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힙합은 현재 세계 대중음악계의 주류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 대표하는 당대의 뮤지션으로 꼽을 만한 이들은 여럿 있다. 7월 30일 서울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도 그 중 하나다. 국내외의 각종 미디어에는 살아있는 전설이니, 왕 혹은 제왕 따위의 상찬이 넘쳐난다.


힙합을 즐겨 듣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야 두말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힙합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그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 놓는 것이 좋겠다. 뮤지션으로서의 성공 가늠자가 되는 성과(이를테면 세계 평단의 극찬, 앨범 판매량, 그래미상 수상 실적 등)가 뚜렷해서가 아니다. 그는 대중음악의 본질과 핵심 정신을 삶과 예술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힙합 뮤지션 최초 퓰리처상 수상 


그는 올해 4월 퓰리처상을 받았다. 언론과 예술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수여하는 이 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상 중 하나다. 켄드릭 라마는 힙합 뮤지션으로서는 최초 수상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는데, 이는 세계 음악계에 충격을 주면서 큰 화제가 됐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그가 지난해 발표했던 앨범 <DAMN>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강력하고 진정성 있는 언어로 포착해 리드미컬한 활력으로 표현한 명곡 모음”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이라는 현실을 표현한 랩 가사의 저널리즘적 본질에 주목한 것이다.


힙합 뮤지션으로 증명해 온 여러 역량 중 그를 다른 뮤지션과 차별화한 것은 랩 가사다. 그의 가사가 표현하는 것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의식에 집중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삶에서 겪어온 모순과 고통, 그것이 대물림되어온 역사,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참담한 현실을 짚어낸다. 흑인음악이 주로 사용하는 소재와 방식들을 활용하지만 그는 단순히 불만을 표출하거나 일탈적인 상황을 나열하는 대신 현실을 고민하며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런 그의 표현방식은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가디언>은 올 4월 그의 퓰리처상 수상 소식을 보도하면서 “기교적인 면과 음악적 깊이와 폭, 여기에 위트와 정치적·도덕적 메시지, 공감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그는 전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MC(mic checker 혹은 mic controller의 줄임말로 래퍼를 지칭함)”라고 평가했다. 


퓰리처상 수상 때의 켄드릭 라마 /위키피디아 제공 켄드릭 라마의 4집 앨범



그의 퓰리처상 수상을 두고 주요 외신들은 저널리즘으로서의 힙합의 역할에 주목했다. 자신의 삶과 동시대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이 대중음악의 존재 이유라면, 서사성이 강한 랩은 이를 구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수단이다. DJ 소울스케이프는 “켄드릭 라마의 랩은 강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정치적 문제제기이자 통찰력 높은 철학과 문학성의 표현”이라면서 “그의 수상은 그가 이 시대 최고의 래퍼이자 뮤지션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것뿐 아니라 저널리즘으로서의 힙합의 가치도 인정받았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1917년 제정된 퓰리처상은 1943년 음악으로 시상부문을 확대했다.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한 해도 있을 만큼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데, 줄곧 이 상을 받았던 장르는 클래식이었다. 1997년 처음으로 윈턴 마샬리스의 재즈 <Blood on the Field>가 수상작이 됐을 당시 이변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이후에도 재즈가 상을 받았던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니 힙합 뮤지션이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음악계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20세기 재즈의 위상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듀크 엘링턴이 1965년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는 했으나 그해 음악부문은 “수상작 없음”으로 최종 결론났다. 당시 엘링턴이 “운명은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유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나 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해 그의 나이는 67세였다. 



성찰과 저항의 아이콘 


2013년 국내 대중음악계를 달궜던 사건으로 ‘컨트롤 비트 대란’이 있다. 스윙스를 시작으로 이센스, 사이먼디, 다이나믹 듀오 등 힙합계의 대표 뮤지션들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디스(diss·상대를 공격하거나 비난한다는 의미를 가진 힙합 용어)’전을 일컫는다. 당시 “컨트롤 비트 다운받았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는 누군가에게 선전포고를 한다는 의미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용됐다. 켄드릭 라마는 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일단 그전에 몇몇 용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비트’는 말 그대로 박자다. 멜로디가 있는 노래에 반주(인스트루멘탈)가 있다면, 멜로디가 없는 힙합에는 비트가 있다고 보면 된다. 즉 이 비트 위에 랩을 얹어 표현하는 것이다. ‘컨트롤’은 2013년 미국의 래퍼 빅션이 발표했던 곡이다. 여기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켄드릭 라마는 자신이 랩을 하는 부분에서 많은 유명 래퍼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자극했다. 단순히 특정인을 공격하는 차원이 아니라 힙합신 전체의 각성을 촉구하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일대 사건이었다. (엉뚱하게도 이 사건은 국내로 건너와 ‘컨트롤’의 비트에 특정인을 향한 인신공격성 랩을 얹은 디스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대안문화 웹진 <평:상> 칼럼니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이관택 목사는 “1990년대의 중흥기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선 힙합은 주변문화에서 주류로 부상하면서 성공과 자본을 찬미하는 신자유주의의 찬송가가 되었다”면서 “켄드릭 라마의 지적은 길을 잃은 힙합신에 대한 일갈이자 힙합 정신의 회복을 촉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켄드릭 라마의 비판은 힙합신에 건설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덧붙였다. 


2011년 데뷔한 뒤 지금까지 성찰적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밝혀온 그는 현실을 직시하며 질문을 던지고 변화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대중들과 소통한다. 이 같은 방식은 인종문제가 여전하고 불평등과 모순이 심화되는 미국 사회의 퇴행적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그를 자연스럽게 저항의 아이콘으로 세워 놓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쪽의 작은 도시 컴턴(Compton)은 지역사회에서 ‘게토’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인식되던 곳이다. 갱들의 본산이자 범죄의 온상이라는 악명이 높은,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흑인들이 모여 가난과 폭력, 만연한 차별의 고통에 시달리며 살던 지역이었다. 켄드릭 라마 같은 흑인 청소년들에게 유일한 구원이자 탈출구는 힙합이었다. 힙합의 전설이 된 닥터 드레 역시 이곳 출신으로, 컴턴은 갱스터랩의 성지였다. 


일찌감치 닥터 드레에게 발탁됐던 그에게 고향 컴턴의 환경, 일상으로 마주하는 부조리와 고통은 음악적 자양분이 됐다. 음악을 통해 그는 자각과 고뇌를 토로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2012년의 ‘트레이본 마틴’ 사건, 2014년의 ‘마이클 브라운’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무고한 흑인이 백인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던 이 사건들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본격화됐다. 


2015년 그가 발표한 앨범 <To Pimp A Butterfly>는 이런 움직임의 정수를 보여주고 지향점을 제시한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나 자신을 사랑해’(I)라고 경쾌하게 외치며 사람들을 일깨웠고,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사랑으로 넘어서자’(Complexion)고 제안한다. 그는 또 악순환이 반복되는 삶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흑인 사회 내부의 분열과 싸움을 멈출 것을, 방관자의 입장에 머무르지 말 것을 촉구한다(The Blacker The Berry). 희망과 변화를 이야기한 그의 곡 ‘Alright’을 두고 폭스뉴스가 공권력을 조롱하고 폭력성을 일깨우는 내용이라고 비난하자 그는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는데, 이 곡의 후렴구인 ‘We gon’be alright(괜찮을 거야)’는 이후 흑인들의 시위에서 구호로도 많이 사용됐다. 


지난 4월 <가디언>은 “그는 성공을 거뒀음에도 자신이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 위선과 약점을 끊임없이 추궁하고 스스로와 씨름한다”면서 “실생활도 놀라울 만큼 깨끗할 뿐 아니라 성찰적이고 현명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뮤지션”이라고 호평했다. 


2016년 백악관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오바마, 자넬 모네와 함께 한 켄드릭 라마



상업적 성과와 영향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예술성과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확보한 결과물이 상업적인 성공까지 이뤄내기란 쉽지 않은데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해내고 있다”면서 “켄드릭 라마는 힙합이 가진 원형질과 정체성을 구현하고 있는 상징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2011년 데뷔한 뒤 발표한 4장의 정규앨범은 모두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5개의 상을 휩쓴 그는 지금까지 모두 12개의 그래미상을 받았다. 2016년 시상식에서는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는데, 이는 마이클 잭슨 이후 최다 기록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DAMN>은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힙합 앨범이며 이 앨범에 수록된 ‘Humble’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DJ 소울스케이프는 “켄드릭 라마는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제시한다”면서 “누구나 답습하기 쉬운 기존 시장의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 영역의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협력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한 그는 국내 힙합 뮤지션에게도 영감을 주는 존재다. 그룹 블락비의 리더이자 힙합 뮤지션 지코는 2016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내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통찰과 고민을 담은 켄드릭 라마의 가사를 볼 때마다 큰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쇼미더머니 5> 우승자인 래퍼 비와이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켄드릭 라마의 음악이 뚜렷한 영감을 준다”고 밝혔다. 


그의 첫 내한 공연을 기다리는 국내 힙합 뮤지션들의 기대감도 뜨겁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아티스트. 그의 공연을 보러 우리는 갑니다!”(다이나믹 듀오 최자)


“랩의 예술적 기술적 수준을 몇 차원 끌어올려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준 마스터. 발표한 앨범들 또한 마스터 피스.”(다이나믹 듀오 개코) 



“뮤지션들에게 용기를 주고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존재.”(자이언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