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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크

개그맨 신동엽 그의 명과 암

by 신사임당 2011. 4. 14.

 한때 연예계의 대표적인 권력으로 불리던 신동엽씨가 각종 소송과 구설에 휘말리면서 위기에 처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십수년 공고하게 쌓아왔던 신동엽의 아성은 쉬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요. 맡는 프로그램마다 시청률을 보장받는 인기프로그램 제조기였고, 그가 퍼뜨린 유행어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방송계에서 그는 실세로 자리잡았고 연예계 매니지먼트사업을 통해 내로라하는 예능인을 휘하에 거느리면서 명실상부한 연예계 권력으로 군림했습니다.

데뷔당시... 가운데가 신동엽이고 뒤가 가수 김원준. 앞은 김건모인가요? 아리까리...

90년대 중반 개그우먼 이영자와 방송가를 주름잡았지요



 물론 사람 사는 곳이라면 동서고금,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부침이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대중의 인기와 관심, 평판을 먹고 사는 연예계는 이같은 부침과 명암은 더 심하겠죠. 슈퍼주니어 김희철 말마따나 “한방에 훅 갈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런점에서 이경규씨나 조용필씨같은 분은 정말 대단한분들 같습니다.

 어쨌든 안타까운 생각에 그동안 신동엽씨의 모습을 모아봤습니다. 1991년 sbs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초창기 몇년동안 신세대 대표 개그맨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90년대 초반 x세대, 신세대 이런 말들이 유행하면서 당시 쏟아져나왔던 연예인들 이름 앞에는 으레 ‘신세대’라는 말이 붙어 있었죠. 그때 신동엽씨는 ‘안녕하시렵니까’ ‘하늘땅 별땅 각개별땅’ 등의 말을 유행시키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횡설수설 캐럴집도 그의 작품이었구요. 그는 또 홍록기씨와 콤비를 이루며 90년대 초중반 코미디계의 남성 2인조 전성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신동엽-홍록기, 서경석-이윤석, 김용만-김국진 ‘커플’이 대표적입니다.
 이후 90년대 말 <일요일 일요일밤에> 신장개업코너까지 그는 90년대를 평정한 개그맨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MC로 활약했습니다. 남희석, 이휘재 등 경쟁자들이 많았지만 신동엽의 위치는 독보적이었습니다.
 신동엽에게 첫번째 위기가 닥친 것은 99년입니다. 대마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일밤, 기분좋은 밤 등 잘나가는 예능프로그램 고정mc가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 방송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같은 해 신동엽씨는 보석 석방됐지만 그는 한동안 방송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듬해 가을 신동엽씨는 11개월만에 컴백에 성공했습니다. 너무 빠른 복귀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방송이 자리를 잡으면서 그는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밤 러브하우스, tv 동물농장, 두 남자쇼 등 잘나가는 프로그램을 꿰차고 있던 그는 특히, 서민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러브하우스를 통해 감동과 인간미까지 보여주면서 팔방미인 엔터테이너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당시 진행됐던 각종 설문조사에서 신동엽씨는 가장 뛰어난 개그맨 출신 진행자를 묻는 질문에 항상 1위로 꼽혔습니다. 200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신동엽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이었습니다. 큰 폭의 차이로 뒤를 이은 사람들은 유재석, 박수홍, 이휘재, 남희석, 이경규 등입니다.


헤이헤이헤이에서 김원희와 함께

여인천하를 패러디했던 개그프로. 아마도 경빈박씨 흉내를 냈던 듯. 당시 이 역할은 도지원씨가 맡아 열연했습니다. 뭬야? 라는 유행어를 대 히트시키면서..

쟁반노래방에서..



 이후에도 헤이헤이헤이, 맨투맨, 해피투게더, 러브스토리, 하자하자 등 주요 예능 프로그램 mc는 모두 그의 차지였습니다. 연말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도 늘상 주인공이었지요.

 그는 공익적인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정통 코미디 연기까지 다양한 개그장르를 소화했습니다. 이효리와 함께 진행했던 해피투게더의 쟁반노래방처럼 가족적인 프로그램의 mc 뿐 아니라 성인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도의 개그 토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토크쇼 진행도 독보적이었지요. 지금은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씨가 있지만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출연연예인에게 숨기고 싶은, 뼈아픈 악성루머를 대놓고 물어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불쾌감을 주지않고 능청맞은 웃음을 이끌어내는  토크쇼 진행자는 신동엽씨가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통일료리관이라는 코너



 2000년대 중반부터 사업수완도 보여줬습니다. 외주제작사, 소극장 등을 인수해 경영했던 그는 방송 3사 예능 Mc와 개그맨들을 거느린 DY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매니지먼트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신동엽시대는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예계의 트렌드 변화 등 외부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방송에 집중하지 못했던 원인이 컸습니다. 다양한 사업을 벌여놓고 여기에 치중하느라 방송활동에 올인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신동엽씨 스스로도 그렇다는 반성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가 맡았던 프로그램은 최근 몇년간 조기 종영되기도 했고 시청률은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이 때문에 방송계 안팎에서는 이제 신동엽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는 추측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그가 야심차게 시작했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잇따른 경영권 분쟁, 회계비리 등으로 진흙탕 싸움에 휘말렸고, 채무를 둘러싼 억대 소송이 이어지면서 그 역시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와 명예, 인간관계, 돈 등 모든 면에서 큰 상처를 받는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기발랄하고 생기넘치던 코미디 캐릭터도 찾아볼 수 없고 방송 시청률 역시 참패 수준을 면치 못하는 그의 추락이 언제쯤 멈출까요. 안타깝고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