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절창은 아니다. 그렇지만 중저음의 편안하고 단정한 그의 목소리는 참 좋다. 낯선 이름의 싱어송라이터 정재원(26·사진)이다. 그는 대중음악계에선 꽤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적재’라는 활동명으로 주목받던 기타리스트. 최근 싱어송라이터로 출발을 알리는 첫 앨범 <한마디>를 냈다.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목소리엔 여유가 넘치고 기타며 건반, 스트링 등 개별 악기가 빚어내는 소리도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뮤지션 정재형이 “내가 아는 적재가 이렇게 감동적인 노래 앨범을 낸 거냐?”고 물어볼 만큼 오랜 지인들에게도 깜짝 선물 같은 앨범이었다.
 

2008년 정재형의 콘서트 무대에 기타 세션으로 데뷔한 그는 수년간 장르를 불문한 실력파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으며 많은 뮤지션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소라, 윤종신, 신승훈, 김동률, 김범수, 박효신, 루시드폴, 인피니트 등 가수들의 공연 무대에 함께했고 레코딩 세션을 맡았다. 서울시향의 클래식 공연 무대에 협연자로 서기도 했으며 재즈펑크밴드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타리스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그가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게 된 건 갑작스럽게 찾아온 허탈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스톰프뮤직

 

“재작년 가을이었어요. 기타 연주만으로도 잘나갔고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는 틈을 비집고 덜컥 ‘난 이렇게 흘러다니다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전에도 막연히 내 노래를 해보고 싶다며 곡을 끄적여보긴 했는데 제대로 완성한 적은 없었거든요. 때가 되어 그랬는지 가사가 써지더라고요. 고음 불가인 제 음역대에 최적화된 멜로디도요.”
 
무엇이든 싫증을 잘 내고 공부에도 뾰족한 취미가 없던 중학생을 사로잡은 것은 학교 밴드에서 친구가 치던 기타였다. 친구에게 기타를 배우면서 밤새 연습을 해도 질리지 않았고 등하교 때마다 기타와 앰프를 짊어지고 다녔지만 무거운 줄 몰랐다. 일생을 걸 길이다 싶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자퇴했다. 판사가 되길 바랐던 부모에겐 애물단지였다. 기타 생각밖에 없던 그에겐 모든 게 부질없었다. 열정에 오기까지 더해지면서 친구들이 고1을 마치던 시점에 서울예대에 떡하니 합격했다. ‘버린 자식’에서 졸지에 ‘뭔가 해낼 놈’이 됐다. “2년 빨리 간 건 좋았는데 너무 어리니까 무시당하더라고요. 골방에 틀어박혀 죽어라 연습만 했죠. 그때 정말 많이 늘었어요.”
 


이번 앨범에 실린 10개의 곡에 그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아련한 추억을 담아냈다. 예민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노랫말로 표현한 솜씨에는 연애에 관한 상당한 ‘내공’도 엿보인다. 앨범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한마디’는 롤러코스터 조원선이 피처링으로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7번째 트랙 ‘더 도어’는 바버렛츠 안신애가 쓴 곡이다. 베이시스트 구본암, 서태지밴드의 키보디스트 닥스킴, 세렝게티의 드러머 장동진 등 실력파 세션들이 품앗이로 참여했으며 기타는 그가 직접 연주했다. 앞으로도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유지하고 싶다.
 
“밴드라고 하면 보컬과 이를 받쳐주는 연주자로 분리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저는 악기와 목소리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두 가지의 매력을 모두 살리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그런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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