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복면효과

 

 

 

TV를 봐야 하는 게 일이다. 누가 들으면 팔자 늘어졌달 수 있겠지만 사실 고역이다. 의무감으로 건성건성 채널을 뒤적이기 일쑤인데 요즘 한 프로그램에 마음이 꽂혔다.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나와 노래 실력을 겨루는 <복면가왕>이다. 최근 몇년간 노래를 소재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수없이 쏟아지며 식상할 만큼 식상해졌지만 <복면가왕>은 단순하면서도 기발해 좀체 눈을 뗄 수 없다.

재미와 매력의 본질은 프로그램이 가진 취지다. ‘계급장 떼고 진짜 노래로 승부한다.’ 무대에 선 가수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출신도 이름도 스펙도 경력도 모른다. 그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판정단이나 시청자 모두 노래하는 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달아오른다. 드러나는 인물들의 의외성은 이 프로그램의 재미와 화제성을 배가하는 요인이 된다. 방송인 홍석천을 비롯해 솔지, 루나, 육성재 등 웬만한 시청자들에겐 생소한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얼굴을 보이자 판정단, 시청자 할 것 없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묵직한 중저음의 소유자가 홍석천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판정단 얼굴에 나타난 당혹스러움과 놀란 표정은 성소수자에게 우리가 가진 편견의 일면이었다. ‘테크닉은 좋으나 감동 없는 껍데기’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폄훼되던 아이돌 가수에 대한 편견도 여지없이 깨졌다. 수십년 경력의 대형 가수를 이긴 주인공이 새파랗게 어린 아이돌그룹 멤버임이 밝혀졌을 땐 통렬한 쾌감마저 들었다. “편견에 부딪혀 좌절한 사람이 많다. 진실된 모습을 알려고 노력하면 상대방의 새로운 걸 볼 수 있다”고 하던 홍석천의 말은 가슴에 뭉클하게 맺혔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선 사람의 본질과 내면, 가능성보다 학력과 재산, 외모, 집안 등 소위 스펙에 혹해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이 당연해진 지 오래다. 상당수의 대중은 특정한 대상의 실체보다 후광에 굴종할 준비가 돼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전 분야에서 예외가 없다. <복면가왕>이 준 쾌감은 보기 좋게 깨진 후광효과를 확인하는 데서 나왔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문득 생각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그는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고 그의 예측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콧대 높은 엘리트 경제 관료들의 논리는 그 앞에서 판판이 깨졌고 무력화됐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그를 떠받들었다. 톡톡히 망신살 뻗친 정권은 그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구속했다. 무죄로 풀려나긴 했지만 자존심 상한 기득권은 그를 치졸하고 저열한 방법으로 난자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무직자의 사기행각에 대한민국이 놀아났다고 말이다. 그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사였더라도 사기꾼으로 매도됐을까. 그의 식견에 감탄했던 대중의 마음은 그의 초라한 스펙이 드러난 뒤 어떻게 바뀌었나. 알량한 우월감에 올라타 그에게 모욕을 퍼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몇년 새 스펙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후광에 굴종하는 시스템은 더 공고해졌다. 대기업들은 저마다 지원자의 스펙 대신 가능성에 집중하겠다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인재를 뽑겠다고 외치지만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부와 학력, 직업까지 점점 더 정교해지는 시스템하에서 대물림되는 현상은 이제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시스템하에서 청춘들은 무기력하게 꿈과 희망을 접어간다.

지난해 진로 멘토링 강의를 했던 한 중학교 학생에게서 얼마 전 e메일을 받았다. 올해 중 3이 된 그 학생이 구구절절 보낸 사연은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에 대한 질문이었다. “ ‘자소설’ 쓰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스펙 좋은 애들이 좋은 학교 가잖아요. 만약 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과연 그 학교가 저를 뽑고 싶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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