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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크

성공한 첫인상 그리고 첫인상의 덫

by 신사임당 2016. 1. 27.

 

 

 

배우들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 작품들이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인기와 명예를 얻도록 만들어 준 특정한 캐릭터나 작품 말입니다. 그런 작품을 통해 생짜 신인이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되기도 하고 오랫동안의 무명생활을 털어버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스타탄생의 발판이 됐던 그 강렬한 첫인상은 때론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합니다. 자칫 그 강렬한 첫인상의 덫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지요.
 

대중들은 변덕이 심합니다. 인내심도 많지 않습니다. 스타에 열광하지만 그들에게 더 많은 새로움과 다양성을 요구합니다. 만일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대중들의 가차없이 관심을 거둡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를 갈망하지요. 대중문화 아티스트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점도 이 부분입니다.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첫번째 작품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뒤 그 다음에 내놓는 작품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부진할 때 사용하는 말이죠. 앞서 말한 첫인상의 덫을 빠져나오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것입니다.

 

얼마전 신드롬급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끝났습니다. 여러명의 새로운 스타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데뷔하다시피 한 배우들은 벼락스타로 떠올랐습니다. CF와 후속작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각종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드라마는 전작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는 것입니다. 이미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는 새로운 시도와 형식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드라마 그 자체로 히트 상품이 되면서 많은 벼락 스타들을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혜성처럼 떠올랐던, 혹은 재발견됐던 배우들이 후속작에서 대중들의 기대치를 이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심지어 ‘응답시리즈의 저주’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정도가 됐습니다.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나 신소율, <응답하라 1994>의 고아라나 정우, 손호준, 도희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은지나 도희는 연기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신인이었지만 인상적이고 강렬한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 강렬함은 이후 작품 활동에서 오히려 덫으로 작용하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손호준도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기 보다는 예능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됐습니다. 고아라나 정우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에 여러 작품을 선택했지만 <응답하라>의 이미지를 떨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사에 남을만한 강렬한 영광의 주인공이었으나 이 영광이 남긴 굴레에서 결국 자유롭지 못했던 추억의 스타들. 누가 기억 나시나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올리비아 핫세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68년 개봉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으로 데뷔했던 그녀는 세계인의 가슴에 지금까지 영원한 줄리엣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어떤 작품도 줄리엣의 이미지를 넘어설 수 없었지요 이후 적지 않은 작품에 출연했던 그녀이지만 데뷔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외하고 대표작으로 꼽을만한 영화는 없었습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1991년작 <연인>의 여주인공이었던 제인 마치의 등장도 화려했습니다. 이후에도 몇차례 작품에 출연했으나 대중들은 그를 <연인>의 여주인공으로만 기억할 뿐입니다. 

 

 

 

 

성공한 캐릭터에 발목을 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류작을 전전하며 그저 그렇게 잊혀진 배우들이 많았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이를 극복해내고 자신의 입지를 굳힌 배우들도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전 이미지를 대체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앞서 언급한 <응답하라> 시리즈는 배우의 역량 보다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문에 연기경험이 부족한 신인들이 어떤 캐릭터를 만나느냐에 따라 스타덤에 오를 가능성도 크지만 반대로 이후에 고전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시트콤의 대부로 불리는 김병욱 감독의 <하이킥> 시리즈 역시 비슷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스타로 떠올랐던 정일우, 황정음, 김범, 김혜성 등은 한동안 <시트콤> 캐릭터의 매력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특히 황정음은 한동안 발연기 논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다양한 이미지를 시도하면서 뚜렷한 연기력의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캐릭터의 치명적인 매력만큼이나 강한 이미지의 굴레가 덧씌워졌던 배우로는 이준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왕의 남자>에서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 공길역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터프하고 남성미 넘치는 배역에 몰두했습니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를 연기했던 조정석의 노력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유들유들하고 능청스러운 연기로 ‘국민 친구’ 반열에 올랐던 그는 비슷한 이미지에 안주하는 대신 <더 킹 투하츠> <최고다 이순신> 등을 거쳐 <오 나의 귀신님>에 이르면서 매력적인 주연 배우로 자리잡았습니다.

결국 자신을 만들어 준 캐릭터를 끊임없이 깨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인 셈입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엄청난 고통과 노력이 동반될  뿐 아니라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배우의 운명인 것을. 그런 배우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느끼는 이들이 대중인 것을.

 

 

**이 내용은 SK이노베이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