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출처 : 경향신문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 온 힘”


“우리의 목표는 경영권 방어가 아니다. 이제는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최태원 SK(주) 회장은 지난 9일 창립 42주년 기념 체육대회가 열린 인천물류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재벌이란 지배구조가 과거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중요한 것은 기업을 이끄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최회장은 이와 함께 “기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생존을 생각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어느 조직보다 빨리 변하고 움직인다”면서 “투자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누가 말려도 투자하는 게 기업”이라고 밝혔다.

최회장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8년 만에 창립기념행사를 갖게 된 때문인지 감회가 적잖은 표정이었다. “묵은 때를 벗고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 좋다”는 최회장은 주요 현안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그룹 회장 자리를 오래 비워둔 이유는.

“나는 재벌이라는 말이 싫다. 그룹이라는 말도 재벌이라는 지배구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런 지배구조가 과거엔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을 이끄는 시스템이다. 누가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독립된 각 기업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가졌느냐는 것이다. 시스템이 경쟁력이고 SK도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지켜봐달라.”

-내년 주총에서 소버린과 표 대결을 앞두고 있는데.

“우리의 목표는 경영권 방어가 아니라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과 지속적인 기업가치 제고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구조적, 체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외국인의 지분이 50%를 넘는다. 끊임없는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게 근본 방향이다.”

-SK가 해외자원 개발에 주력하는 이유는.

“에너지자원 확보는 전쟁이다. 국가의 안보와 장기 경쟁력이 달려 있는 문제다.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단결해 일관성 있게 밀어붙일 전략이 필요하다.”

-SK가 추구하는 성장동력과 경쟁력은.

“특정 제품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해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경쟁력을 잃지 않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룰(rule)을 만드는 역할과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은 외부의 변수와 법칙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르는 데 익숙할 뿐 스스로 룰을 만드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위성DMB 등 새 사업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 산물이 나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속도는 느리다. 오히려 위험 요인으로 받아들이거나 규제의 대상이라는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기회가 늦어지는 것은 아쉽다. 벌써 해외에서는 국내 DMB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기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생존을 생각한다. 생존을 위해 어느 조직보다 빨리 움직인다.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질책하지만 기업은 저마다 살아남으려고 노력하고 움직인다. 투자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누가 말려도 투자하는 게 기업이다.”

이날 체육대회에 직원 상당수는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그러나 최회장은 혼자였다. 그는 “아내는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고 아이들은 시험기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체면을 걷어치운 듯 큰 덩치로 직원들과 함께 요즘 유행하는 ‘올챙이 송’에 맞춰 율동하고 게임을 즐겼다.

〈인천|박경은기자 king@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4년 10월 10일 19:46:54


기사제공 :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