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8월22일자 칼럼임.

 

“교회가 나랏돈 빼먹는 꼴이지요.” 초로의 목사님은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몇번 삼키더니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부터 자신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교인이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하겠다며 그 액수의 몇배나 되는 기부금 증명서 발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기부금 증명서가 있으면 세금이 공제된다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는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평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해 왔지만 새 신자의 면전에 대고 단칼에 거절하기도 민망해 잠시 머뭇거리는 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목사님. 다들 그러고 살아요. 예전에 납품했던 한 교회 목사님이 물건값 깎아주면 기부금 증명서 발급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윈윈’해 왔는걸요. 죄송한 얘기지만 이 교회에서 1년에 이만큼 헌금할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

시쳇말로 이런 교인 몇명만 있으면 교회 살림은 펴진다. 소도시에서 수십년째 목회를 한 그 목사님은 세속적 기준으로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교인 수는 200명이 채 안됐고 형편 좋은 사람도 없었다. 예배당도 임대한 공간이었다. 사실 이 목사님도 속으로는 잠시 흔들렸다고 했다. “그게 세상살이의 요령인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이전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부금 액수를 부풀려달라거나 증명서를 허위 발급해달라는 요구를 받아왔고 그때마다 가차 없이 거절했다고 했다. 듣기 좋은 말로 ‘융통성’이고 ‘세상 사는 이치’일 뿐, 교회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조직적 범죄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순간이지만 유혹에 흔들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여전히 많은 교회가 그런 탈법을 일삼고 있는 것이 참담하다”고 털어놨다. 이 목사님의 교회에는 소위 잘나가고 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확률이 높지 않다. 그 때문에 몇년 전 만난 목사님의 형편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를 두고 압도적인 여론은 종교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 엄밀히 말해 개신교의 대형 교회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만큼의 이유를 대며 반발한다. 소통 부재, 준비 부실부터 종교탄압 우려까지 나온다. 제각기 감춰놓은 속뜻이야 뭐가 됐든 표면적으론 “성직자가 담당하는 영적인 일을 세속적인 노동과 같이 취급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성직은 영적인 일이다. 시간에 따른 노동의 투입을 통해 효율을 따지는 일반적인 노동과 동일하게 취급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방적’ 과세에 반대하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그러니 이건 어떤가. 연말정산을 할 때 종교단체에 낸 기부금은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국가가 알량한 세금 몇푼으로 영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헌금의 고귀한 정신을 훼손해서야 되겠는가. 어차피 헌금은 신과 나의 영적 관계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고 믿음의 표현이다. 목사를 보고,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적 양심으로 내는 헌금이라면 세금 몇푼에 좌우될 리 없다. 그게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이다. 교회 입장에선 탈세를 부추기는 온상이라는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성경 마태복음 6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십일조를 강조한 말라기 3장과 함께 교회에서 헌금을 독려할 때 자주 인용되는 내용이다. ‘아낌없이 바치면 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목회자들의 설교에 많은 신자들은 순종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는 성장했다. 이젠 그 과실을 딴 교회들 차례다. 걱정과 근심 모두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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