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오늘날 대중음악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모든 게 사랑 타령인데 무슨 말이냐고. 그러고 보면 사랑 타령 뿐이기도 하다. 서로를 향한 감정과 상처들이 때로는 세련된 인간관계인양 포장되기도 하고 때로는 속보이는 거래로 드러난다는 점이 낯설달까. 당당한 자기표현이나 다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간혹 쌓아둔 염증을 저열하거나 공격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기도 하는데 이같은 바탕엔 사랑 혹은 그 범주로 묶을 수 있는(이끌림 같은 것) 감정이 있다.

때문에 듣다보면 사랑만큼 피곤한게 없다. 순수한 감정에 빠지고 싶다는 충동 보다는 어떻게 하면 폭탄을 밟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냉큼 앞선다. 설혹 사랑에 빠진들 그게 뭐 대수인가. 사랑 따위가 밥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대책없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부질없기만 하다. 그저 적당히 간보고, 아니면 말고. 그 뿐이다. 그 수많은 사랑 노래들 들으면서도 가슴에 짜르르 와 닿는게 없다. 사랑을 노래하는 노래가 없다고 느껴지는게 당연하다. 그저 그런, 사랑하기 힘든 세상, 사랑을 꿈꾸기 어려운 현실 탓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대중음악 가사 속에 사랑은 좀체 발화되지 않는다.

 

데뷔 25년차인 가수 김동률. 많은 이들이 그의 앨범을 기다리고, 그의 곡이 음원차트를 싹쓸이하고, 대중들이 모이는 곳에 그의 음악이 울려퍼진다. 심지어 3년전 그는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했다. 얼굴 한 번 방송에 내비치지 않았다. 공연장 외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었고 그 흔한 인터뷰 한번 나온 적도 없었다. 10~20대를 중심으로 한 아이돌 팬덤 수준의 기반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사랑을 노래한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은 뭘까. 가사만 놓고 보면 언뜻 그 특별함을 발견하긴 힘들다. 이번에 나온 ‘답장’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미련과 자책과 아쉬움의 토로다. 예전에 나왔던 ‘그게 나야’의 화자 역시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아직도 그 기억에 사로잡혀 아파하는, 30대 이상쯤 되지 않았을까 추정되는 남자다. 그의 데뷔작인 ‘기억의 습작’이 갖고 있는 정서도 마찬가지다. 지고지순하고 때로는 어리석기도, 답답하기도 한 사랑.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하며 조롱의 대상이 될법한 후회. 찌질하고 덧없게 느껴질지도 모를 감정들. 


물론 동시대의 노래들 중 윤종신이나 임창정의 곡들 역시 표현법의 농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의 곡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고 불린다. 추억을 기반으로 한, 이들이 노래하는 사랑에 대한 현실적 공감이 바탕에 있어서다. 
 

하지만 김동률의 사랑 노래는 좀 다르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에는 생명력 넘치는 고도의 감성, 현실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서정성이 살아 있다. 화석이나 유물이 되어버린, 그도 아니면 세상에 과연 존재하기나 했을까 싶은 판타지로서의 사랑 말이다.

그의 노래는 노래를 듣는 누군가에게 한 때 있었을, 혹은 한때 꿈꾸었을 그 사랑을 되살리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어 준다. 또 현실에 없을 법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마음 한켠에 가져도 될 희망임을 속삭여준다. 기꺼이 그 판타지 속에 자신을 내맡기게 한다.

이를 구현하는 것은 정교하게 빚어낸 사운드 위에 얹히는, 세상을 감싸는 듯한 그의 목소리다. 그의 목소리와 노랫말이 만나 빚어내는 한편의 서사에는 오랫동안 변치 않은, 점점 더 깊어지는 진정성과 신뢰감이 녹아 있다.

 

언젠가 음원 집계를 하는 담당자에게서 김동률 노래의 주된 소비자가 20대 여성들이라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또래의 가수라고 하기엔 한참 차이가 있는데다, 대중과 어떤 접점도 갖고 있지 않기에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의 노래에, 그의 노래가 일으키는 감성의 변화에 그 답이 있다.

 

그의 음악의 힘을 더해주는 것은 또 있다. 소위 신비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희소성이다. 광고든 방송이든 지면 인터뷰든 그의 모습은 공연장 외에선 볼 수 없다. 그의 사생활은 대체로 노출되지 않는 편이다. 그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수록 음악에 대한 집중도를 높아지게 한다. 물론 모든 뮤지션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처럼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그래서 앨범이 더 잘 팔리고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는 뮤지션들을 꼽자면 나얼과 박효신 정도가 있을 것 같다. 두 사람이 가공할 수준의 가창력을 갖고 있다면 김동률은 가공할 수준의 음색을 갖고 있다. 그 점은 그를 더 희소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그의 음색이 갖는 세련미(즉, 흔히 말하는 고급짐의 정도)는 청자들의 지적 허영심까지 충족시켜준다.  

 

기자로선 종종 그런 그의 개인적인 삶이 궁금하다. 그의 감성의 원천은 무엇일지, 어떤 사랑을 했을지, 실생활의 그의 모습은 어떨지, 그리고 인간 김동률은 어떤 사랑을 꿈꾸고 있는지. 마음같아선 그의 진솔한 속내와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 난 그 속내를 알리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무슨 나이브한 생각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이 시대 그의 음악이 주는 선물, 즉 사랑의 판타지를 계속 꿈꾸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