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국내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한동일 신부를 만나기 전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언급된 구절이 등장하는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알쓸신잡을 보면서 책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것 비슷한 마음이랄 수도 있다. 강의내용도 좋았지만 학생들에게 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의욕과 열정을 끌어올려주는 듯한 그의 대화법도 무척 신선했다. 직설적인 내용, 뾰족한 표현이 무척 시원시원한, 아주 인상적이고 즐거운 인터뷰였다. 인터뷰 때 좀 피곤해 보이시긴 했다. 워낙 책쓰고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지금도 수험생 비슷한 생활을 하시는 것 같았다.

업무를 보조해주거나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이 분 하시는 말씀이 "제 작업을 도와주시려면 최소한 4개국어를 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분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셨다. 그렇긴 하다. 라틴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로 된 자료집과 늘상 씨름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또 있다고 한들 얼마나 비싸겠냐고.

그 분에게 몇개국어를 이해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주 단호하게. 그래서 더 물어보지는 못했다.

 

국내 최초의 바티칸 변호사인 한동일 신부(47)가 쓴 <라틴어 수업>은 올해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그가 서강대에서 했던 라틴어 수업 강의를 묶은 이 책은 기능적 어학 수업이 아닌, 삶에 대한 진지한 인문학적 성찰을 돕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강의 역시 인근 대학생들이 청강하러 올만큼 인기를 끌었다. 독자들이 쓴 서평을 보면 위안과 감동을 얻는다는 내용도 있지만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거나 “책에 언급된 구절이 나오는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대목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아닌게 아니라 얼마전 만난 그는 “공부에 관한 책을 내자는 출판사들의 요청이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대중서가 아니라 학문의 기초를 놓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라틴어 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를 통해 전승된 로마법에 관한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다. 평범한 사제의 길을 걷다 로마로 유학가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동양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의 변호사가 됐다.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발된 변호사다. 이같은 이력만으로도 그간의 공부가 얼마나 지난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그에겐 여전히 공부와 집필에 24시간이 모자라다. 최근에 <이탈리아어 관용어 사전> 원고를 넘겼고 <유럽법의 기원> 개정·증보판을 연말에 내놓을 예정이다. 방대한 로마법을 정리한 <로마법의 법률 격언> 원고도 최근 끝냈다. 여기에다 <라틴어 동사활용표 사전> <로마법 사전> <라틴어 사전>까지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라틴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로 된 문헌자료집과 씨름하는 것이 일상인 그는 지난 가을학기부터 연세대 법학·법무대학원에서 ‘유럽법의 기원’을 강의하고 있다.

사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명강의의 비법, 공부의 비법을 묻고 싶은 속물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생전에 저에게 밥을 차려주실 때 한번도 같은 반찬을 연달아 내오신 적이 없어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 힘든 일인데, 저는 선생의 자세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고민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그는 수업도 학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선생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형성해 온 답에 확신을 주는 사람”이라고 믿는 그에게 대놓고 공부의 비법을 묻자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쉬운 선택을 해서 삶이 나아진다면 그걸 하면 돼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생각해봐야죠. 제가 그랬어요.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을 탓하며 무기력에 빠져 있었어요. 공부하는 대신 부모를 원망했고 매사가 귀찮아서 그냥 잠만 잤어요. 막막한 내 인생에서 제일 쉽게 선택한 행동이었죠. 그게 제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부모는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한 것으로 모든 소임을 다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거죠.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나니 삶의 자세가 달라졌어요. 환경이 내게 주지 못한 그 빈공간은 내가 채우고, 내 공부를 통해 남을 채워준다는 목표가 생겼지요. 그 마음이 공부의 힘듦을 상쇄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도 늘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다못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때도 “아무거나요”라고 주문하는 학생들을 붙잡고 “인생은 어느 한 순간도 ‘아무거나’일 수 없는, 모든 순간이 선택과 포기의 반복이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변호사로서의 업무 때문에 지금도 서울과 로마를 오가며 머무른다. 이상하게도 한국에 내릴 때마다 마음이 분주해진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조차도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서 되나”하는 강박 비슷한 감정이 생긴다. “우리 사회를 보면 끓는 물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모두들 날뛸 수 밖에 없고 ‘화(火)’라는 감정이 사회를 지배하지요. 이것을 식히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종교조차도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호칭이 주는 윤리적 부담감 때문에 ‘신부’라고 불리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는 그는 “종교의 종류를 불문하고 ‘물신’이라는 공통된 신을 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학생들에게 부족하고 빈 부분을 공부하라고 하지만 기성세대 역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빈 부분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채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티칸 변호사 한동일 신부, “공부의 비법?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 것”

<라틴어 수업>이 예상외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에겐 인터뷰와 강연요청이 쇄도했다. 공부와 집필일정 때문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는 그가 인터뷰를 수락한 것은 최근 강남에서 중고생들 사이에 라틴어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서다. “좀 씁쓸하죠. 성찰하고 생각을 키우기 위한 공부면 좋겠지만 시험기술을 익히기 위한 도구로 배우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봐요. 공부는 나를 위해 쓰는게 아니라 어제와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것, 그래서 남과 나누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

책 <라틴어 수업> 중에서 재미있는 내용들, 그리고 기억해 둘만한 라틴어 문장들을 발췌해 봤다. 

 

**우리가 천재라고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처음부터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서른 여섯에 라틴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문학, 철학, 역사 고전을 읽기 위해서였습니다. 인문학을 통해 자신의 두뇌를 새롭게 바꾸고 싶어했어요. ~인문학 고전들을 라틴어 원전으로 읽으면서 묻혀 있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죠.

 

**라틴어는 여러 상징성을 지닌 언어입니다. 로마 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제국의 공용어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제국의 패망 이후에도 여전히 유럽 사회의 학술과 외교 전반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행정과 법률 체계를 그대로 물려받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 언어이기도 하고요. 

 

**라틴어로 성적을 매기는 표현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평가에 쓰이는 표현을 단계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Summa cum laude 숨마 쿰 라우데   최우등

Magna cum laude  마그나 쿰 라우데   우수

Cum laude   쿰 라우데   우등

Bene    베네    좋음, 잘했음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포스트 코이툼 옴네 아니말 트리스테 에스트.

모든 동물은 성교후에 우울하다. /인간이 원하고 목표하던 사회적 지위나 명망을 취한 뒤 느끼는 감정은 만족이 아니라 우울함이다  라는 뜻.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이 문장은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첫 인사말입니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저는 잘 있습니다...라는 뜻.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으로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구.

**Carpe diem. 카르페 디엠.  가장 유명한 라틴어. 현재에 충실하게 살라, 매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라는 뜻.

 원래는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