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앞서 썼던 글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난 텍스트로 된 음식묘사에 유독 약하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다가 흰 빵에 대한 식욕을 참지 못해 호빵을 사먹으러 가기도 했고 <신밧드의 모험>에서 다이아몬드 광산 골짜기에 떨어진 신밧드가 산꼭대기에서 다이아몬드 채취를 위해 사람들이 던진 고깃덩이에 매달려 독수리를 타고 올라왔다는 장면에서 책을 집어던지고는 엄마에게 닭다리를 사달라고 울며불며 난리를 쳤던 기억들도 있다. <헨젤과 그레텔>을 읽으면서도 위기에 처한 남매의 안위보다는 마녀가 만들어놓은 과자집에 넋이 나가 있었다. 아무튼 다른 책은 몰라도 음식이 묘사되는 책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유독 강하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같은 책을 읽는건 그래서 고문에 가깝다. 스크루지의 회심 과정이 뼈대지만 내겐 스크루지의 환상속에 등장하는 만찬의 식탁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고 입맛을 다시게 한다. 묘사를 한번 보자.
 ‘식탁에 산더미처럼 쌓여 임금님 의자 모양을 한 칠면조와 거위고기, 사냥 조류, 가금, 야생 멧돼지고기, 둥글게 썬 고기, 새끼돼지, 길게 이어진 둥근 소시지, 민스파이, 자두를 넣은 푸딩, 나무통에 넣은 굴, 붉게 구운 밤, 복숭아 빛을 띤 사과, 과즙이 넘치는 귤, 혀끝에서 살살 녹는 배, 멋들어지게 큰 공현제 축하 과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폰스주.’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짜릿짜릿해지지 않은가. 이런 부분을 반복해 읽고 입맛을 다시고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먹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고 재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화려한 음식묘사가 많은 책을 수소문해 찾고 읽으며 지금까지 오게됐다.
 

산해진미, 진수성찬, 주지육림이라 할만한 음식의 향연을 묘사하는 책을 사랑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은, 놀라고 질렸던 책이 있다. 입맛을 다시거나 호기심에 차오르기 보다는 그저 숨이 턱 막힐 정도였던 묘사가 등장한 책이 있으니 바로 <사티리콘>이다. 고대로마의 정치가이자 작가였던 페트로니우스가 네로 시대의 향락문화를 풍자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렸던 작품이다. 실제로 이렇게 먹고 마시고 즐겼다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사티리콘>에 묘사된 연회. 한번 보자.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이 메인 요리를 기다리면서 맛보는 것은 얼음에 재운 포도주다. 팔레르노 백포도주 중에서 100년된 오피미안이라고 나오는데 이 포도주 이야기도 하자면 한나절은 걸리는지라 다음 기회로 넘기고 일단은 연회에 집중하겠다. 여기 나오는 얼음은 알프스에서 실어온 것이다. 그 시대에 알프스에서 실어오는 얼음이라니.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한다.  먹기전 노예 소년들이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각종 서비스와 오락을 제공하는데 발톱을 깎고 다듬어주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도 있다.
 

포도주를 마신 뒤 나오는 전채요리는 이렇게 묘사된다.
 “첫번째 주요 요리를 담은 용기 안에는 코린트 산 청동으로 만든 당나귀가 서 있었는데 흰색 올리브와 검은색 올리브가 담긴 광주리 두 개를 짊어지고 있었다. 또 당나귀는 접시 두개를 떠받치고 있었는데 가장자리에 트리말키오의 이름과 접시에 들어간 은의 무게가 새겨져 있었다. 쇠로 만든 교각 모양의 조그만 틀도 있었는데 안에는 꿀과 양귀비 씨앗을 끼얹은 산쥐가 들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시지도 은제 석쇠에 담겨 나왔는데 그 밑에는 암자색 자두와 석류씨앗이 놓여 있었다.”
 

트리말키오는 이 연회를 베푼 로마의 졸부 이름이다. 본문에 나온 꿀과 양귀비 씨앗을 끼얹은 ‘산쥐’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찾아봤더니 ‘겨울잠쥐’로 번역되기도 한다. 아마도 그 당시엔 식용의 귀한 재료였을지 몰라도 좀 오싹하긴 하다. 그런데 페트로니우스는 이 전채요리를 묘사하면서 ‘우아한 음식’이라고 표현했다.
 

전채를 먹고 있다보면 바구니를 담은 쟁반이 나온다. 이 쟁반에는 나무로 깎은 암탉이 지푸라기 위에 앉아 있는데 이 지푸라기를 헤치자 공작알이 나온다. 이 공작알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공작알 껍질을 깨자 이 안에는 계란 노른자를 입혀 후추를 뿌린 오동통한 메추리 새끼가 들어 있다.
 

다음으로는 열두개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큼직한 원형 쟁반 위에 온갖 진귀한 음식이 차려져 나왔다. 소설의 화자인 주인공 엔콜피우스는 “그리 거창하진 않았지만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참신했다”고 쓰고 있다.
 “백양자리 위에는 병아리콩이, 황소자리 위에는 소고기가, 쌍둥이 자리 위에는 고환과 콩팥이, 게자리에는 화환이, 사자자리에는 아프리카산 무화과가, 처녀자리 위에는 어린 암퇘지의 젖통이, 천칭자리에는 양쪽에 각각 다른 케이크를 얹은 저울이, 전갈자리 위에는 바다전갈이, 궁수자리 위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도미가, 염소자리 위에는 가재가, 물병자리 위에는 거위가, 물고기자리 위에는 숭어 두 마리가 올라 있었다. 접시 한복판에는 벌집과 함께 잔디 뗏장이 놓여 있었다.
… 그가 말하는 사이 무희 네명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앞으로 나오더니 대형 접시 뚜껑을 벗겨냈다. 그러자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금류, 암퇘지 젖통, 페가소스처럼 양옆에 날개를 단 산토끼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죽 부대에선 매콤한 생선 액젖이 흘러나와 그 밑에 있는 생선들이 마치 작은 해협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손님들 앞에서 노예가 음악에 맞추어 고기를 써는 쇼를 선보이고 난 뒤 다시 음식을 담은 쟁반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마어마하게 큰 멧돼지다. 요리되어 나온 멧돼지는 아래와 같이 장식되어 있다.
 “엄니에는 야자나무 잎사귀로 만든 바구니 두개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는데 한쪽에는 방금 딴 시리아산 대추야자 열매가, 다른 한 쪽에는 말린 테베 산 대추야자 열매가 담겨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구워 만든 모형 새끼 돼지들이 마치 젖을 빨 듯 돼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암퇘지인 듯 했다. 모형 돼지들은 알고 보니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씩 싸줄 선물이었다.”
 

이 돼지 역시 그저 요리된 것이 아니다. 사냥용 칼을 든 남자가 나와 돼지의 옆구리를 가르자 그 안에서 개똥지빠귀떼가 푸드덕거리며 나온다. 개똥지빠귀 한마리가 아니라 ‘떼’다. 다른 하인들이 이 새를 잡아다가 손님들에게 나누어준다. 멧돼지에 이어 나오는 요리는 통채로 삶긴 송아지. 이 송아지는 눈깜짝할사이에 카빙쇼를 통해 골고루 해체된 뒤 손님들에게 한조각씩 전달된다.
 

이어지는 것은 화려한 케이크다. 천장이 열리면서 내려오는 거대한 쇠테에 매달린 접시에 케이크가 놓여 있다. 그 위에는 온갖 종류의 사과와 포도가 있고 손만 살짝 대도 샤프란 연무가 뿜어져 나온다. 이게 디저트인줄 알았더니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무려 ‘입가심’이다. 살찐 수탉과 빵으로 만든 두건에 싸인 거위알. 주인공은 구역질이 날 지경이라고까지 했다.
 

손님들에게 나누어줄 선물 목록도 엄청난 것들이다. 돼지 허벅다리, 양 목살, 사과 맛 막대사탕, 건포도, 아테네산 꿀, 고깃덩이, 산토끼, 사탕무 한 단.
 

나오는 음식들은 이 외에도 더 있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질펀하게 벌어지는 트라말키오의 연회는 한마디로 목불인견이다. 허세의 대잔치가 이어지다가 결국 취해서 싸우고 대규모 소동이 빚어진다. 이 틈을 타서 엔콜피우스는 현장을 빠져나오고 만다.
드문드문 전달하는 설명을 듣는 것 보다 이 책은 한번쯤 봐야 그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다.

 

루벤스가 그린 <트리말키오의 향연>

 

트리말키오의 이 연회는 미국 작가 피츠제럴드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쓰면서 원래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 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고 한다. 개츠비의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 트리말키오여서다. 책에 등장하는 개츠비가 살던 저택이 있던 곳이 웨스트에그다.  <위대한 개츠비>에도 사치스러운 파티가 나오긴 하는데 트리말키오의 향연에 댈 건 아니다.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만든 <펠리니의 사티리콘>은 이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 간간이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는데 본 적은 없다. 영화에서 트리말키오의 향연을 어떻게 묘사했을지는 무척 궁금하다.
위키피디아에서 저자 페트로니우스를 찾아보면 루벤스가 그린 <트리말키오의 향연>이라는 그림이 나온다. 향연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걷잡을 수 없는 탐욕과 비극을 표현한 것 같다.
엽기적이라 할만큼 기이한 음식 재료와 요리법이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표현방식으로 자리잡았던 것은 고대로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런 추악한 탐욕을 ‘미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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