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대중가요가 클래식이나 재즈 등 마니아층에게 머무르는 음악과 달리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강한 공감능력 때문이다.

누구나 겪음 직한 사랑과 이별, 아픔, 삶의 기쁨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은 당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교감하게 하며 하나로 묶어준다.

잘 알려진 구체적인 지명은 노랫말이 갖는 공감의 힘을 더 높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노랫말에 구체적인 지명이 사용돼온 사례는 많다.

역사적·시대적 의미를 갖든, 개인적 추억의 장소가 됐든 구체적 지명이 들어간 노래는 실재성이 부여돼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 1950~1969 - 격동의 현장에 대한 위로
 피란 수도 부산 담은 가사 많아
 시대·생활상 고스란히 반영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 1953년 발표 ‘굳세어라 금순아’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대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지명은 역사적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현장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곡은 반야월이 지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 폭탄이 떨어지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 북으로 끌려간 임을 그리워하는 이 곡은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피란수도 부산을 배경으로 한 노래가 많았다는 점은 이 시기 대중가요에 뚜렷이 나타난 특징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피란민으로 뒤덮인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부산 국제시장과 영도다리 위를 헤매며 찾아다니는 애끓는 이야기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린 노래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별의 부산항’에도 피란민들의 애환이 짙게 배어 있다.

이 시기 미국 지명이 등장하는 노래가 나왔다는 점도 재미있다. 백설희가 부른 ‘샌프란시스코’,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 등은 당시로선 지명도, 발음도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국의 땅을 언급했다. 전쟁 직후 외국, 특히 미국에 대한 동경과 허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샌프란시스코)
 
1960년대 발표된 노래들에선 전쟁을 딛고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만날 수 있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모든 자원이 서울로 집중되기 시작하던, 그 당시 서울은 이상과 욕망의 상징이었다.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에 나타난 도시 서울은 꿈이 이뤄지는 희망의 도시다.

반면 지방을 소재로 한 노래들도 많았다. 서울이 이상향이었다면 지방은 소외된 현실이었다.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임을 그리워하며 애를 태우는 슬픔의 땅으로 묘사됐다. 이촌향도 현상이 심해지는 데 따른 부작용과 아픔의 반영이었던 셈이다.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춘천댁사공’ ‘서울이여 안녕’ ‘소양강 처녀’ 등에는 안타깝고 절절한 이별 이야기와 처연한 슬픔이 묻어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씨는 저서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에서 “1950~1960년대 대중가요는 역사의 현장에서 만들어지고 불린 노래이자 격동기를 관통하는 국민들이 겪었던 시대상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 1970~1989 - ‘서울’의 희로애락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 홀로 걷는 이 마음”
 - 1985년 발표 ‘비내리는 영동교’ 중
 
대중가요 가사에 등장하는 지명의 절대다수는 서울이다. 가요계에서는 서울의 지명이 들어간 노래가 1000곡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도시 서울을 노래한 곡도 있고 서울 내의 구체적인 지역을 이야기하는 곡도 많다. 거론되는 구체적인 지역들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이를 보면 유행과 트렌드의 중심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서울의 중심은 명동이었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었고 젊음의 상징이었으며 가장 트렌디한 공간이었다. ‘서울의 모정’에 묘사된 명동은 꿈을 꾸듯 행복한 장소이다. 전영이 부른 ‘서울야곡’,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거리’에 등장하는 명동은 뜨거운 사랑을 쏟아냈던 청춘의 한 자락이 남겨진 곳이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에는 명동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제목에 쓰인 이들 지역은 명동과 가까운 곳이었다.

강남개발이 본격화하는 1980년대가 되면서 대중가요가 노래하는 지역도 강남권으로 급격히 변했다.

혜은이가 부른 ‘제3한강교’는 지금의 한남대교다. 한남대교는 용산과 신사동을 잇는 다리로, 현재의 ‘강남권’과 강북지역을 연결하는 최초의 한강다리다.

이후 주현미(‘신사동 그 사람’ ‘비내리는 영동교’), 문희옥(‘사랑의 거리’ ‘강남 멋장이’), 박영민(‘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등 당시 등장한 가수들은 강남을 노래하며 스타가 됐다. 강남을 향한 행렬에는 기성가수들도 동참해 나훈아가 ‘영동부르스’를, 현철이 ‘추억의 테헤란로’ 등을 불렀다. 사람과 돈이 몰리는 곳, 이름만으로도 흥분이 넘실거리는 대상, 유행과 첨단문화를 이끄는 강남은 2000년대 들어 ‘비오는 압구정’(브라운 아이즈), ‘강남 스타일’(싸이)로 이어지며 그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서울이라도 도심권이나 강남이 아닌 곳은 서민 정서와 애환을 대변하는 변방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은방울자매가 불렀던 ‘마포종점’을 보자.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도심을 관통하는 밤차의 종착지 마포는 1960년대만 해도 변두리였고 강 건너 영등포는 아득히 멀고 고단한 곳이었다. 김흥국이 부른 ‘59년 왕십리’에 등장하는 왕십리도 객지에서 올라와 서울살이의 외로움을 위로받으려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던 곳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1970~1980년대에는 도로교통이 발달하면서 지방에 대한 신비감이나 순수한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서울에 관한 노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민이 장려됐던 1970년대에는 공항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돌아가는 쓸쓸함을 노래한 ‘김포가도’ 같은 곡도 사랑받았다”고 말했다.

■ 1970~1989 - 이별·그리움에서 이상향으로
 
“자 떠나자 / 동해바다로”
 - 1971년 발표 ‘고래사냥’ 중
 
노래에 들어간 지역명 중에는 항구도시가 많다. 항구와 부두가 갖는 이별, 그리움의 정서 때문이다. 지역명이 들어간 노래 중에 가장 사랑받는 곡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1976년 발표된 이 곡은 20세기 최고의 히트곡으로도 꼽힌다. 노랫말에 나오는 ‘그리운 내 형제’를 만나 위로를 받는 듯한 공감대를 주는 노랫말 덕분에 이 곡은 나온 지 4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여전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전쟁의 상흔을 떠안은 피란수도 부산은 이 곡을 통해 고향과 그리움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수년 뒤 나온 ‘부산 갈매기’는 이 같은 부산의 지위를 굳건히 다졌다.

항구도시 목포도 빼놓을 수 없다. 호남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의 역사, 상처가 배어 있는 ‘목포의 눈물’은 ‘목포는 항구다’와 함께 이 지역의 정서적 애착과 자부심을 대변한다. 조용필이 리메이크했던 ‘대전 블루스’에서도 목포의 한과 눈물의 정서는 계속된다.

이별과 그리움의 고향땅은 도피 욕구를 감싸안는 이상향으로도 묘사된다. 1975년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에 등장하는 동해바다는 억압된 1970년대 사회적 분위기에서 절망한 청춘들이 외치던 탈출구였다. 이는 도심의 팍팍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정서가 더해지며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 김창기의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장을 살께’,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 등으로 이어진다.

■ 1990~2014 - 너와 나, 우리의 ‘그 곳’
 데이트 장소 등 추억 담긴 곳 가사 뜨는 곳 보면 알 수 있어
 
“신촌을 못가 /…/ 혹시 너와 마주칠까 봐 / … / 자주 갔었던 그 포장마차가 그립다”
 
1990년대 이후 뮤지션들은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소에서 추억을 노래한다. 시대적 의미를 갖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고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는 다양한 장소들이다. 전통적 데이트 코스였던 명동, 광화문, 신촌부터 2000년대 이후 부상한 이태원, 홍대, 북촌 일대가 많은 노래에 등장한다.
 
포스트맨이 노래한 신촌(신촌을 못가·2013년)은 여전히 사랑과 이별이 교차하는 장소다.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역에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 등장했던 광화문은 최근 아이돌 가수 규현이 내놓은 ‘광화문에서’를 통해 새로운 감성으로 태어났다.

2003년 윤건은 ‘홍대 앞에 눈이 내리면’을 발표했으며 루시드폴은 ‘삼청동’(2005년)을, 에피톤 프로젝트는 ‘이화동’(2010년)을 노래했다. 얼마 전 서태지가 발표한 ‘소격동’은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에 대한 추억과 역사적 사건들을 은유적으로 교차시켜 표현한 곡이다. 소격동이라는 지명은 젊은 세대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나 실제로는 삼청동과 연결돼 젊은이의 발길이 모여드는 곳이다.

어쿠스틱 듀오 십센치가 부른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에는 강북 지역의 대표적 번화가가 언급된다. “그대 없는 홍대 상수동 신촌 이대 이태원 걸어다닐 수도 없지.”

 

UV의 ‘이태원 프리덤’은 새롭게 떠오른 이태원이 주인공이다. UV는 이 곡에서 강남과 홍대는 사람이 너무 많고 신촌은 뭔가 부족한 곳이지만 이태원은 젊음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칭송한다. 이적과 유재석으로 이뤄진 프로젝트그룹 처진달팽이는 ‘압구정 날라리’에서 클럽문화를 설명했다. 노래 마지막 가사는 “내가 살던 곳은 수유리”로 마무리해 유행의 첨단 지역과 변방을 극도로 대비시켰다. 수유리를 비롯해 영등포, 왕십리 등은 상전벽해되긴 했어도 여전히 대중적 정서에서는 비주류로 머물러 있다.

그리움과 이별의 공간으로 묘사되던 지방은 신세대 뮤지션의 감성을 통해 낭만 가득한 여행지로 변신했다. 윤건의 ‘가을에 만나’에 나오는 부산 해운대는 사랑과 추억이 머무는 장소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 역시 여수를 전국적인 청춘 여행지로 각광받도록 만들었다.

저작자 표시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