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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스코프

그녀, 토냐 하딩

by 신사임당 2018. 1. 25.

 

 

 

오는 3월 <아이 토냐>(I, Tonya)라는 영화가 개봉된다. 피겨스케이트에 관심있다면 알만한 사건의 주인공인 토냐 하딩의 이야기다.
토냐 하딩은 9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피겨스케이터였다. 1991년 세계 대회에서 미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하면서 스타가 됐으나 이듬해 열렸던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당시 금메달은 미국의 크리스티 야마구치, 은메달은 일본의 이토 미도리, 동메달은 미국의 낸시 캐리건이 차지했다.

 

2년뒤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의 대표 선발전은 토냐 하딩과 낸시 캐리건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대회를 며칠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괴한이 링크에 난입해 낸시 캐리건의 무릎을 내려치는 테러를 가했다. 미국이 발칵 뒤집혀졌고 FBI까지 나서 수사를 벌인다. 조사 결과가 드러났고 그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낸시 캐리건의 라이벌이던 토냐 하딩의 전 남편, 그리고 토냐 하딩의 경호원이 연루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토냐 하딩은 테러의 배후로 지목됐고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부상 때문에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 낸시 캐리건에게는 전국민적 응원과 지지가 이어지면서 미국 빙상연맹은 캐리건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낸시 캐리건은 은메달을 따며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토냐 하딩은 8위에 그쳤을 뿐 아니라 이후 선수자격을 영구 박탈당했다.

그는 한때 프로복서로 재기를 노렸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는 못했고 이후 평범하게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사실 세간의 관심도 없었지만) 최근 이 영화 개봉 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매번 동계올림픽 철만 다가오면 인구에 회자되는 옛날이야기의 안타고니스트쯤으로 등장했다.

 

영화 <아이 토냐>는 ‘세기의 악녀’라는 비난 뒤에 가려진 그의 이야기에 집중한 영화다. 어떻게 해서 그런 상황으로 내몰렸는지에 대한 부분들을 담고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전에 나왔던 기사들 중에는 딸의 재능을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던 엄마의 탐욕에 의해 딸이 희생됐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아마 이런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예전 기사를 찾아봤더니 새삼스러운 것들도 꽤 있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꽤 있다. 

 

먼저 1993년의 기사다.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1년전 메달을 향해 집념을 태우던 당시의 그에겐 이미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불행한 개인사로 짓눌려 있던 상황이었다.

1993년 11월10일 경향신문 기사

 

  기사=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의 미국 대표였던 토냐 하딩(22)이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으나 끊이지 않는 불행으로 올림픽재기가 이뤄질지 관심을 끌고 있다. 하딩은 숱한 좌절을 딛고 피겨 스케이팅에 전념, 90전미피겨선수권 우승, 91 세계 선수권 은메달리스트를 거쳐 92년 올림픽서 크리스티 야마구치, 낸시 캘리건과 함께 미국 대표로 출전해 미국선수로는 처음으로 트리플액슬(공중3회전반 돌기)을 구사했던 스타플레이어.

그러나 하딩에게 금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지난주 하딩은 노스웨스트 퍼시픽 챔피언십에서 "출천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익명의 협박전화를 받고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올 한해 겪은 불행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달 댈러스에서 열린 스케이트아메리카 대회에서는 늘 신고 연기하던 스케이트의 날이 망가져 경기도중 수리하고 연기를 계속해야 했다. 하딩에게 이 대회는 89, 91년 우승 등 인연이 깊은 대회였으나 결국 3위에 그쳤다.

남편 제프 길루리와의 이혼문제가 한창이던 지난 여름에는 고향인 포틀랜드 신문에 그녀가 한 볼링장에서 흡연했다는 악의성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그녀는 선천성 천식환자여서 담배를 못 피운다) 6월에는 베벌리 힐스에 산다는 익명의 팬이 내년도 그녀의 훈련비 4만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하여 기뻐했으나 장난으로 판명됐고 8월에는 그녀의 포드제 지프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10월에는 아파트주차장에서 권총을 쐈다는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의해 총기소지죄로 걸리기도 했다. 끊임없는 사건의 연속이었고 항상 그녀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의 전 코치인 도디티치맨은 "그녀 주변에는 항상 뭔가 일어나고 있다"라며 혀를 차고 있다.

이같은 연속적인 불행에도 불구하고 하딩은 은반 인생을 94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꽃피우기 위해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전미대표 선발전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이정도면 불운의 아이콘이라거나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따위의 표현을 사용하기에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후에도 파란만장한 일들이 그녀 주위에선 죽 벌어졌다. 그것들을 죽 보노라면 막장 드라마인지 코미디인지 종잡을 수 없는 버라이어티 상황이 죽 펼쳐진다. 

 

아무튼  문제의 사건은 일어났다.  1994년 1월19일 한겨레.

 

올림픽이 끝난 뒤 그는 이번에 누군가에게 피습을 당한다.  1994년 3월6일 경향신문

 

얼마후 그도 범죄에 연루되었음을 시인하면서 유죄를 선고 받는다.  3월18일 경향신문

그런데 바로 그다음날 전해진 뉴스. 장난하냐고.. 3월19일자

내용= 신데렐라를 꿈꾸며 비상하다 추락한 피겨스타 토냐 하딩.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을 때만 해도 그녀의 인생은 끝장난 듯 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하딩에게 황금의 유혹이 곳곳에서 뻗쳐 오히려 전화위복의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 영화사인 제브 브라운사는 18일 하딩의 일대기를 영화화하기로 계약을 마쳤으며 영화는 내년 중 TV를 통해 방영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토냐 하딩, 미국의 비극>이란 제목이 붙은 이 영화는 하딩의 파란만장한 생애 전체를 담을 계획이다. 제브 브라운사는 당초 낸시 케리건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생각이었으나 하딩의 이야기가 오히려 극적이라는 판단 아래 계획을 바꿧다. 영화출연 계약금은 케리건이 디즈니사와 계약한 2백만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케리건과 하딩은 빙판에서 스크린으로 무대를 바꿔 라이벌 대결을 계속하게 된 셈인데 두 영화가 개봉됐을 때의 시청률과 흥행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가 관심의 초점. 또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협회도 17일 하딩의 스카우트 조건으로 계약금 2백만 달러에 연봉 38만달러를 다시 제시해 하딩의 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해 6월. 그는 레슬링 선수로 공개석상에 나타난다.

6월22일 경향신문.

 

 

하다하다 이런 일까지 겹쳤다. 당시 그는 선정적인 뉴스의 주인공으로 잔인할만큼 소비됐다.

 

그리고 사건 이후 1년 뒤 두 사람의 근황을 조명한 기사. 1995년 2월17일자 경향신문

 

2003년 하딩, 프로복서 데뷔

2005년 악녀 하딩, 프로레슬러 눕혔다

 

사건 이후 그를 지칭하는 말은 '악녀'였다.  죗값을 치르고도 남을 시간과 형편들이었지만 언론과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1994년에 머물러 그를 추악한 마녀로 규정하고 짓이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2008년 하딩, 격투기 선수로 데뷔

2010년엔 케리건에게 닥친 불행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지난해 초 하딩의 근황을 전한 기사다.   토냐 하딩 최근 모습 포착

 

아직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없다.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아마 하딩의 관점에서 지난 시간들을 서술하는 내용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다.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면의 이야기들, 그가 엄마에게서 어려서부터 받았던 끔찍한 학대(이런 이야기는 예전에도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와 같은 불행한 가정사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

사족 하나 붙이자면,  1994년 당시 릴리함메르에서 피겨 금메달을 땄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의 옥사나 바이울이었다. 빙판에 발레리나 복장을 하고 나와서 마치 발레하듯 스케이팅을 하면서 상당한 비주얼 쇼크를 줬던 기억이 난다. 금메달을 딴 뒤 시사주간지 타임에 그의 기사가 몇페이지에 걸쳐 실렸던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하딩과 결은 다르지만  상당히 짠내 나는, 가슴 아픈 개인사를 그 역시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