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누구나 인간관계 속에 살다 보면 저 인간 도대체 왜 저럴까 싶을 때가 있다. 왜 그러겠나. 사람이니까 그런거지. 나도 내가 어떤지 종잡을 수 없는데 나도 아닌, 남은 오죽하겠냐 말이다. 1 더하기 2가 3이 되고, 물을 100도에서 가열하면 끓는다는 자연법칙, 이성의 법칙, 과학의 법칙이 통용되는 것이 인간 세상이라면 풀지 못할 인간관계의 문제가 뭐가 있겠냔 말이다. 그저 다들 자신의 기준에서 이 정도면 상식이려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루하루 사는게 아닐까. 그저그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맞춰가고, 그렇게 톱니가 맞물려가고 평소에는 큰 문제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그 상식이나 기준의 정도가 자신이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경우가 있다. 그러면 거기서 엇박자가 나고 삐그덕거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조금 다른 사람이 조직에서 소수라면 그야말로 또라이가 되는 것이고. 

 

아무튼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 다수가 공감하는 말이 있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거라고 말이다. (종종 누군가는 독하게 말한다. 그 인간관계로 고생하는 값이 네 월급에 다 포함돼 있다!!고) 그러니 서점에는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처세법, 혹은 내 맘을 편하게 먹는 방법 등 온갖 종류의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나와 있고 끊임없이 팔리고 지금도 계속 나온다. 사람마다 그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거다. 

 

내가 개인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답답함이나 괜한 환멸감이 찾아올 때 봤던 책들이 몇권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다. 지금도 줄쳐놓은 부분을 종종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때가 있다. 인생의 잠언이나 명언록을 모은 것이냐고? 그렇지 않다. 그저 욕지기가 날 만큼 찌질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의 심리상태다. 이 책의 주인공이 주절거리며 늘어놓는 말은 언뜻 보면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 싶지만 그가 묘사하는 심리상태가 종종 나에게서 발견된다.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빈도가 어느 정도냐의 차이지 누구나 가질 법한 마음이다. 도대체 이해 안가는 누군가의 행동에 의문과 짜증이 생길 때 막상 이 책의 주인공을 떠올리면 “저 인간은 왜 저럴까”에서 “그래, 저런 심리 상태라면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거다. 물론 그렇다고 기분이 나아지거나 좋아지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정리되고 접어진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된다. 


굳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나 그의 삶을 장황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고 그럴 주제도 못된다. 그는 삶이 참 버라이어티했다. 세속적으로 성공트랙을 탄 사람은 전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소설을 보면 인간의 속내와 본성, 즉 인간의 깊은 곳을 꿰뚫어 보고 잘 그려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 2>에서 마지막 부분에 나온 대사가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반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고 욕망과 비이성적 동기에 의해서도 움직이는,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선과 악의 양면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제도나 교육, 합리적인 외부장치에 의해 결코 획일화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불안정하고 모순투성이인 인간의 심연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땡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지하의 방에 사는 40대 남자다. 별 내세울 것도, 가진 것도 없던 그가 남들에게서, 외부의 시선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지적 자산이다. 남들한테 무시받는 게 싫었던 그는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방어막을 만든다.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해서 똑똑하다. 그런데 그것이 병이다. 자의식이 과잉인 상태다. 으레 그렇듯 타인의 시선은 그의 자의식의 활력이자 화근이다.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부족함을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면 자존감이 되는 건데 상당수의 사람은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쓰며 컴플렉스에 매여 살게 마련이다.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언가 결핍인 상태라기 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피해의식 아니던가. 누가 그걸 모르냐고. 알면서도 잘 안되니까 매일 번민하고 고뇌하는 것이지. ‘지하생활자’ 그의 모습에서 누구나 별 다를 것 없는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

 무기력하고 자학적인 독백으로 시작해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런 감정이 증폭돼 그가 증오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현재 마흔살인데 관청에 관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그것도 그만두고 이런 생활, 즉 지하에 스스로를 고립하고 세상을 증오하는 상태를  몇년째 지속해 오고 있다. 아마 지금 이 시대도 우리 사회, 이웃엔 이런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누군가는 절망에 빠진 외토리로 사는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겠지만 사회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은둔자들을 줄이지는 못할 거다.


아무튼 아래는 마음속에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줬던 구절들이다. 전후맥락이 궁금하시면 책을 보시길. 길지 않다.  (이동현 옮김/ 문예출판사)



 “나는 이날 이때까지 얼마나 많이 화를 냈는지 모른다. 그것도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공연히 화를 내는 것이다. 나 자신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일부러 나 자신의 약을 올려주다 보면 나중에는 정말로 화가 나서 못견디게 된다. 나는 한평생 이런 종류의 장난을 치고 싶은 못된 버릇에 빠져버려서 마침내는 스스로 내 의지를 조정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사람이 복수를 하는 것은 그 안에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근본적 이유, 다시 말해서 정의를 발견했으므로 모든 점에서 완전히 안심하고 그것이 떳떳하고 옳은 행위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침착하게 복수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 같은 인간은 그 행위 속에서 정의라든가 선행같은 건 조금도 발견하지 못하므로 만약에 내가 복수를 한다면 그것은 오직 악의에 의한 것이라고밖엔 설명할 수가 없다.”


 “도대체 문명이 인간 내부의 어떤 성질을 온순하게 만든다는 건가. 문명이란 오직 감각의 다면성을 발달시킬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 다면성을 더욱 발달시켜 나가면 인간은 아마 유혈 속에서 쾌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당신들은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세련된 살육자는 거의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최고의 문명인들로, 거기에 비하면 아틸라 대왕이나 스텐카라진 같은 건 발 밑에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 /옛날엔 유혈 속에서도 정의를 발견하고 양심의 가책 없이 마땅히 제재를 가해야 할 인간을 살육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유혈을 더러운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옛날보다 훨씬 대규모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쁜가. 그건 당신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는 여자 노예들의 가슴을 금바늘로 찔로 노예들이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리는 걸 보고 쾌감을 느꼈다 한다. 여기에 대해 당신들은 그런 건 상대적으로 보아 야만 시대의 일이 아니냐, 그리고 현대 역시 상대적으론 야만시대이므로 지금도 여전히 사람몸에 바늘을 꽂는 따위 짓을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한다. 인간이란 것을 가장 적절히 정의한다면 두 발로 걸어다니는 배은망덕한 동물이다 라고. 하지만 이것으로 인간의 결점을 다 말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가장 큰 결점은 영원불변의 부덕인 것이다. ”


 “하이네가 단언한 바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 관해선 반드시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므로 정확한 자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다른다면 예컨대 루소만 하더라도 자기 참회록 속에서 줄곧 자신을 헐뜯고 있는데 그것은 허영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현대의 어엿한 인간은 모두 겁쟁이이고 모두 노예인 것이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이 현대인의 정상적인 상태니까.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현대인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렇게 되도록 꾸며져 있는 것이다. 비단 현대뿐만 아니라 대개 어느 시대에도 어엿한 인간은 겁쟁이이고 노예인게 당연하다. 그것이 지상의 모든 인간의 자연율이다.”


 “물론 가지 말아야지. 침이라도 퉤 뱉어주면 그만이야. 약속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내일 즉시 시내 우편으로 시모노프에게 연락을 취해야겠다. 그러나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나 자신 내일 틀림없이 간다는 것을, 오기로라도 꼭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 간다는 것이 미련하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느껴진면 느껴질수록 기를 쓰고 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