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올림픽 개막식을 봤다면 대부분 저마다에겐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을거다. 김연아 선수의 최종 점화나 통가 기수, 인면조 등은 특히 많은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런 장면도 기억나지만 내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나는 것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선수단의 입장 장면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1984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곳이다. 엄밀히 말하면 유고연방 해체 전이니 유고슬라비아의 도시 사라예보에서 열렸다.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개막식/사진 출처 /www.olympic.org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사진 출처 /www.olympic.org

흔히 동계올림픽은 선진국들만의 리그라고 한다. 부자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데 메달획득은 물론이고 참가하는 나라 역시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 하계올림픽에 비하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 국가의 참여율이 월등히 떨어진다. 고가의 장비와 설비가 필요한 경기가 대부분이다보니 가난한 나라에서 동계스포츠를 잘하는 선수가 나오기는 힘든 구조다.

 

지금껏 개최국들도 유럽과 북미였고 아시아에선 일본이 유일했다. 그런데 1984년, 그것도 냉전이 한창이던 그 시기에 사회주의국가인 유고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은 특히나 주목할만한 이벤트였다. 당시 반공주의 교육에 물들어 있던 초등학생이던 내게도 비상한 관심의 대상으로 다가왔었다. 이 올림픽이 배출했던 스타인,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우승했던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 그리고 아이스댄싱에서 우승했던 영국의 제인 토빌, 크리스토퍼 딘의 환상적인 경기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도 있었으나 어쨌든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한창 TV에서 방영하던 다큐물을 통해 내 머릿속엔 대략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정리됐다. 유고슬라비아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잘 사는 이유는 소련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책과 체제를 확립했고 친서방·중립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 자연히 동유럽 국가에서 가장 경제수준이 높고 서구문물을 활발히 흡수할 수 있었다는 것. 유고슬라비아의 기틀을 다진 대통령 티토의 독자적인 마르크스주의 실천 노선이 이를 가능하게 했고 이를 티토이즘이라고 한다는 것. 유고의 주요 도시를 찾았던 당시 리포트에는 유고 사람들은 겨울이면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가고 미국의 팝음악을 들으며 소니전자제품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1984년 한국의 초등학생 입장에서 유고는 미국이나 유럽 못지 않은 선망의 나라였다.

 

동계종목이 국내에서 각광받았던 것도 아니고 우리 선수들이 특별히 활약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난 뒤 자연히 유고에 대한 기억도 관심도 희미해져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다시 나의 관심을 환기시켰던 것은 1992년에 전해졌던 뉴스였다. 이름하여 보스니아 내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구 소련과 동구권의 해체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터라 신문 국제면과 외신의 유고 뉴스를 열심히 봤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국내 일간지는 물론이고 학교 도서관과 국회 도서관까지 찾아가 외국 잡지를 뒤적이며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유고라는 익숙한 이름 대신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 민족별 독립국가의 생소한 이름이 지면에 등장했고 인종청소라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단어 역시 그때 처음 들어봤던 것 같다.

 

파괴된 사라예보 /출처 위키피디아

 

그때부터 한참 동안 나를 괴롭혔던 화두는 문명과 야만성이었다. 스무살이 갓 넘었던 나는 당시만해도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중남미의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일로 생각했었다. 적어도 문명사회라면(당시 내게 유고는 제3세계와는 다른 유럽의 문명국이었다, 사실 지금도 이 문명국이라는게 뭔지 모르겠다만), 게다가 20세기 말 유럽에서, 그것도 상당한 경제수준을 가진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머릿속을 돌던 질문이었다.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적 희망에 부풀어있던 시기였고, 이미 그전부터 오랫동안 개발독재시대의 교육을 받고 자라왔던터라 내겐 선진국이니 문명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것이 내재돼 있었다. 선진국이라는 이름표를 달기만 하면 경제수준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사람들 역시 야만성이 통제되고 세련된 민주 시민이 되리라는 기대감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막연한 환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정 부분을 지배한다. 불과 몇년전 국제행사를 하며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하니 쓰레기를 못버리게 한다거나 선진일류국가 같은 70년대식 캐치프레이즈가 동네방네 나부끼기도 하지 않았나. 아무튼 20세기의 마지막이 10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벌어졌던 보스니아 내전은 내게 큰 충격이 됐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유고에 대한 자료와 기사를 찾아다니다 만났던 책은 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이보 안드리치의 작품 <드리나강의 다리>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던 16세기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의 400여년간의 연대기적 서사다. 드리나강의 다리는 제목이자 이 책의 주인공이다. 보스니아의 작은 도시 비셰그라드를 가로질러 흐르는 드리나강에 놓여 있는 돌로 만들어진 다리. 이 다리가 건설되기 직전부터 지어지는 과정, 그 후 수백년간의 시간 동안 이곳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작은 도시의 다리에 불과하지만 이곳은 유럽의 화약고라는 발칸의 지정학적 상황과 그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수백년간 이곳에서 반복된 것은 평온한 짧은 시절, 그리고 이 평화를 갈가리 찢는 광기의 시간들이었다. 이 책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복잡한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서사를 따라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오는 용어나 지명들도 복잡하고 생소하기 이를데 없다. 세르비아어, 터키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으로 된 단어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앞장을 뒤적거리며 용어를 다시 찾아봐야 했다. 하지만 이보 안드리치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료했다. 책 뒷부분에 나와 있는 그의 메시지는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니던 질문의 답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드리나강의 다리 1900년대 모습/ 위키피디아

 

해당 부분을 소개한다. 가장 최신 버전은 2005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것인데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는 않은 편이다. 내 생각에 이 부분을 가장 매끄럽게 번역한 것은 2002년 국내에 출간됐던 <네 이웃을 사랑하라>(미래의 창)에 소개된 것이니 그것을 인용하겠다. 이 책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 피터 마쓰가 보스니아 전쟁을 취재하고 쓴 보고서다.
 

 "사람들은 박해받는 사람들과 이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의 두 부류로 갈라진다. 인간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으며 법과 인습이라는 장벽이 사라질 때까지는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던 야수가 이제 자유의 몸이 된다. 장벽은 무너지고 신호가 보내진다. 인류 역사에서 자주 나타났듯이 이제 상위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갖고, 정해진 룰에 따라, 특정 부류에 속하거나 특정 종교를 가진 일부 집단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폭력, 약탈, 심지어 살인에 대해서까지도 무언의 허가가 내려지는 것이다. 수세기의 전통 위에 세워진 상업지역은 몇 분 안에 자취도 없이 파괴돼 버린다. 적대감, 시기, 종교적 반감, 야비성, 잔인함 등이 가려진 채로 늘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용기, 동지애, 절도와 질서에 대한 의식도 공존하여 이러한 부정적인 본능들을 통제하고 진정시켜 그런 감정들이 공동 생활의 보편적 이익에 굴복하도록 했던 것이다. 상업 지역을 40년 동안 이끌어오던 사람들은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다 죽은 듯이 사라졌고 그들이 표방했던 관습, 관행, 제도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여기서 말하는 ‘상업지역’을 문학과 지성사 버전에서는 ‘장터’라고 번역했는데 이 용어는 인류가 문명과 이성으로 쌓아올린 사회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안에 있는 야수, 그 야수가 특정 신호를 받아 자유의 몸이 되는 현상을 수없이 보아왔다. 21세기 현재에도 정쟁을 위해 그 야수를 불러내는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층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다. 

 

<드리나강의 다리>를 읽기 전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먼저 읽는 것이 이해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전쟁의 참혹한 상황과 함께 발칸의 복잡한 역사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공간, 그리고 수십여년 전의 전쟁 취재기록임에도 나는 지금도 마음이 갑갑해질 때마다 이 책을 들춰본다. 다른 전쟁기록과는 달리 문명의 구속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일깨워주고,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혐오와 광기의 현실들과 상당히 겹쳐보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사람들에게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동계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됐던 곳이 현재는 공동묘지로 변했다고 한다.

 

“사회가 지금 안정되어 있다고 해서 항상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무슬림 대 기독교인, 유태인 대 비 유태인, 백인 대 흑인, 빈자 대 부자 등, 우리 사회에는 선동가들에 의해 분열될 수 있는 수많은 틈새가 있다. 이것이 바로 보스니아 전쟁을 통해 내가 배운 교훈이며 내가 겪은 변화이다. 저기 어딘가에 야수가 숨어 있으며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이제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