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월드컵이 열린 러시아 주요 도시 중 재미있는 곳이 있다. 칼리닌그라드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역외영토다. 즉, 본토에서 분리돼 서쪽으로 뚝 떨어져 있는, 육지 속 섬같은 땅이다. 즉 러시아 서쪽 끝 국경에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지나야 칼리닌그라드가 나온다. 아래 그림과 같다. 




우리로 따지자면 한반도에 본토가 있고 중국 지나 몽골 어디쯤 한조각 땅이 대한민국 영토인 셈이다. 

도대체 21세기에 식민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영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엔 복잡하고 오랜 사연이 있다. 


이 땅은 원래 독일이었다. 동프로이센 한 지역의 주도. 독일 이름은 쾨니히스베르크였다. 1256년 튜턴기사단이 세운 도시다. 이 기사단은 12세기 말 십자군 원정 당시 독일인 기사를 주축으로 구성됐는데, 전투력이 엄청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사단은 독일과 폴란드 지역에 이 외에도 여러 도시를 세웠다. 


철학자 칸트의 고향도 이 도시다. 1724년 이곳에서 태어난 칸트는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집 근처를 산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평생 이 도시를 떠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중세, 근대 격동의 유럽사가 휩쓸고 간 지역이라 전쟁도 숱하게 겪었다. 1차 대전 당시에는 적들의 침입에 맞서 도시를 지켜냈지만 2차 대전때는 처참하게 박살났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소유이던 이 영토는 2차대전 후 1945년 포츠담 회담 결과에 따라 소련으로 넘어갔다. 독일 입장에선 가슴을 칠 법한 뼈아픈 손실이었다. 이 지역에 살던 독일인들은 강제 추방됐고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해서 러시아색으로 다시 입혀졌다. 지금이야 리투아니아니 라트비아니 하며 나뉘어 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즉 소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이곳은 그냥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소련의 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발트해 지역에 있는 다른 나라들이 속속 독립하면서 졸지에 이 나라는 육지로 막힌 섬이 되고 만다. 

 

독일 입장에서도 이 땅은 격동의 세월을 겪으며 역외지역이 됐다. 독일과 칼리닌그라드 사이에 폴란드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역시 이 땅을 되찾으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닐터. 하지만 전범이었던 상황에서 국제적 신뢰를 회복해야했고 20세기 후반엔 동서독 통일이라는 과업도 있었기 때문에 주변국을 자극하는 것은 섣불리 할 수 없었다. 2차례나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였기 때문에 유럽 주요 국가들은 독일의 영토회복 움직임에는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1세기 초인 2001년 슈뢰더 총리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 문제를 올려놓기는 했었다. 당시 슈뢰더 총리는 러시아의 엄청난 채무를 탕감해주겠다는 것을 협상의 조건으로 내세웠었다. 


러시아 입장에서 칼리닌그라드는 포기할 수 없는 땅이다. 서유럽 한가운데 자리잡은 러시아의 전략적 보루다. 특히 냉전시절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게다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부동항이다. 부동항 확보는 표트르대제 이후 러시아의 꾸준한 염원이었다. 크림반도 문제 역시 부동항 확보와 떼놓을 수 없는 문제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러시아에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지역이다. 냉전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칼리닌그라드는 사실상 냉전을 상징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 시스템 배치를 거론한다거나 서방권이 군사적으로 러시아를 자극하는 듯한 상황이 불거지면 으레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에 첨단무기를 배치하는 등 병력강화로 대응했다. 실제로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칼리닌그라드 주변국들은 모두 나토 회원국이다. 자연히 칼리닌그라드는 나토 회원국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의 무기고이자 서방과 러시아간 군사적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가끔씩 서방언론에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핵무기 관련 시설이 강화됐다는 둥 하는 뉴스가 나오는 것은 그런 신경전에 따른 것이다.  


이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다녀왔던 사람이나 뉴스들을 보면 칼리닌그라드 사람들 역시 애매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온몸으로 감내하고 살아야했다. 소비에트 해체 후 러시아가 극도로 심한 경제난을 겪을 때 이곳은 사실상 내팽개쳐져 있다시피했다. 하긴 그렇지 않겠나. 정부가 해야할 기본적인 일들, 급하게 꺼야 하는 불들이 눈앞에 산적해 있는데 당장 눈앞에 안 보이는, 떨어진 곳에 있는 국민들을 신경쓰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도로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자연재해를 복구해야 한다고 치자. 경기도나 충청도라면 신경써서 하겠지만 몽골 어디쯤에 있는 우리 영토에 뭔 일이 났다면 그게 현실적으로 즉각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싶다. 자연히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본국 입장에서 칼리닌그라드 상황을 신경쓰기란 쉽지 않았다. 이 당시의 뉴스 중에는 극심한 생활고와 경제난을 호소하는 칼리니그라드의 이야기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이곳 사람들 입장에선 외부로 다니는 것도 보통 불편하지 않을거다. 비행기를 타는게 제일 간단하겠지만 대다수는 육로로 다닐 수 밖에 없다. 독립국 연합 상태로 있었다면 괜찮겠지만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3국은 EU에 가입했기 때문에 러시아 국민인 칼리닌그라드 사람들은 아예 수속을 밟고 국경을 통과해 다녀야한다. 지금이야 몇차례 협상 끝에 간이 통행증이 발급된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자기 나라 땅에 살면서도 2등 국민 취급을 받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이 때문에 칼리닌그라드는 내부에서 분리를 주장하는 의견도 상당하다고 한다.


러시아가 이번에 칼리닌그라드를, 불편을 감수하고 월드컵 개최 도시로 포함시킨 것은 우선적으로 분리를 요구하는 측에 보내는 메시지이자  좀 더 넓게는 서구권에 러시아의 정치적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은 충분히 납득된다. 

말도 안되는 억지 추측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독일이 넘나 무력하게 탈락한 것은 아마 이 칼리닌그라드의 아우라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독일은 이곳 스타디움에선 경기하지 않았고 어떤 경우라도 주최측은 독일이 이곳에서 경기하지 않도록 배려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튼....


사족을 붙이자면 칼리닌그라드는 푸틴의 전 부인 류드밀라 푸티나의 고향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왜 푸틴 부인은 푸티나가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러시아식 이름 표기법상 그렇다. 러시아 여성명사는 모음 a로 끝난다. 여성의 성 역시 남편, 혹은 아버지의 성 뒤에 모음 a가 붙는다. 안나 파블로바, 엘레나 슈슈노바, 예브게니야 카나예바,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등등 성이 다들  ‘~바’로 끝난다. 이는 이들 아버지의 성이 파블로프, 슈슈노프, 카나예프, 소트니코프인 것이다. 

톨스토이의 부인이나 손녀라면 톨스타야, 도스토예프스키의 딸이나 부인이라면 도스토예프스카야가 되는 식이다. 그렇다고 모든 성에 다 a를 붙이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 유래한 성이 그렇다. 러시아에 많이 사는 고려인 후손이라면 성씨 킴을 그냥 킴이라고 쓴다. 넬리 킴이지, 넬리 키마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족을 또 하나 붙이자면 지금이야 월드컵 때문에 국내 뉴스에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는데 한때 이 이름이 신문지면에 오르내렸던 때가 있다. 한국 경제가 호황기의 절정에 있던 1997년, 즉 IMF 외환 위기 직전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이던 기아자동차(그 당시엔 현대자동차 계열사가 아니었다)는 그해 봄 칼리닌그라드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설립하고 생산을 시작했다. 그래서 경제면에 이 뉴스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현지 공장에서 아벨라, 크레도스, 세피아, 스포티지 등을 조립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뉴스가 나오고 몇달 지나지도 않아 가을쯤 되었을 때 기아차는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대마불사’가 신앙처럼 받아들여졌던 그 시기, 기아 등 대기업의 줄도산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은 그 해 말 IMF 외환위기라는 폭풍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아무튼 당시 러시아 정부는 기아가 흔들거리면서 우리 정부에  칼리닌그라드 공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하기도 했는데 그때 우리 정부는 아마도 ‘노 프라블럼’하며 무마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정부는 국민들을 향해서도 매일 같이 ‘펀더멘털 이즈 노 프라블럼’을 외쳐댔었으니 말이다.