은 "오래전부터 이달말쯤 현역에서 물러날 생각을 해왔다"며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고민도 많이 했지만 영예의 그랜드슬램(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세계선수권.올림픽 우승)을 달성했으니 이젠 내려와야할 때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테네올림픽 제패 이후 문대성은 다른 어떤 메달리스트보다도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연예인 뺨치는 수려한 용모에 훤칠한 키(1m90), 거기에 매트를 호령하는 카리스마까지 '스타'로서 자질을 충분히 갖춘 그에게 언론과 미디어들의 손길이 잇따랐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그래서 아예 휴대전화를 매형에게 맡기고 다녔다. 하지만 그를 격려하는 문자메시지는 끊이질 않았다. '밥 잘 챙겨먹으라' '힘내라' '결승전을 보고 문대성 선수의 팬이 됐다' 등등.

매형과 함께 운영하는 경기 시흥의 '문대성 태권스쿨'에도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통렬한 발차기 한 방으로 태권도에 매료된 일반인, 학생, 학부모들이 문대성의 지도를 받고 싶다며 전국 각지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생각보다 수련생이 많이 늘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도장에 등록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레 짐작 때문에 아예 포기했기 때문. 아테네로 떠나기 전 100여명이었던 수련생이 지금은 140여명에 이른다. 생각보다 적게 늘어난 것이다.

어떤 팬들은 등록할 것처럼 왔다가 그에게 사인받고 사진만 찍고 훌쩍 가버리기도 했다.

"기자님, 잘 좀 써주세요. 수련생 좀 많이 오게. 자리 많이 비었다고…." 쑥스러움과 애교가 섞인 문대성의 부탁이다.

문대성은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선수권대회 파견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이 열리는 오는 13일 서울 국기원에서 팬들에게 은퇴인사를 할 작정이다. 이어 오는 20일에는 그리스로 떠난다. 올림픽 80㎏이상급 결승에서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그리스)를 매트에 눕힌 뒤 패자에게 따뜻한 포옹을 한 장면으로 그리스 기자협회가 주는 2004아테네올림픽 페어플레이상을 받으러 가는 것이다.

"이번에 그리스에 가면 니콜라이디스를 만날 계획입니다. 사실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죠. 그를 만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기량이 최고이기 때문에 넌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꼭 금메달을 딸 것으로 믿는다'는 위로의 말을 전할 생각입니다."
문대성은 이번에 매트와 아쉬운 작별을 고하지만 그가 하얀 도복과 영영 이별하는 것은 아니다. 소속팀인 삼성에스원 플레잉코치로 이미 내정돼 지도자로서 새출발을 시작한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선수들을 이끌어가려고 해요. 무서운 지도자보다는 선수들의 맏형, 큰 오빠처럼 대하고 싶어요."
지금 운영하고 있는 태권스쿨에서 1주일에 한 번 '특별강좌'를 마련해 후진들을 양성할 복안도 마련해 놓았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꼭 한 번 도장에 들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제도적 장치'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품새, 겨루기 등 기술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자세를 강조할 생각입니다. 사실 일부 태권도장이 상업적인 측면으로 흐른 감이 있잖아요. 지금까지 걸어온 선수생활 얘기, 태권인으로서 갖춰야할 덕목과 비전 등을 많이 얘기해줄 겁니다. 앞으로 제2, 제3의 문대성이 나와야되지 않겠어요."

 

 

[동아일보]|2005-01-06|26면 |40판 |오피니언·인물 |591자

 

2004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씨(29·사진)가 돈보다 명예를 택했다.

동아대는 5일 문 씨가 모교의 태권도 감독직 제의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올림픽 결승전에서 전광석화 같은 뒤 후려치기로 태권도 종주국의 명예를 드높인 그는 준수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얼짱’ 스타. 그동안 2억 엔(약 20억 원) 이상을 제시한 일본의 이종격투기 K-1을 비롯해 연예계에 이르기까지 각계로부터 스카우트 유혹을 받아왔다.

문 씨는 “진로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태권도에서 내가 받은 이상으로 후배들에게 되돌려주겠다”고 말했다. 1999년 동아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용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국민대에서 체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한편 문 씨의 스승이자 현 동아대 태권도 감독인 김우규 교수(체육학부)는 “올림픽 영웅이 후배들을 지도함으로써 부산 지역의 태권도 발전과 인기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문 씨의 영입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는 물론 외국선수들도 문 씨의 지도를 받고자 하는 문의가 벌써부터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2007-12-13|23면 |45판 |스포츠 |뉴스 |422자

 

2004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31.동아대 교수)이 국제올림픽 위원회 선수위원 후보에 올랐다. 문대성은 12일 IOC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31명의 선수위원 후보명단에 남자 육상 110m 허들 세계기록 보유자인 '황색 탄환' 류시앙(중국)과 수영의 그랜트 해켓(호주), 남자 해머던지기의 무로후시 고지(일본), 마라톤 전 세계기록 보유자 폴 터갓(케냐) 등과 함께 올랐다. 총 19명으로 구성되는 선수 분과위원 중 15명은 8년 임기의 IOC 위원(총 115명) 자격까지 얻는다. 문대성이 도전하는 선출직 위원은 12명이며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직접투표를 통해 당락이 결정된다. 한국선수로는 2000년 이은경(양궁), 2002년 전이경(쇼트트랙), 2006년 강광배(루지 봅슬레이)가 선수위원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경향신문]|2008-08-22|KB면 |45판 |1338자

 

기대는 했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득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득표 결과를 받아든 29명의 후보자들은 물론, 그에게 표를 던진 세계 각국의 선수들도 깜짝 놀랐다. 지난 수개월간 열성적으로 뛰어다닌 문대성(32·동아대교수)의 땀과 열정이 전세계 올림피안을 감동시킨 것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황금 발차기의 주인공 문대성이 마침내 뜻을 이뤘다.

21일 발표 현장인 베이징올림픽 선수촌 국제구역으로 이동하며 "올림픽에 선수로 출전했을 때보다 더 떨리고 긴장된다"던 문대성은 "앞으로 8년 동안 각국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9월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선수위원 후보로 추천받은 문대성은 지난 10개월간 세계 각국의 각종 대회 및 행사 등에 꾸준히 모습을 보이며 선거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6월 과테말라 IOC 총회에서 스포츠 외교력 부재를 절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문대성 선수위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비공식적으로 지원한 게 큰 힘이 됐다.

문대성은 투표가 시작된 올림픽 기간 동안 헌신적인 노력을 다했다.

요트 경기가 열리는 칭다오에서 3일 동안 활동하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베이징으로 옮겨와서는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선수촌을 누비며 이름 알리기에 주력했다.

땡볕 아래 태권도복을 입고, 한결같은 미소를 던지는 문대성에게 많은 선수들이 호감을 가졌고, 일부 국가 선수들은 회의를 통해 단체로 표를 몰아주기로 약속하는 등 성과를 얻었다.

문대성 스스로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흰색 도복을 입은 제가 올림픽 선수촌의 명물이 됐다"고 했을 만큼 그의 열성은 대단했다.

문대성의 득표 활동은 다른 후보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은퇴선수로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는 문대성이 매일 각국 선수단에 인지도를 높여가자 다른 후보들은 "영어권 선수가 아닌데 선수위원으로 뽑아주면 안된다"는 흑색선전을 하기도 했다.

IOC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등의 행동은 IOC가 엄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대성은 그후 20일까지 물밑에서 막바지 득표활동을 했고, 마침내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문대성의 최다득표(3220표)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선수위원 투표에서는 대부분 인기 종목이나 유럽계 유명 스타들이 당선돼 선수위원이 됐다. IOC 선수위원 투표에서도 동양계 선수들에 대한 편견이 뚜렷히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대성이 베이징에서 보여준 정성은 전세계 올림픽 패밀리의 가슴을 흔들었다.

태권도라는 비인기 종목의 한계를 넘었고, 인종의 한계도 넘었다. 이번 올림픽이 아시아권인 중국에서 열린 점도 큰 도움이 됐다.

 

 

 

 

한겨레]|2012-03-27|08면 |07판 |종합 |뉴스 |783자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냈으며, 이번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문대성 후보(사진·부산 사하갑)가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26일 제기됐다.

 민주통합당은 이날 자료를 내어, 문 후보가 지난 2007년 8월 국민대 대학원을 통해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이 같은 해 2월 명지대 대학원에서 김백수씨가 제출한 논문과 상당 부분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두 논문은 모두 태권도 선수에 있어 피엔에프(PNF·스트레칭의 일종) 운동의 효과를 다루고 있다.

 문 후보는 서론에서 “태권도 종주국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로 시작되는 5줄짜리 문장을 쓰고 있다. 이는 김씨 논문의 서론에 있는 문장과 일부 서술어 형태만 다를 뿐, 대부분이 토씨까지 일치한다. 서론의 첫 단락 ‘연구의 필요성’에서는 이런 ‘표절’ 문장이 절반을 넘는다. 결론에서도 문 후보의 논문은 실험 결과 등 내용 면에서 김씨의 논문과 대동소이하다.
특히 연구자의 제언을 밝히는 부분에선 몇몇 서술어를 제외하면 사용한 단어와 문장의 형태가 일치한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부정한 방법으로 거짓의 상아탑을 쌓아올린 사람이 국민을 대표해서는 안 된다”며 “문대성 후보는 표절 의혹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 후보 쪽은 표절 의혹을 부인하며, “김씨 논문과 연구의 방법부터 결과, 결론까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은 명백한 정치공작”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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