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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배용준 고독한 반항아에서 한류스타까지

by 신사임당 2015. 2. 17.

한류스타 배용준씨의 결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런 기사를 쓰거나 볼 때 마다
제3자가 누구랑 헤어지건 연애를 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대중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뉴스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중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주요한 임무이니까요. 
하지만 알권리와 사생활보호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경우가 많아
이같은 부분이 늘상 고민스럽긴 합니다.
연예인이 공인이냐, 공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이냐... 등등 논란은 끝도 없습니다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연예인들의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눈길을 끄는 소재임이 분명합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어뷰징 기사와 연예인 가십이 가장 많은 조회수를 자랑하고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은
그런 본능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잡설이 길었네요..

서태지가 컴백하기 전만해도 10대들에겐 그냥 옛날 가수 아저씨인 것과 마찬가지인것처럼
배용준씨 역시 옛날 아저씨 배우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정말 대단했던, 열도를 뒤흔들었던 배우 배용준.
그가 어떻게 데뷔하고 성장했는지 말입니다.

1990년대 중반 데뷔한 그는 TV에 나오면서 단박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선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띈 얼굴,
따도남, 차도남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그의 매력에
10대부터 아줌마부대까지 푹 빠져들었지요.
특히 그의 해맑고 순진무구한, 그러면서도 남자다운 미소는
당대 많은 미남스타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마성의 무기였습니다.

데뷔작은 1994년 KBS의 <사랑의 인사>라는 드라마였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영민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네요.
이 드라마에 이어 이듬해 <젊은이의 양지>에서 석주를 연기했고
연달아 두 드라마가 모두 히트하며 그는 차세대를 이끌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젊은이의 양지>는 <응답하라 1994>에도 등장했지요.
주인공들이 하숙집 마루에 앉아 이 드라마를 함께 보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당시 이 드라마 주인공은 이종원, 하희라였습니다.
그리고 하희라의 동생으로 전도연이, 전도연의 연인이자 재벌가 아들 석주로
배용준이 등장했습니다.
배용준의 쌍둥이 남매로는 박상아씨가 출연했었죠.
지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가 된 그 분입니다.

배용준씨는 이 드라마 방영당시 주인공들보다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촬영장마다 그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눈치보며 싸인해줘야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었습니다.

 

 

 

 

그의 이미지는 엄친아 그 자체입니다.
서글서글하고 모범적인,
부유한 가정에서 여유롭게 자란
모나지 않은 성격을 가진
학원물 순정만화의 이상적인 주인공이죠.
하지만 당시 그가 인터뷰 등을 통해서 했던 이야기는
무척이나 의외였습니다.
성격이 외곬수이고 무뚝뚝뚝하고 내성적이었던데다
의외로 ‘굴곡진’ 사춘기를 보냈다고 했기 때문이었지요.
학창시절 공부잘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스스로의 삶에 어깃장을 놓았다고 할까요.
공부도 스스로 놓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틈날 때 마다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했던 <비열의 거리>가 그를 영화배우의 꿈을 갖게 해준 작품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방황 때문인지 대학입시에서 두번을 떨어졌습니다.
공부하겠다며 절에도 머물렀지만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요.
그는 졸업시즌에 여학생들에게 꽃을 대신 전달해주는 꽃돌이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입시철에 엿과 떡을 팔기도 했고
군고구마장수도, 해수욕장에서 음료수 장수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방황하다 얻은 일자리는 영화사의 소위 ‘따까리’였습니다
홍보 포스터 뿌리는 것 부터 어수선한 현장의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거지요.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배우의 꿈을 다졌습니다. 
허드렛일을 계속하면서 영화에 단역으로 계속 출연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KBS 탤런트로 특채됐고 <사랑의 인사>라는 행운의 여신이 찾아오며 스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후 그에게 톱스타 자리를 굳혀준 드라마는
한국드라마 사상 시청률 1위로 기록돼 있는 <첫사랑>입니다.
이후 그는 대체 불가한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긴 하지만 이후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할 때까지는 작품이 좀 뜸합니다.
그리고 두둥... <겨울연가>.
사실 국내에서도 인기가 있었지만 시청률은 30%가 안됐습니다.
지금이야 대단한 시청률이지만 10여년전은 50%를 넘나들던 시절이니
어마어마한 임팩트가 있었던 건 아니죠.
그런데 이거이 말입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서 완전히 터져부렀다는....
그러면서 그때부터 배용준은 ‘크라스’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욘사마가 일본 안방극장을 장악하면서 일본 언론은 그에 대해 도배하는 수준으로 보도를 했죠.
수많은 일본 아줌마들은 성지순례하는 심정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배우가 신격화되는 것 뭐 다 좋습니다만
그의 화사한 미소가 수많은 일본 아줌마들에게
한국 남자들 역시 저렇게 로맨틱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준 건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거냐는...!!! (에잇, 몹쓸 미소... ㅠㅠ)

 

 

*겨울 연가

 

*맨발의 청춘  변우민, 이종원씨와 함께

 

*첫사랑의 한장면입니다

 

*드라마 파파에서. 정찬, 이제니씨도 보이네요.

 

 

이후 영화 <스캔들> 등에 출연하지만
신계에 올라간 이후에 배우로서의 그의 모습은 보기 힘들어집니다.
<태왕사신기>에 출연하긴 했어도 기대감에 크게 미치진 못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 등 여러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은 중단하다시피한채 현재까지 시간이 흐르고 있지요.
지금은 오히려 연예계를 주름잡는 거물 사업가 같은 느낌이 더 강하네요

 

 

*스캔들 

 

*태왕사신기.  

 

 

*드림하이 제작발표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